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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타령’ 국격에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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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화재사건은 관련법과 소방안전시스템 ‘구멍’이 초래한 참사

11명이 사망한 부산 실내 실탄사격장 내부 현장이 11월18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관계 당국자가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1명이 사망한 부산 실내 실탄사격장 내부 현장이 11월18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관계 당국자가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속한 입장 표명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일본인 사망 소식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산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는 일본인 유족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건에서 11월19일 현재 사망자는 모두 11명이다. 이 가운데 일본인 사망자는 7명. 언론은 ‘안전불감증’으로 사고의 원인을 규정했다. ‘인재(人災)’라는 설명도 되풀이됐다. 이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부산 사고는 우리 국격에 전혀 맞지 않는일”이라면서 “상당히 후진적인 사고라는 생각에 부끄럽다”고 말했다.

전문가 “후진국형 사고 아니다”
전문가들도 언론과 이 대통령의 진단에 동의할까.
“후진국형 사고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만 그런 사고가 났습니까. 일본에서도 2001년 신주쿠 가부키조에서 화재가 나 44명이 죽었어요. 미국에서도 2002년에 나이트클럽 화재로 120여 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습니다. 밀폐공간의 화재는 도시화로 이런 공간이 자꾸 만들어지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말하자면 선진국형 화재죠. 화재안전대책이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박재성 한국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부 교수의 말이다. 박 교수는 “국민의 ‘안전 불감증’ 탓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군사정권 때나 국민들이 팻말 들고 불조심하자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지 현대화된 2000년대 사회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이 문제이니 국민의식을 계몽하겠다는 식의 대응이라면 이와 같은 사태는 앞으로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이번 화재 사건에서 끌어낸 ‘교훈’의 핵심은 구조설비 규정과 관련한 부처당국 간에 원활한 조정이 없었다는 것. 실내사격장의 구조와 시설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경찰청이 2008년부터 시행한 ‘사격 및 사격장 단속법 시행령’이다. 이 법에서 이번 사건이 일어난 곳과 같은 실내사격장의 구조설비 기준을 명시해 놓은 항목은 별표8이다. 권총사격장(옥내) 항목이다. 이 구조설비 기준에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1. 실내의 천장 및 측벽과 바닥은 사좌로부터 사격방향 10m까지는 두께 6㎜ 이상의 철판 또는 이와 동등한 정도의 내탄성이 있는 재질로, 기타는 철판 또는 동등정도 내탄성 있는 재질일 것. 2. 실내의 천장 측벽바닥 등에 탄이 튀어날 위험이 있는 부분은 두께 7㎝ 이상의 목재로 입힐 것. 3. 사계 내에 창문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4. 총성이 외부에 나가지 않도록 방음장치를 할 것.”

일본은 외국 사고도 찾아 자료 축적

화재가 난 실탄사격연습장에서 소방·경찰관들이 사망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가 난 실탄사격연습장에서 소방·경찰관들이 사망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은 박 교수의 말이다. “방음시설 관련 규정도 그렇고, 창문을 설치하면 안된다는 등의 규정은 소방안전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위험한 규정입니다. 이건 화로나 마찬가지입니다. 두께 7㎝ 이상의 합판이요? 일단 불이 나면 벽이 장작이 됩니다.” 즉 관련 법안이 소음이나 총기도난 등에 대비한 보안만 고려했지 소방안전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화재가 난 부산 실내사격장에는 창문이나 비상구가 없었다. 그러나 특별히 소방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 실내사격장은 총포나 화약 같은 위험물질을 취급하고 있지만 ‘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골프장이나 승마장과 같이 운동시설로 분류돼 있다.

법·규정의 미비만 문제가 아니다. 최영화 삼성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화재 현장 보존이 취약하고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교훈을 남기는 작업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건들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자료를 남겨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서울시에서 발행한 사고백서쯤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대연각 화재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참사였는 데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수대교 사건,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건도 다 없습니다.”

