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세대 장애가정 ‘생애 첫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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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마음 벽 허무는 ‘복지관광’ 감동사례 훈훈

부산시 금곡동 공창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 가족들이 경주 신라밀레니엄파크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2세대 이상 장애가 있는 가정의 이번 여행은 복지관광 지원으로 성사됐다. <공창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부산시 금곡동 공창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 가족들이 경주 신라밀레니엄파크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2세대 이상 장애가 있는 가정의 이번 여행은 복지관광 지원으로 성사됐다. <공창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아이들과 밖에서 자고 오는 첫 여행이어서 무척 기쁘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고, 분위기도 다른 만큼 아이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엄마가 장애를 가져 많은 것을 해 줄 수 없어 늘 미안했다’는 백경순씨(43)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지난 10월29일 경주시 보문단지 내 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 부산시 금곡동 사회복지법인 공덕향 공창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이번 여행길엔 2세대 이상 장애가 있는 가정 15가구 30명과 자원봉사자 10명 등 모두 40명이 함께했다. 금곡동 주공아파트는 1099가구 가운데 759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일 정도로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지역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독거노인과 모자가정, 장애인 가정이 많아 이번 여행이 ‘생애 첫 가족여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로 생긴 마음 빗장 여는 가족여행
오전에 부산에서 출발해 1시간 남짓 달려 경주에 도착한 이들의 첫 여행코스는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이기도 한 신라밀레니엄파크. 신라 화랑의 활약상을 특수효과로 재현한 공연 <천궤의 비밀>이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 걸음이 느린 어르신이 대부분이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쁨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백씨는 몇해 전부터 상태가 악화돼 허리에도 장애가 생긴 2급 지체장애인이다. 백씨의 아들 이인호군(14)는 언어장애가 있는 4급 지적장애인이다. 이날 딸 소현양(15)은 봉사자 자격으로 여행에 동참했다.

백씨는 “아무래도 장애가 있고 먹고사는 게 힘들다 보니 여행 기회가 적다”면서 “인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동안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고 말했다. 자신 스스로 위축돼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아이들 덕분에 가을볕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아빠가 빠지기는 했지만 가족끼리 첫여행이라 몹시 설렌다”는 백씨는 “힘들더라도 이렇게 가족과 함께 나오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밝혔다.

장애가 있는 가족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는 김명기씨 가족. <조득진 기자>

장애가 있는 가족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는 김명기씨 가족. <조득진 기자>

보성이 고향으로 타지 부산에 와 살면서도 늘 고향사람들이 그리웠다는 조남옥 할머니(82)는 오랜 농사일로 가슴에 병이 생긴 지체장애인(4급)이다. 3남2녀 중 함께 살고 있는 막내아들 김명기씨(43)는 우울증이 심해 지적장애(3급) 판정을 받았다.

아들 김씨는 “어머니가 바람 쐬는 것을 좋아하셔서 부산 인근 하루 나들이는 많이 했지만 이렇게 1박2일로 숙박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그동안 마음은 굴뚝이었어도 어려운 경제 사정과 부침이 잦은 내 우울증 탓에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며 조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조 할머니 역시 “괜찮다”며 아들의 손을 쓰다듬었다. 아들이 “결혼을 못해 손자들 보는 재미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자 조 할머니는 “아들만 여의면(장가들면) 시방 죽어도 원이 없겄소. 기자 양반이 좋은 일 하나 해 주쇼”라고 말했다.

공창사회복지관의 송정림 사회복지사는 “가정에 장애인이 한 명만 있어도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지는데 이들의 경우 부모와 자녀 2세대가 장애 있는 가정으로, 부모의 장애가 자녀에게 전해진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여행으로 평소 대화가 적은 가족들이 서로 웃으며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복지사에 따르면 1세대 장애 가족의 경우 보통 장애인끼리의 연결이 많다 보니 혼인을 통해서도 비장애인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가슴에 안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초생활대상 장애인의 경우 기초생활대상 비장애인과 달리 언젠간 일을 해서 이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세대 장애 가족의 경우엔 내 자녀가 같은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정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더욱이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거주하지만 각자의 장애를 안고 있다 보니 서로 배려하며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송 복지사는 “장애인의 특성이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면서 “관광 경험이 없어 이런 기회를 낯설어하지만 일단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50%는 마음의 문을 연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들 일행은 감포 앞바다에서 회정식으로 식사하고 숙소에서 ‘스마일 어게인’이라는 웃음치료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이튿날 문화유산 해설가의 안내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구경한 뒤 신라 다도체험과 초콜릿으로 전통문양 만들기 체험을 하고 부산 집으로 돌아갔다.

