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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기업의 ‘부적절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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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효율성이 학교운영 개입… 학문의 고유성·자율성 해쳐

왼쪽 위부터 국민대, 성균관대, 포항공대, 인하대, 중앙대.

왼쪽 위부터 국민대, 성균관대, 포항공대, 인하대, 중앙대.

“학생들과 대화를 해 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교직원도 마찬가지고요.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대학도 자본 논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는 소리다. 박 이사장은 지난해 6월 이사장 취임 이후 언론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대학에 기업 논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개진했다. 올해 8월28일 중앙일보 칼럼에선 “대학이 열린 공간이라고 한들 모두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대학의 의사결정권은 학교법인에서 비롯되고, 운영 주체는 학교법인의 이사회”라고 못박았다. 이사장이 곧 학교의 주인이란 소리다.

중앙대 인수한 두산, 기업식 개혁 나서
중앙대 교수들의 생각은 다르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지난 9월24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박용성 이사장의 ‘이사장 주인론’과 ‘기업식 운영론’은 대학의 민주주의와 이념, 그리고 학문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부정하고 유린하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올해 2월 교수들의 높은 지지(투표 67%, 찬성 95%)를 바탕으로 교수협의회장이 됐다.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강 교수는 중앙대는 물론 학계에서도 대표적인 진보 성향 교수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학교 안팎에서는 높은 지지율 배경에 박 이사장의 ‘기업식 개혁’에 대한 교수사회의 불만이 깔려 있다고 본다.

중앙대는 기업의 대학 인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표본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상반된 두 관점이 극명하게 대치한다. 그동안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고 양식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학문공동체로 인식됐다. 반대로 기업이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실용’과 ‘효율성’이다. 기업에 즉시 투입해 성과를 산출할 수 있는 인력을 만들지 못하는 대학은 ‘비효율적인 조직’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이사장은 ‘기업에서 하는 방식을 대학에 그대로 적용하라’는 원칙으로 학교 운영에 개입하고 있다.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다.

[특집]대학과 기업의 ‘부적절한 동거’

인수 후 박 이사장은 공격적으로 중앙대 재편에 나섰다. 재편의 명분은 ‘효율성 제고’이고, 방식은 ‘선택과 집중’이다. 교수들은 계량적 평가에 따라 연봉을 달리 받게 됐다. 중앙대는 내년부터 교수들에 대한 연봉제와 업적평가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연구업적, 교육실적, 봉사 등 3개 분야로 나눠 3개 그룹(연구 예체능 교육)에 대해 S, A, B, C 등급을 매기고 연봉을 차등적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교수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봉제 도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인문대의 한 교수는 “논문의 질을 따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편수를 따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학문적 업적은 논문 편수로 측정되지 않는데 그걸 무시하는 방식”이라면서 “단과대에 따라서는 한 해 10편 이상의 논문이 나올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데도 있다. 결국 기업친화적 분야는 더 많은 지원을 받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상대적으로 퇴보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단 독단이 학내 민주적 결정 훼손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성원 합의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대학에 대한 기존 관념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면 기업식 대학 운영은 속도에 집착한다. 박 이사장은 취임 후 석 달이 되지 않은 지난 8월 전체교수회의에서 교육 단위 구조조정, 연봉제 도입, 총장제 직선제 폐지 등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예고했다. 교수 연봉제 도입이 올해 초 결정됐으니 개혁안 예고 후 반 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박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앞의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기업에서 연봉제를 실시하려면 한 달이면 끝난다. 그런데 지금 취임 100일이 되도록 실행을 못하고 있다. … 기업과 학교는 얼마나 다른지 내가 요즘 도를 닦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6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대학 재편 전반과 관련해 “기업 같으면 서너 달에 끝냈을 일도 여기선 절차가 복잡하고 명분부터 따지니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속도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성균관대 교수 사찰 문건. <정원식 기자>

