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금은 소주전쟁 중’ 마케팅에 취한 부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선주조 아성에 롯데주류 자금력 앞세워 판촉전

부산 소주시장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대선주조에 대해 무학·진로·롯데주류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으로, 판촉전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

부산 소주시장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대선주조에 대해 무학·진로·롯데주류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으로, 판촉전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

10월29일 저녁, 부산 진구 부전동 영광도서 건너편 남해수산횟집. 테이블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기본 찬과 함께 ‘C1 소주’를 내온다. “아직 술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종업원이 “두 번 오가기 싫어서 일단 C1을 먼저 내온다. 

다른 것으로 갖고 올까?”라고 답했다. 손님의 십중팔구는 C1을 주문하기 때문에 기본 상차림에 포함했다는 설명이다. 올 여름 ‘소주전쟁’이라 불리며 각축전을 보인 부산 주류시장이지만 C1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러나 횟집의 테이블을 둘러보니 14개 테이블 가운데 C1을 마시는 경우가 9곳. 나머지 테이블엔 무학의 ‘좋은데이’, 진로의 ‘참이슬’,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올려져 있었다. 적어도 종업원의 말처럼 십중팔구는 아닌 듯하다. 특히 올 봄 업계 2위인 두산주류를 인수한 롯데주류가 정신적 연고지인 부산을 겨냥해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펼치면서 부산 소주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횟집의 홍자혜 사장(51)은 “롯데가 자금력을 앞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처음처럼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술도 입맛에 길들여진 것이어서 당분간 C1에 대한 주문은 여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점유율 74% 대선주조 수성 안간힘
부산 소주시장의 변화는 점유율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월별로 조사한 후 각 주류회사에 보내는 자료에 따르면 8월 현재 부산 주류시장 점유율은 대선주조가 74.7%로 수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무학 16.1%, 진로 6.7%, 롯데주류 2.3%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점유율(누적) 82.0%를 보인 대선주조는 올 5월 71.4%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 14%대에서 시작해 5월 대대적인 판촉전에 힘입어 19.9%를 기록하며 20%대 진입을 앞두고 있던 무학은 이후 3개월 동안 16%를 형성하고 있다. 진로 역시 올해 초 4.5%에서 시작해 6개월 연속 6%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롯데주류의 경우 연초 0.2%에서 8월 2.3%로 10배가 넘는 점유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수치에 대해 각 주류회사의 분석은 상반된다. 특히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대선주조와 자본력을 앞세워 부산지역 공략에 나선 롯데주류의 해석엔 ‘기 싸움’마저 느껴진다. 우선 롯데주류는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처음처럼의 점유율은 지난해 0.5% 수준에서 롯데주류로 바뀐 3월에는 0.4%로 올랐고 4월에는 처음으로 1%를 넘어서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 롯데주류 관계자는 “롯데가 처음처럼을 인수한 이후 부산지역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면서 “부산·경남 지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10%대로 끌어올려 올해 말쯤 전국시장 점유율을 15%대로 높인다는 게 회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대선주조의 반응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선주조 마케팅팀 김용근 이사는 “수치만 보면 상당한 상승세라고 할 수 있지만 2%대의 점유율은 사실상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서 “롯데주류 입장에서야 대형 유통망과 롯데자이언츠의 열기를 앞세워 쉽게 잠식할 줄 알았겠지만 현재 시장에선 초기진입 실패로 보고 있다”고 일축했다. 김 이사는 “주류 유통의 경우 가정용, 할인점용 등 소매 유통보다는 유흥음식점용의 업소 유통 비중이 높은 만큼 롯데그룹의 유통망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롯데 야구와 롯데 소주는 별개라는 인식 또한 큰 만큼 롯데주류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지금은 소주전쟁 중’ 마케팅에 취한 부산

이에 대해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 수치에 대해선 해당사마다 이를 해석하는 차이가 있지만 처음처럼의 수치상 변화는 분명 상당한 의미가 있다”면서 “반면에 영화 <해운대>를 통한 홍보와 부산 주류시장 각축전에 대한 관심은 C1에 대한 전국적인 주목을 가져왔고, 향후 대선주조의 계획처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지역에서의 인지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서울에서 내려온 거래처 손님을 접대하고 있던 ‘부산 사람’ 박홍섭씨(41)는 “부산에서 자라면서 C1으로 술을 배워 자연스럽게 마시고 있다”면서 “처음처럼과 C1의 맛 차이는 맥주로 비유하면 카스와 하이트로, 부산 사람들은 카스처럼 톡 쏘는 맛보다는 하이트처럼 부드러운 목 넘김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C1의 부드러움에 길들여진 부산 사람들이 쉽게 입맛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 손님’ 박문수씨(49)는 “부산지역에 출장 오면 C1을 마시게 되는데 대선주조가 부산의 향토기업이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의 애정이 큰 것 같다”면서 “롯데 측으로선 지금까지 대선주조가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업소를 뚫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 주류업계, 특히 소주업계의 각축장이 된 이유는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부산은 전체 소주시장의 47%인 수도권 다음으로 8%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 시장이다. 특히 소주와 궁합이 맞는 생선회가 풍부하고, 산업이 발달해 들고나는 사람이 많으며, ‘바다 사나이’라는 지역적 기질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수도권과 상당 거리 떨어져 있어 수도권 브랜드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도 각축장이 된 이유다.