올해 소외계층 5000명 가족여행 지원

장애가 있는 가족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는 백경순씨 가족. <조득진 기자>

장애가 있는 가족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는 백경순씨 가족. <조득진 기자>

이번 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속에 길이 있다. 희망 대한민국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관광협회중앙회와 진행하는 복지관광 지원으로 성사됐다. 복지관광은 아동, 청소년, 노인,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등 우리 주변에 소외된 이웃의 국내여행 경비를 국가가 전액 또는 일부를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2001년부터 관광협회중앙회가 국민관광상품권 발행 수익으로 자체 진행하다가 2005년에 문광부가 참여하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지금까지 1만5000여 명이 복지관광 지원 혜택을 받았다.

관광협의회중앙회 정민영 대리는 “올해는 무안군 다문화가족이 제주도에 다녀왔고, 인천 YMCA 삼산종합사회복지관 장애청소년과 북한 이탈 주민들이 경북 문경으로 여행하는 등 84개팀이 선정돼 여행의 기쁨을 맛보았다”면서 “복지관을 통한 단체여행으로 진행되는 취약계층 복지관광의 본행사 외에도 설과 추석, 가을철 특별여행을 포함하면 대상자가 5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여행지원금은 올해의 경우 1인당 최대 15만원까지 지원하고 있고, 향후 지원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원금이 주어진다고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여행에 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어려움이 마음의 문까지 닫아 ‘바깥’으로 나오기 주저하는 것이다. 공창종합사회복지관의 송 복지사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한 부녀세대에게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반응은 쌀쌀했다. 아버지의 장애가 딸에게까지 대물림된 경우인데, 그래서인지 부녀간의 대화는 단절된 상태다. 특히 딸의 경우 장애등급에 따라 정부지원이나 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등급 심사를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출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몇 번을 설득했지만 결국 부녀는 여행을 포기했다. 장애가 부모자식간의 마음까지 닫아 남보다 못한 관계를 만든 것이다.

출발 당일 아침에도 한바탕 곤혹스러운 일을 치러야 했다. 송 복지사는 “여행 지원자 가운데 지적장애를 안고 있는 부부가 있는데 정상인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도저히 키울 사정이 못돼 국내입양한 일이 있다”면서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을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서로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아침 여행 출발 전에 다른 집 아이들을 보곤 설움이 복받친 듯 울며 ‘안 가겠다’고 해서 한참을 달래 함께 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복지관광은 가족여행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복지관에서 효도관광이나 장애인관광, 아동관광을 진행하고 있지만 가족 구성원의 여행은 비용이나 일정 면에서 힘에 부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복지사는 “일을 하다 보면 가족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데 이는 그만큼 가족간 대화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관광 넘어 자활의지 북돋아

경주 감포해수욕장 앞에 선 장애인 가족들. 시원한 바닷바람은 서로 간에 ‘마음 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 <조득진 기자>

경주 감포해수욕장 앞에 선 장애인 가족들. 시원한 바닷바람은 서로 간에 ‘마음 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 <조득진 기자>

84건의 여행이 이뤄지다 보니 감동 사례도 있다. 부산뇌병변복지관의 여행은 감동과 함께 장애인여행의 어려움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난 6월 부산뇌병변복지관의 제주도 여행에는 언어능력이나 신체능력이 떨어져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취업률이 낮은 뇌병변 청년장애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해당 가족 65명이 참가했다. 정부지원금으로는 여행 경비기 턱없이 부족해 여행 전에 봉사자, 복지관 직원, 장애인들은 부산을 3권역으로 나눠 어버이날을 중심으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판매해 수익금 160만원을 여행경비에 보탰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전기 휠체어 7대, 수동 휠체어 17대를 비행기에 싣는 것부터 시작해 고생이었다. 공항 측도 휠체어를 다루는 법이나 장애인을 대하는 능력이 미흡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에 도착했지만 제주도에는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가 없어서 자원봉사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봉사동아리에 여자가 많은 탓에 급하게 도움을 구한 대학 농구 동아리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복지관광 참가자들의 반응에서 “자원봉사자 확충이 필요하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장소로 관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다양하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1만원이 낳은 기적도 있다. 안산시이주민센터와 중국동포연합회는 65세 이상의 국적을 회복한 동포를 대상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2년 전부터 한 달에 1만원씩 돈을 모았다. 고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여러 곳을 돌아보고 싶지만 몸이나 재정 상태 모두 여의치 않아 장기간 계획을 짠 것. 그러나 비행기 삯도 모이지 않자 포기하는 동포가 속속 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복지관광의 소식을 듣게 된 것. 이마저도 2년 동안 1만원씩 모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행 참가자 대부분이 중국 동포여서 백두산과 함께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에 갔다는 것이 대단한 자랑이 됐다는 후문이다.

송 복지사는 “장애인이든 결손가정이든 나를 내놓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중요하다”면서 “여행은 물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폭넓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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