실제 그럴까. 소방방재청에 문의해 봤다. 소방방재청은 ‘국가화재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2007년부터 구축을 시작했으니 과거의 대형사건 자료가 없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라면서 “2007년 이후의 사건인 경우 관할 소방서에서 낸 보고서를 소방서 조사요원은 열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큰 사건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별로 백서를 발간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들이 필요에 의해 요청하더라도 사례별로 관련 자료를 일괄적으로 뽑아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사건에도 그 사람들이 또 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대구지하철 사건의 경우 일본 국립소방대 소방연구소 전문가와 민간 방재 전문가들이 현장을 방문, 사진도 찍고 꼼꼼히 사건 현장을 기록해 간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당시도 일본 전문가들이 방문, 조사작업을 하고 갔다. 각기 다른 조건에서 한국의 사고조차도 연구 대상의 ‘케이스’로 삼아 철저하게 사건 원인과 교훈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외국의 화재 사건에 조사를 나간 적이 있을까. 이를테면 지난 1월1일 태국에서 벌어진 ‘산티카’ 나이트클럽 화재 같은 대형 사고의 경우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59명. 부상자도 212명이나 됐다. 이 나이트클럽은 한국인 신혼부부도 관광여행코스로 많이 방문하던 곳이다. 이날 화재사고로 한국인 3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경제 살린다고 안전 관련 규제도 완화
소방방재청 국립방재연구소 자료실을 뒤져봤다. ‘인적 재난’으로 분류돼 관련보고서가 3월6일자로 올라와 있었다. 발생개요와 원인, 피해상황, 재난 및 사고 발생에 따른 교훈 및 유사사례로 나뉘어 간략하게 정리돼 있었다. 아쉽게도 ‘국내 다중시설 피해사례’ 표가 붙어 있는 것을 제외하곤 사건 당시 언론보도를 넘어서는 ‘정보’는 이 보고서에서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첨부돼 있는 사진조차도 연합뉴스, CNN 등에서 캡처한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월16일 부산 국제시장 내 실내 실탄사격장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월16일 부산 국제시장 내 실내 실탄사격장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부의 소방 전문가는 “방재센터 연구와 투자의 상당 부분이 풍수 피해에 쏠려 있지 화재에 대한 연구인력은 태부족”이라고 주장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재연실험 등 연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지만 3, 4명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출신 화재 전문가들이 부족한 예산에도 애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을 포함해 화재 원인에 대한 과학적 연구작업이 시작한지 이제 3, 4년밖에 안되기 때문에 아직 한국내 정보나 겨우 갈무리하는 수준이라는 것.

일본 화재 전문가들은 한국에 와서 어떤 작업을 했을까. “일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옵니다. 몇 명은 늘 오기 때문에 잘 알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야마다(山田) 박사라고, 화재소방 전문가입니다. 대구뿐만 아니라 2, 3개월 전 경북 청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이들이 와서 현장기록 작업을 했습니다.” 홍원화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의 말이다. 홍 교수는 일본 방재전문가 팀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일본 사람들이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소스’를 바탕으로 가상현실(VR)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고 연구를 진행해 재난 때 바닥에 탈출구 쪽으로 유도하는 ‘형광타일’을 붙이게 하는 등 성과도 냈다. 홍 교수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시스템’이라고 한마디로 말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나 일본은 지진이나 자연재해에 많이 노출돼 있어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도 이젠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안전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피해가 크게 될 시설이 많습니다. 법망을 제대로 정비하고 사건을 DB화하고…. 따지고 보면 다 예산하고 관계돼 있지만요.”

박재성 교수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MB정부 들어와서 지난해에 경제가 어렵다고 규제를 완화한다며 주로 손을 본 것이 안전과 관련된 규정입니다. 제가 정부 관련 부처 자문회의에 들어가고 있는데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걸 빼달라고 하는지. 담당자가 말하길 경제인 단체에서 완화해 달라는 건의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따지니 ‘보완대책은 추후에 생각해 보자’는 식인 겁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화재사건을 두고 ‘국격’을 거론했다. 후진국형 사건이라고도 했다. 국격에 걸맞은 법적·제도적 시스템 부재, 정비와 예산 문제도 ‘국민의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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