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주식회사 유니버시티’의 위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업화하는 대학의 문제점… 이윤추구 활동과 캠퍼스의 상업화 초래

대학은 앞다퉈 상업시설을 교내에 유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에 완공한 이화여대 ECC. <정원식 기자>

대학은 앞다퉈 상업시설을 교내에 유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에 완공한 이화여대 ECC. <정원식 기자>

지난해 두산의 중앙대 인수 이후 1년 5개월 동안 재단의 공격적인 구조조정 행보가 본격화하면서 대학이 기업 논리에 포섭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 논리에 감염되는 현상의 책임은 기업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대학 스스로 기업 논리에 자발적으로 투항하는 현상은 기업의 대학 인수보다 더 크고 뚜렷한 흐름이다. 이른바 ‘대학의 기업화’ 현상이다.

학문적 가치보다 수익성 앞세워
반년간 계간지 <안과밖> 최근호에는 대학의 기업화 현상과 관련해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제목은 ‘주식회사 유니버시티-대학의 기업화와 학문공동체의 위기’. 박용성 이사장 주도의 중앙대 구조 개편에 대해 학내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내 온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가 썼다.

김 교수는 “오늘날 한국 대학은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면서 “대학은 이제 더 이상 ‘교수와 학생의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직업훈련소’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교수와 학생의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는 19세기 독일 철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의 정의다. 이 고전적인 대학의 정의가 오늘날 한국에서 격심하게 변질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지금의 대학은 이념이나 학문적 가치가 아니라 수익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경영기법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대학에 관한 담론에서도 ‘선택과 집중’ ‘효율성’ ‘경쟁력’ ‘경영총장’ 같은 시장친화적 언어가 ‘자유’ ‘연대’ ‘정의’ ‘학문총장’ 같은 말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이 대학 선진화의 척도로 삼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서는 아예 ‘기업대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햄라인 대학 경영대 교수 데이비드 슐츠는 기업대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기업대학은 대학 운영에 기업의 경영 방식을 사용하는 대학이다. 기업대학의 의사결정은 상명하달식의 수직적 방식이고, 의사결정의 최고위 단계는 교수들이 아니라 기업 출신 인사들이 차지한다. 총장을 선출하는 것도 대학구성원이 아니라 재단이다.

2005년에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삼성 측이 418억원을 들여 고려대 서울캠퍼스 내에 지어준 100주년 기념 삼성관의 입구 모습. 고려대생들은 대학 측이 감사의 표시로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강력히 반발했고, 대학은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정지윤 기자>

2005년에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삼성 측이 418억원을 들여 고려대 서울캠퍼스 내에 지어준 100주년 기념 삼성관의 입구 모습. 고려대생들은 대학 측이 감사의 표시로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강력히 반발했고, 대학은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정지윤 기자>

대학이 시장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업화 현상은 한국의 경우 대학의 이윤 추구 활동과 대학 캠퍼스의 상업화라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학의 이윤 추구 활동은 정부가 먼저 대학 기업화를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20일 국무회의에서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학교기업 사업금지’ 업종을 102개에서 19개로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다.

대학기술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 20%를 돈이 아니라 기술로 투자한다. 기술거래소, 기술보증기금, 산업은행 등 3개 기관에서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평가하면 대학은 해당 기관이 인정하는 액수만큼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대학은 자회사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해 배당이익을 챙길 수 있고, 자회사가 상장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경우에도 그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강원대, 경희대, 고려대, 삼육대, 서강대, 서울대, 한양대 등 7개 대학이 대학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학교기업 사업금지 업종 축소는 대학의 수익사업 참여 범위를 크게 넓혔다. 담배소매, 유흥, 도박, 마사지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길을 터준 것으로 평가된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서울산업대 캠스톤디자인(전자현미경), 한국외대 I-외대(국제교류), 인천대 클린에어나노테크(환기장치), 경상대 GAST(한우 브랜드) 등 17개 대학이 이러한 학교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07년 5월 당시 교육부는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허용했다. 명분은 ‘규제 완화를 통한 재정 확충’이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당시 성명을 통해 “대학 적립금으로 주식 투자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은 결국 학생등록금으로 돈벌이를 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교비 운용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조치”라고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년 뒤인 올해 10월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 12개 대학에서 주식과 펀드, 파생상품에 총 1922억여 원을 투자해 357억여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체인점 캠퍼스에 속속 상륙
지난해 10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대학자율화 2단계’ 방안은 이러한 이윤 추구 활동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교법인 재산의 처분이 사전신고제에서 사후보고제로 변경되면서 대학의 재산 처분이 쉬워졌다. 기준액도 3억원 미만에서 10억원 미만으로 상향됐다. 대학이 10억원 이내 범위에서 법인 재산을 맘대로 처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표적인 CEO형 총장들. 왼쪽부터 손병두 서강대 전 총장, 어윤대 고려대 전 총장, 송자 연세대 전 총장, 이경숙 숙명여대 전 총장.