성균관대 교수 사찰 문건. <정원식 기자>

교양교육에도 기업화 바람이 불어닥쳤다. 중앙대는 올해 1학기에 회계학 전공 교수 2명이 주축이 된 ‘회계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2학기부터 ‘회계와 사회’라는 과목을 ‘공통교양’ 과목으로 신설했다. 공통교양은 계열과 관계없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교양필수 과정이다. 회계를 모르면 졸업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기존에는 경영대 재학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인식됐지만 두산 인수 후 전교생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여기에도 박 이사장의 독특한 ‘교육철학’이 작용했다. 박 이사장은 몇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대학의 기존 교양교육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지금의 교양과목도 필요없다고 본다. 현재의 대학 교양과목은 구청 문화센터 수준이다” “심신의 교양을 쌓는 건 스스로 해야지 왜 대학에서 해 주나” “대학에서 인성과 교양을 쌓는다는 건 옛날 얘기다” “기업인들에게 ‘중앙대 애들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 이런 평가를 받는 게 내 목표다” “이공계라고 회계를 하나도 안 가르쳤으니 들어온 돈을 왼쪽에 쓸지 오른쪽에 쓸지도 모른다”. 고부응 중앙대 영문과 교수는 “회계학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삼는 건 다른 대학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일”이라면서 “결국 다른 교양과목들이 빠지면서 포괄적인 지식교육이 위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단 이사장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학내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요즘 중앙대에서는 누가 총장이고 누가 이사장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성 이사장이 대학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나오는 얘기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이사장은 총장 임면권을 갖고 있지만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총장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사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부응 교수는 “이사장이 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사장이 교무위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이사장이 한 말을 교무위가 추인하는 방식으로 일이 처리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총장 선임 방식 또한 직선제에서 이사장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교수들이 직선으로 3명을 추천하면 재단이 세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박범훈 총장의 경우 지난해 12월 이사회가 박 총장의 임기를 연장하는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처리됐다. 중앙대 인문대학의 한 학생은 “두산 인수 초기만 하더라도 학교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환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캠퍼스 이전이나 학과 통폐합 등에 관한 정보를 학생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되는 등 학교 측의 일방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성균관대 한 교수의 말이다. “삼성은 소리없이 용의주도하게 학교를 장악했다. 두산은 너무 투박하다.”

성균관대 교수 사찰 문건 파문
성균관대 재단은 이미 1970년대 삼성 소유였다. 그러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재단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삼성이 대학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이 다시 성균관대 경영에 참여한 것은 1996년. 

1991년까지 성균관대를 운영하던 봉명그룹은 그룹 주력사이던 도투락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성균관대에서 손을 뗐다. 몇 년 동안 공중에서 부유하던 성균관대를 삼성이 다시 인수한 것이다.

삼성 인수 후 성균관대의 외형적인 지표는 크게 상승했다. 인수 당시 458명이던 전임 교수는 10년 후인 2006년에 1118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에 교수 1인당 외부 연구비도 3100만원에서 9140만원으로 뛰었다. 삼성의 후광에 힘입어 입학생들의 수능점수도 올라갔고, 지난해 로스쿨 배정에서도 고려대와 같은 인원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지표 개선의 이면에는 학내 자율성 훼손과 표현 자유의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특집]대학과 기업의 ‘부적절한 동거’

2000년 4월18일 성균관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 재단 소속 총괄지원팀과 법인사무국이 100여 명의 교수를 정기적으로 사찰해 왔다”며 사찰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은 ‘문제교수 현황’ ‘특이활동 인사’ ‘총학생회 등 운동권 동향’ 등 학교 관련 항목으로 구분돼 있다. 문건에 담긴 내용은 정보기관의 재야인사 사찰 문건을 방불케 한다. ‘문제교수 현황’은 해당 교수의 이름, 학과, 나이를 명시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 경력이나 학내 권력관계에 대한 정보를 기재했다.

