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자펀드 직접 경영참여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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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평정-현대증권 노조 ‘함께하는 경영참여연구소’ 설립… 지분 맞교환 합의도

지난 11월 8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2009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노동계가 펀드를 조성해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노동운동의 침체기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호진 기자>

지난 11월 8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2009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노동계가 펀드를 조성해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노동운동의 침체기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호진 기자>

노동운동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노조가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목표로 하는 ‘함께하는 경영참여 연구소‘를 중심으로 노조가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펀드를 만들 예정이다. 연구소는 ▲노조의 경영참여 연구 ▲노조의 경영참여 지원 및 교육 ▲자본동향 및 기업분석 ▲노동자본 구축 및 사회책임투자 펀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영참여를 목표로 하는 펀드 조성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노조가 펀드를 통해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목표가 현실화되면 노동운동의 투쟁 방식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시장 개입 새로운 노동운동 모색”
연구소 발족에는 한국신용평가정보 노조, 현대증권 노조가 결합했다. 이상학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연구소장에 내정됐다. 연구소의 첫 활동은 12월 1일 <자본시장 통합과 노동조합 경영참가>라는 책의 출판 기념식이었다. 

이후 개소식을 열고 노조의 경영참여와 관련한 교육과 지원, 연구 활동을 할 예정이다. 기업경영을 견제하는 펀드는 내년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신평정 노조와 현대증권 노조가 이 연구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가 있다. 양 노조는 오래 전부터 조합비로 회사 주식을 사들여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증권 노조는 2004년부터 조합비로 매월 1억2000만원어치의 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현재 100만주를 확보했다고 알려진다. 회사 주식의 5.8% 규모다. 한신평정 노조는 2007년부터 회사 주식을 매입해 왔다. 11월 10일 양 노조는 경영참여를 위해 지분 맞교환을 뜻하는 ‘주식교환매입(주식스왑)’ 합의서를 체결했다. 스왑은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는 자산을 매각해 그 자금으로 다른 자산을 구입함으로써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양 노조는 각 사의 주식 100만주를 매입할 때까지 이 체결을 지속할 예정이다.

장도중 한신평정 노조위원장은 “우리가 매입한 주식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다른 주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노조가 주식 매입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면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수익추구냐, 고용안정이냐 ‘딜레마’
연구소의 활동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보듯 노동운동이 침체된 상황에서 노조의 기업경영 참여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노조가 주식투자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는 해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 노조가 펀드를 통해 기업 주식을 매입하고,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과거보다 노조의 단체협상력이 약화됐고, 노동운동도 현 정부에서 더욱 취약해졌다. 노동운동이 또 다른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면서 “기업의 가장 약한 부분이 투자와 시장이다. 노조가 주식 매입을 통해 기업경영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은 노조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노조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직접 ‘장하성 펀드’ 같은 것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면서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노조가 할 수 있는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다만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조가 직접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경영에 참여할 때 생기는 장단점은 뭘까.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은 “노조가 기업의 주식을 매입했을 때 노조원들이 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소속감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이에 반해 노조원들이 주식투자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주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생길 수 있는 단점이 생긴다”면서 “노조는 고용안정화를 주장해야 하는데 기업이 이익을 내려면 고용안정화를 훼손해야 한다.
 
이때 주식투자자이자 노동자인 조합원들이 기업의 이익을 선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노동자 펀드가 성공하려면 노조가 주식투자자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펀드에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펀드의 목적성이 불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한 산별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지분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허황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연구소가 지향하는 바가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병훈 교수는 “1987년 이후 노동운동 방식에 전혀 변화가 없다. 타성적이고 관성적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협상력도 낮아지는 것이다”면서 “한신평정 노조와 현대증권 노조가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직접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노조가 펀드를 통해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면 펀드의 규모가 커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다른 노조에서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장도중 한신평정 노조위원장
“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

[사회] 노동자펀드 직접 경영참여 ‘시험대’

펀드를 만들어 기업의 경영 감시에 나선다고 했다. 이 펀드에 민주노총의 금속연맹이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데 금속연맹은 ‘아니다’고 펄쩍 뛰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펀드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현대자동차 노조가 속해 있는 금속연맹으로 확대 해석된 것 같다. 산별노조 차원에서 펀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노조 집행부 마음대로 펀드 참여를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펀드의 목적에 동의하는 노조원의 개별적인 참여는 가능하니 많은 사람이 결합했으면 한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노동자가 투자하는 펀드가 이른 시간 내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펀드가 이른 시일 내에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다. 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액수도 현재 정해져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노조원과 일반 시민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펀드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연구소가 얼마나 내실있게 활동하고 신뢰를 높이느냐에 따라 펀드 규모가 결정될 것이다.”

펀드의 성격이 궁금하다. 노조와 조합원만 투자할 수 있는 것인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펀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조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펀드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시민이 펀드에 투자하면 수익률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면 원래 목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멀어지는 것 아닌가.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해가 나지 않도록 수익률은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후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할 것이다. 펀드를 통해 대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액주주의 권한을 이용해 기업의 사외이사나 감사의 선임 등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이익, 성과, 자본참여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성과급이나 우리사주 등을 취득함으로써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또 조합원이 스스로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서 자본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대기업 주식의 50~60%를 취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조가 주식을 사들여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노조가 대기업 주식의 3~5%만 취득해도 감사나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 형식으로 기업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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