대표적인 CEO형 총장들. 왼쪽부터 손병두 서강대 전 총장, 어윤대 고려대 전 총장, 송자 연세대 전 총장, 이경숙 숙명여대 전 총장.

대학 상업화는 대학 내 시장 논리의 진입 현상을 더욱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해 5월26일 이화여대 앞 8.5m 높이 철골 구조물에서 당시 이화여대 총학생회 부회장과 간호대 학생회장이 고공 시위를 벌였다. 이화여대 ECC(이화 캠퍼스 콤플렉스)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농성이었다. 이 대학 ECC에는 인테리어 브랜드 ‘소호앤노호’, 스타벅스, 리치몬드 제과, ST T월드, 다이어트 카페 ‘닥터 로빈’ 같은 상업 매장이 자리잡았다. 학교 밖 쇼핑가에서만 볼 수 있던 매장들이 학교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 같은 풍경이 비단 이화여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대학에 비교하면 이화여대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미 2004년 한양대에 파파이스와 로즈버드가 입점했고, 같은 해 고려대에는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가 입성했다. 서울대에도 투썸 플레이스와 카페 소반 같은 유명 체인점들이 상륙한 지 오래다. 

부산대는 올해 초 효원굿플러스라는 이름의 복합쇼핑몰을 완공했다.
결국 무효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같은 캠퍼스 상업화의 흐름 중에서 압권이라 할 만한 것은 서강대의 홈플러스 유치 시도다. 그 이전까지 대학 내 상업시설이 커피전문점, 서점, 식당 체인, 편의점 수준에 머물렀던 데 반해 서강대는 유례 없이 대형 마트를 유치하려 한 것이다. 서강대는 학교 내 강의실 및 주차장 시설 부족을 민자 유치의 이유로 내세웠다. 건축비용은 삼성테스코가 부담하고, 서강대는 대신 테스코 측에 30년 동안 홈플러스 서강점 운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참여정부가 2007년 12월 대학 내 판매 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내용의 ‘대학 설립 운영 규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명박 정부가 올해 4월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가능해졌다. 서강대는 학내 반발을 이유로 결국 올해 8월 홈플러스 입점을 철회했다.

‘CEO형 총장’ 등장 상업화 부추겨
이 같은 대학 상업화는 1990년대 이후 대학가에 이른바 ‘CEO형 총장’들이 부상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홈플러스 유치 철회는 올해 6월 손병두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신임 총장이 취임한 후 결정됐다. 홈플러스 입점을 추진한 손병두 전 총장은 삼성그룹과 전경련 출신으로, 서강대 개교 이래 최초의 전문경영인 출신 총장이다. 그러나 CEO 총장의 등장을 주도한 건 오히려 학자 출신 총장들이다. 최초로 대학에 기업 마인드를 도입했다고 평가되는 송자 연세대 전 총장(1992~1996년) 이후 장상 이화여대 전 총장,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 어윤대 고려대 전 총장 등이 CEO 총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장을 맡았다가 ‘오륀쥐’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도 1994년 이후 14년 동안 숙명여대 총장으로 재임하며 1000억원을 모금해 대표적인 CEO 총장으로 불렸다. 이들은 모두 작게는 100억원대에서 많게는 3000억원대의 대학발전기금을 모으는 등 공격적 경영으로 대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공격적 경영과 대학의 본질적 가치가 상충한다는 비판도 거셌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어윤대 고려대 전 총장이다. 어 전 총장은 재임 기간(2003~2007년)에 3500억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모금했다. 그러나 어 전 총장은 2005년 5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고려대는 개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 때 삼성으로부터 400억원을 지원받아 이 건물에 ‘100주년 기념 삼성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누리 교수는 이 같은 대학의 기업화를 ‘파우스트의 거래’로 표현한다. 대학이 시장 논리에 대학의 영혼을 내주는 대가로 대학 이념과 존립 근거가 시장에 종속됐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과 관련된 논의는 모두 시장이란 프레임에 갇혔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프레임으로 자리잡으면서 대학을 상품으로 여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대학이 시장 논리를 따르는 건 대학의 자기 부정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