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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문화는 대한민국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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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br /> <br /><br />"피곤하고 지쳤을 때 북촌 동네에 가면 편안해지며 원기가 회복되는 걸 느꼈어요. 그게 뭔지 생각해 보다가 북촌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로 결심했습니다.”<br /><br />그때가 2003년. 그 후 7년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사진작가와 함께 북촌 거리를 거닐면서 동네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동네 사람들의 사연을 귀담아 들었다. 소박한 옛날 점포가 사라진 자리에 한옥을 세련되게 개·보수한 갤러리와 카페들이 들어서는 변화도 목격했다. 김유경씨가 펴낸 책 <서울, 북촌에서>(하지권 사진·민음인)는 저자의 정성과 내공이 느껴진다.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28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던 그는 비단 현장취재뿐만 아니라 평생 쌓아온 서울의 역사와 문화, 생활과 관련된 자료와 사진을 이 책에 쏟아 넣었다.<br /><br />“기자생활 10년쯤 지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서울과 관련한 글을 쓰고 있더라”는 그는 “서울에 이끌리는 건 전통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br /><br />북촌을 오랫동안 지켜본 뒤 나온 결론 역시 “북촌은 가회동이나 삼청동처럼 어느 한정된 지역이라기보다 친근한 숨은 힘 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살이의 한 전형”이라는 것이다.<br /><br /><strong>북촌 취재기를 듣고 싶습니다.</strong><br />“한옥부터 시작했어요. 한옥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아요. 거기서 만난 송병각 선생 같은 분은 서울사람의 전형이지요. 한옥 하면 부자가 많을 것 같지만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윤보선 가문 같은 엘리트 계층의 문화적 취향도 느낄 수 있고요.”<br /><br />저자는 골목을 걷다가 쌀가게, 떡가게 주인을 만나는가 하면 대통령 부인 한복을 주로 짓는 이리자씨의 의상실에도 들른다. 그가 말한 송병각씨는 잎이 넓은 피마자를 가꾸며 취미 삼아 독일시와 당시(唐詩)를 번역하는 기품 있는 노인이다.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의 부인 김인숙씨가 차려내는 한식 상차림의 정갈함도 눈길을 끈다.<br /><br />책은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직장생활을 접은 뒤 원예를 배운 덕분에 정원을 눈여겨보면서 거기에 깃든 미감과 여유를 읽어 낸다. 집을 짓고 살림을 장만해 집 안을 꾸미고 입을거리와 먹을거리를 꾸리는 삶의 기본이 꼼꼼하게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살이에 깃든 600년 조선사의 수많은 사건과 인물, 구한말의 역동적이면서 비감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궁궐은 일부러 제외시켰지만 성균관, 종묘, 국사당을 중심으로 한 의식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우연히 마주친 예술가들의 진솔하면서 향기로운 삶도 기록했다.<br /><br /><strong>새로 발견한 사실도 많을 텐데요.</strong><br /><!--imgtbl_start_2--><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left width=260><tr><td><!--imgsrc_start_2--><img src=http://img.khan.co.kr/news/2009/11/23/20091124000669_r.jpg hspace=1 vspace=1><!--imgsrc_end_2--></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2-->취재중인 필자(왼쪽).<!--cap_end_2--></font></td></tr></table><!--imgtbl_end_2--><br /><br />“맹현과 성돌이를 찾아낸 것이 기분 좋습니다. 맹현은 삼청동길의 언덕쪽으로 나란히 난 길이에요. 맹사성 대감이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성돌이는 동소문에서 시작해 자하문을 돌아나와 이화, 배재학교를 거쳐 남대문을 지나 남산으로 올라갔다가 광희동 수구문과 동대문으로 해서 동소문으로 돌아오는 40리 코스예요. 옛날 서울 사람들이 요샛말로 트래킹을 즐긴 거지요.”<br /><br />그는 순종의 황후 윤씨의 친정조카인 윤건로, 윤흥로씨 형제를 만난 일도 떠올렸다. 황실이 무너진 후에도 무섭게 절제되고 세속적 타협과 멀리한 황실 여인의 고고함을 간직했던 윤비의 조카들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겸손하면서도 정확한 서울말을 구사해 저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br /><br /><strong>북촌을 서울생활의 한 전형으로 규정했습니다. 북촌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strong><br />“전통이지요.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요. 북촌 바깥의 것은 여기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를테면 강남의 소비문화 같은 것. 우리 것이기 때문에 아직 남아 있고 그것을 보는 이들이 좋다고 느끼는 겁니다. 북촌문화에는 서울사람이 지녔던 결곡함과 세련된 의례가 있습니다. 문화를 아는 집안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책을 쓰다 보니 북촌이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중요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br />개인적 흥미와 관심에서 시작해 처음 10꼭지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한 글들은 어느새 30꼭지가 됐다. 자료를 모으고 취재를 한 뒤 그걸 매만져 각 꼭지로 구성했다. 북촌이 그렇듯 저자의 글도 특별한 의도와 체제 없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흘러간다.<br /><br /><strong>20~30대 젊은 세대도 전통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낄까요.</strong><br />“그래도 그 아이들이 뉴요커는 아니잖아요?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북촌을 찾아오는 걸 보면 뭔가 매력을 느끼는 것이지요. ”<br />북촌에는 세종문화회관이나 간송미술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가 있다. 동시에 한국무용가 공옥진의 창무극이 초연되고 김덕수 사물놀이가 세상에 선보인 건축사무소 공간의 지하 소극장 시절에서 시작해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젊은 미술가들의 활동공간인 인사동 미술공간까지 녹록지 않은 대안문화의 역사가 있다. 지금도 우리문화와 서양문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예술가와 관객 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br /><br /><strong><br /><br /><!--imgtbl_start_3--><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150><tr><td><!--imgsrc_start_3--><img src=http://img.khan.co.kr/news/2009/11/23/20091124000670_r.jpg hspace=1 vspace=1><!--imgsrc_end_3--></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3-->




