커버스토리

“현 정부는 노조를 악으로 생각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대정부 투쟁 의지 다져

[커버스토리]“현 정부는 노조를 악으로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은 안팎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으로 조직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데다 최근에는 정부가 공공기관 노조를 집중적으로 압박하면서 강공을 펼치고 있다.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에서도 민주노총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현재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올해 4월 1일 보궐선거에서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며 대정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을 12월 10일 오전 영등포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부가 공공기관 노조를 압박하는 한편으로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한국노총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합의하는 등 민주노총이 완전히 포위된 형국이다.
“민주노총 죽이기다. 민주노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전교조를 비롯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대한 탄압을 한 지는 오래됐지만 지금은 법을 무시하는 초법적 탄압으로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말살하려고 한다.”

현 정부가 노조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나.
“현 정부는 노조를 악으로 생각하고 있다. 매우 계급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는 철저하게 대자본과 가진 자들 위주로 사회를 재편하려고 한다.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노조가 성가신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단체협약을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단협에는 노조 활동의 기본이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단협에 담긴 내용은 일반 조합원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들이다. 조합원들은 주로 임금과 복지에만 관심이 있다. 단협을 걸고넘어지는 건 정부 입장에서 조합원 전체가 아니라 노조 간부들만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유용한 전술이다. 그런데 단협을 손질하면 노조 간부들의 활동이 위축돼 중장기적으로 노조 자체가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애초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허용 유예는 받아들이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반대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결과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까지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왔다. 한국노총이 태도를 바꾼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직접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번 일로 노조이기를 포기했다고 본다. 한국노총이 합의해 준 내용은 현행법보다 오히려 더 후퇴한 것이다. 타임오프제를 받아들이라는 건 노조에 앞으로는 단위사업장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말고 노사협의체 기능을 하는 데 만족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권력의 보호를 받으면서 버텨 왔다. 그런데 이번 일로 스스로를 향해 칼을 빼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조합법이 개정되면 한국노총은 우리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다.”

총파업을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새 지도부 선거 국면으로 들어갈 텐데 총파업이 가능한가. 게다가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으로만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에서는 지금 국면이 단순히 전임자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노조를 말살하려는 수순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현장이 분노하면서 선거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총파업과 관련해 외환 위기 여파가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을 덮친 2000년 이후에는 솔직히 총파업이 잘 안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총파업이 실패한 경우는 대부분 상황 논리에 떠밀려 위원장이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장에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올해 4월 위원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민주노총 쇄신이라는 커다란 책무를 떠안았다. 성과가 있나.
“20년 동안 잘못된 관행들이 누적돼 생긴 문제를 단숨에 도려낼 수는 없다. 오래된 문제인 만큼 제거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올해 3월 민주노총 혁신대토론회를 한 후 혁신위원회가 구성됐다. 혁신안을 갖고 현장을 돌면서 크고 작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조직운영방식, 소통구조, 재정집행 등 모든 부문에 대해 토론한다.”

민주노총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 게 현장과 집행부의 괴리다. 현장만 돌아다닌다고 괴리가 좁혀지는 건 아닐 것 같다.
“올해 민주노총 공식 회의가 정족수 미달로 열리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참여자들이 충분하게 발언하고 이를 토대로 방향을 결정했다. 현장과 괴리됐다는 지적은 지금 많이 수그러든 상태다. 물론 부족한 부분은 여전히 있다.”

비정규직 끌어안기는 여전히 민주노총 최대의 과제다.
“전략을 짜고 있다. 박종태 열사의 죽음, 쌍용차 문제, 노동조합법 개정 문제 등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소홀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조직 역량이 발전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장의 움직임은 기대 이하였다. 일차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자각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교육과 토론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조직 역량의 절반을 투입한다는 각오로 사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어려움에 처했다.
“민주노총이 힘이 있을 때 전체 국민의 삶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 투쟁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걸 못해서 정부가 민주노총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졌고, 정부는 호기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헌법의 보호를 받는 합법적 대중조직이다. 정부가 몰아세운다고 망하지 않는다. 누를수록 더 세게 반발한다. 정부가 그냥 내버려뒀더라면 내부 위기로 인해 민주노총 스스로 망했을 텐데 자꾸 압박하니까 민주노총의 자기혁신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간은 민주노총 편이다.”

외부 위기는 내부 위기 해결을 유예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파 간 대립 같은 고질적 문제는 외부 위기가 커진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루 아침에 정파 대결을 끝내고 합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서로 협력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부 정파는 여전히 다른 정파들에 배타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정파는 대중적으로 거세당할 것이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정파는 없다. 첨예한 대립은 많이 줄었다. 선거를 치르면서 자칫 악화될 수도 있는데 나는 잘 풀릴 것이라고 본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노조와 노동운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명박 정권은 대자본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한다. 노동자와 서민은 누가 대변할 수 있나.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 약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