롯데 2.3% 점유율 평가 엇갈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롯데의 경우 정신적 고향인 부산을 기반으로 주류업계 최대 소비시장인 서울 및 수도권 시장으로의 진출, 무학은 경남이라는 한정된 지역 시장에서 벗어나 부산 시장의 본격 진출, 진로는 전국 소주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의지에서 부산 소주시장의 진출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달 사이 부산 소주시장은 부산시장을 지키려는 대선주조와 이를 탈환하려는 롯데 및 무학의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한참 떠들썩했다. 특히 지난 여름은 대한민국 주류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총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게 업소 주인들의 전언이다. 대선주조는 해운대해수욕장 상공에 C1과 지난 4월 새롭게 출시한 16.7도의 초저도 소주 봄봄을 홍보하는 대형 애드벌룬을 띄우고 홍보 도우미를 동원하는 등 해변에서 시음회 등 판촉활동을 벌였다. 무학 역시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등 부산지역 피서지를 중심으로 영업사원들과 도우미들을 동원해 시음회를 열고 인근 소주방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했다. 롯데주류도 해수욕장 등 피서객이 몰리는 부산지역 업소들을 중심으로 휴대용 소주 냉장 케이스 C-팩, 아이스박스, 얼음 등을 제공했다.

같은 날 저녁에 서면역 앞 옛 태화백화점의 후신인 ‘쥬디스 태화’ 뒤편 먹자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김형욱씨(22)는 “여름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 술집에선 무료·덤 소주가 넘쳐 나 ‘소주를 돈 내고 마시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면서 “예쁜 아가씨들이 공짜 술을 따라 주니 싫어할 사람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친 마케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일행인 한수윤씨(21)는 “손님들이 술을 마실지 안 마실지 묻지도 않고 무조건 병마개를 딴 뒤 테이블에 올려놓고 술값을 내 주는 ‘대납마케팅’이나 소주 1병을 시키면 1병을 공짜로 주는 ‘1+1 덤마케팅’ 등 모두 불법 아니냐”면서 “이런 마케팅 비용은 고스라니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법판촉 활동 시장 혼란” 우려

부산에서는 C1의 인기가 여전하다. 부드러운 소주를 좋아하는 부산 소비자들의 성향에 잘 맞췄다는 분석이다. 한 횟집에서 손님들이 C1 소주를 마시고 있다. <조득진 기자>

부산에서는 C1의 인기가 여전하다. 부드러운 소주를 좋아하는 부산 소비자들의 성향에 잘 맞췄다는 분석이다. 한 횟집에서 손님들이 C1 소주를 마시고 있다. <조득진 기자>

결국 불법적인 판촉활동은 시장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한 조치로 부산 관계당국의 제재가 더욱 심화됐고, 대선·무학·롯데·진로 간에 공정거래 협약이 체결됐으나 불법적인 행위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활동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대선주조와 롯데주류는 마케팅의 중점을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정서 호소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롯데주류는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애정을 활용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올해 초 사직구장에 무학소주 광고판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자사 소주 브랜드인 처음처럼 광고로 대체했고, 올 시즌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롯데자이언츠의 유니폼에 처음처럼 로고를 새겨 넣었다. 4월부터는 롯데자이언츠의 강민호 선수와 인기가수 이효리를 공동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시작하고 판촉 사원들이 롯데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본사 영업사원 500여 명이 부산 롯데호텔에서 영업전진대회를 잇따라 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부산 지역에서 뿌린 판촉비가 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대선주조는 ‘부산은 대선, 부산소주는 시원’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80년 가까이 부산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선주조는 1970년대 양조장 통폐합으로 인한 소주 ‘1도1사’ 체제 덕에 부산 대표소주가 됐고, 외환위기 직후 부도가 났을 때 부산 시민들이 대선 살리기에 팔을 걷었을 정도다. 대선주조는 “부산 공장에서, 부산 사람들로 이루어진 직원들이 만드는 소주이기 때문에 부산시민의 입맛과 지역정서에 맞는 정통성이 강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선주조는 부산지역의 각종 지역행사 및 축제를 후원하는 등 사회환원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 부산 주류시장의 소주전쟁은 저도주에서 ‘2라운드’를 벌이고 있다. 무학의 ‘좋은데이’(16.9도)가 부산시장은 물론 전국 저도주시장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대선주조가 ‘봄봄’(12.7도)을 출시하고, 이어 롯데도 8월 말 ‘처음처럼 쿨’(16.8도) 출시로 맞불을 놓은 것. 특히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에서 저도주 소주가 인기를 끌어왔던 점을 보면 ‘처음처럼 쿨’은 부산을 정조준한 제품이다.

부산에서 만난 소주 소비자들은 ‘향토’나 ‘고향’을 내세우는 기업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드러냈다. 특히 대선주조에 대한 ‘먹튀’ 논란으로, “롯데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공통적 발언이다. 공교롭게도 부산을 찾은 이날 오전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신 회장 일가는 ‘시원소주’로 유명한 부산의 주류 회사인 대선주조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2004년 6월 외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 일가 5명의 이름으로 대선주조 주식 38만5880주(50.79%)를 사들인 것을 시작해 총 600억원가량을 투입해 회사를 인수했다가 부산시 지원 등으로 부산 기장군에 공장을 증설한 뒤 3년 만인 2007년 11월 한국금융지주 산하 사모펀드 업체와 시원네크웍스에 3600억원을 받고 대선주조를 매각했다. 신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소주에 있어서는 시민들이 롯데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현재 부산의 소주전쟁은 터줏대감 대선주조가 경남의 맹주 무학, ‘처음처럼’을 인수한 롯데주류의 거센 도전에 맞서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소주 소비량이 더 늘어나는 가을·겨울을 지나면서 부산지역 소주시장 판도 변화가 있을지 부산 ‘주당’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