"피곤하고 지쳤을 때 북촌 동네에 가면 편안해지며 원기가 회복되는 걸 느꼈어요. 그게 뭔지 생각해 보다가 북촌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가 2003년. 그 후 7년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사진작가와 함께 북촌 거리를 거닐면서 동네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동네 사람들의 사연을 귀담아 들었다. 소박한 옛날 점포가 사라진 자리에 한옥을 세련되게 개·보수한 갤러리와 카페들이 들어서는 변화도 목격했다. 김유경씨가 펴낸 책 <서울, 북촌에서>(하지권 사진·민음인)는 저자의 정성과 내공이 느껴진다.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28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던 그는 비단 현장취재뿐만 아니라 평생 쌓아온 서울의 역사와 문화, 생활과 관련된 자료와 사진을 이 책에 쏟아 넣었다.

“기자생활 10년쯤 지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서울과 관련한 글을 쓰고 있더라”는 그는 “서울에 이끌리는 건 전통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촌을 오랫동안 지켜본 뒤 나온 결론 역시 “북촌은 가회동이나 삼청동처럼 어느 한정된 지역이라기보다 친근한 숨은 힘 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살이의 한 전형”이라는 것이다.

북촌 취재기를 듣고 싶습니다.
“한옥부터 시작했어요. 한옥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아요. 거기서 만난 송병각 선생 같은 분은 서울사람의 전형이지요. 한옥 하면 부자가 많을 것 같지만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윤보선 가문 같은 엘리트 계층의 문화적 취향도 느낄 수 있고요.”

저자는 골목을 걷다가 쌀가게, 떡가게 주인을 만나는가 하면 대통령 부인 한복을 주로 짓는 이리자씨의 의상실에도 들른다. 그가 말한 송병각씨는 잎이 넓은 피마자를 가꾸며 취미 삼아 독일시와 당시(唐詩)를 번역하는 기품 있는 노인이다.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의 부인 김인숙씨가 차려내는 한식 상차림의 정갈함도 눈길을 끈다.

책은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직장생활을 접은 뒤 원예를 배운 덕분에 정원을 눈여겨보면서 거기에 깃든 미감과 여유를 읽어 낸다. 집을 짓고 살림을 장만해 집 안을 꾸미고 입을거리와 먹을거리를 꾸리는 삶의 기본이 꼼꼼하게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살이에 깃든 600년 조선사의 수많은 사건과 인물, 구한말의 역동적이면서 비감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궁궐은 일부러 제외시켰지만 성균관, 종묘, 국사당을 중심으로 한 의식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우연히 마주친 예술가들의 진솔하면서 향기로운 삶도 기록했다.

새로 발견한 사실도 많을 텐데요.

취재중인 필자(왼쪽).


“맹현과 성돌이를 찾아낸 것이 기분 좋습니다. 맹현은 삼청동길의 언덕쪽으로 나란히 난 길이에요. 맹사성 대감이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성돌이는 동소문에서 시작해 자하문을 돌아나와 이화, 배재학교를 거쳐 남대문을 지나 남산으로 올라갔다가 광희동 수구문과 동대문으로 해서 동소문으로 돌아오는 40리 코스예요. 옛날 서울 사람들이 요샛말로 트래킹을 즐긴 거지요.”

그는 순종의 황후 윤씨의 친정조카인 윤건로, 윤흥로씨 형제를 만난 일도 떠올렸다. 황실이 무너진 후에도 무섭게 절제되고 세속적 타협과 멀리한 황실 여인의 고고함을 간직했던 윤비의 조카들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겸손하면서도 정확한 서울말을 구사해 저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북촌을 서울생활의 한 전형으로 규정했습니다. 북촌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통이지요.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요. 북촌 바깥의 것은 여기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를테면 강남의 소비문화 같은 것. 우리 것이기 때문에 아직 남아 있고 그것을 보는 이들이 좋다고 느끼는 겁니다. 북촌문화에는 서울사람이 지녔던 결곡함과 세련된 의례가 있습니다. 문화를 아는 집안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책을 쓰다 보니 북촌이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중요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흥미와 관심에서 시작해 처음 10꼭지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한 글들은 어느새 30꼭지가 됐다. 자료를 모으고 취재를 한 뒤 그걸 매만져 각 꼭지로 구성했다. 북촌이 그렇듯 저자의 글도 특별한 의도와 체제 없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20~30대 젊은 세대도 전통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낄까요.
“그래도 그 아이들이 뉴요커는 아니잖아요?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북촌을 찾아오는 걸 보면 뭔가 매력을 느끼는 것이지요. ”
북촌에는 세종문화회관이나 간송미술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가 있다. 동시에 한국무용가 공옥진의 창무극이 초연되고 김덕수 사물놀이가 세상에 선보인 건축사무소 공간의 지하 소극장 시절에서 시작해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젊은 미술가들의 활동공간인 인사동 미술공간까지 녹록지 않은 대안문화의 역사가 있다. 지금도 우리문화와 서양문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예술가와 관객 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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