“94 민교협 통일분과위원장으로 대정부 비난활동 및 각종 시국선언 적극 참가, 교내 급진성향 교수모임을 결성 지지세력 구축”(인문대 양 모 교수), “급진성향의 대표적인 사학자로 각종 대정부 비난활동 활발(인문대 서 모 교수), ”대외활동은 별무하나 학교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과거 삼성 봉명재단 탈퇴시 학생동원 등 문제인물이나 현 정ㅇㅇ 총장이 ㅇㅇ 압력으로 교무처장에 보임(인문대 심 모 교수), “교수사회 신망이 없고 이과대 학장선거에 출마 낙선하였으나 ㅇㅇ 후원으로 자연과학캠퍼스 주세력인 공과대학 교수들을 제치고 부총장에 보임”(자연계열 정모 교수).

상경계열 김 모 교수와 사회과학 계열 이 모 교수는 ‘급진성향 진보성향으로 한겨레와 <말> 등에 대정부 비난 칼럼을 기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교수’ 명단에 올랐고, 안기부법 개정반대 명단에 서명한 교수 25명은 무더기로 명단에 올랐다. ‘운동권 동향’ 항목에서 “97 총학선거에서 학생운동권내 주류인 NL계가 PD계를 누르고 당선, 97학년도에는 동교의 친북통이투쟁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이라고 명기하고 있는 걸 보면 사찰은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직후부터 꾸준히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6월 성균관대는 등록금 인상 반대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인 학부 및 대학원생 21명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이 가운데 3명은 출교, 6명은 제적이라는 고강도 징계를 각각 받았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 측 사찰 문건을 폭로한 데 대한 보복조치”라고 반발했다. 이듬해 9월에는 이 학교 교지 <성균> 5000부가 학교에 의해 강제 회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교지에는 삼성그룹의 재산증여 과정을 비꼰 6쪽짜리 만화와 2000년 학생 대량징계를 비판한 기획기사가 실려 있었다.

일련의 사태를 거친 후 성균관대에서 재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교수사회와 학생회에서 모두 종적을 감췄다. 성균관대 인문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교수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모두 알아서 긴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대학보다 등록금 인상률 높아
2009년 현재 기업이 설립했거나 인수한 4년제 대학은 모두 7개. 국민대(쌍용 1959년 인수), 인하대(한진 1968년 인수), 울산대(현대 1969년 설립), 아주대(대우 1977년 인수), 포항공대(포스코 1986년 설립), 성균관대(삼성 1996년 인수), 중앙대(두산 2008년 인수) 등이다.

흔히 기업의 대학 경영 참여가 대학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으로 꼽히는 건 대학의 재정 상황이 개선된다는 점이다. 성균관대의 경우가 그러하고, 중앙대의 경우도 가시적인 재정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장기적인 대학의 자립 기반 확보 관점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09년 현재 대기업이 운영하는 4년제 대학 7곳 가운데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이 148개 사립대 평균(48.3%)을 상회하는 대학은 4곳이다. 포항공대가 207.4%로 가장 많고 성균관대는 4%, 중앙대는 31.2%로 각각 나타났다. 학생들의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등록금에서도 최근 5년간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기업이 경영에 참여하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2009년을 포함한 최근 5년간 사립대 등록금 인상률 평균(22.2%)보다 낮은 대학은 7개교 가운데 2개교(인하대, 한국항공대)에 불과하다. 성균관대는 25.7%, 포항공대는 29.4%다.

임희성 연구원은 “기업은 재단 전입금은 늘리더라도 대학 자체의 재산을 늘려 주지는 않는다. 단기적인 효과를 노릴 뿐”이라면서 “기업의 대학 경영 참여가 대학의 질적 발전이나 균형 발전 측면에서는 대학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의 미래를 기업에 맡길 때 대학은 대학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부응 교수는 “학문과 교육의 목적이 자본친화적인 방식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의 작동에 필요한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해야 한다. 이게 손상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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