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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잃은 정몽준, 말없는 박근혜, 말먹힌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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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총선’ 10·28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 득실 따라 희비 교차

왼쪽위부터_ 정몽준 대표,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정세균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이회창 총재.

왼쪽위부터_ 정몽준 대표,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정세균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이회창 총재.

전국 5곳에서 10월28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 개표 결과 민주당이 3곳, 한나라당이 2곳에서 당선됐다. ‘미니 총선’으로 불린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경기 수원 장안, 안산 상록을 등 수도권 2곳과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에서 승리함으로써 사실상 완승했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남에 따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여권에서는 국정운영의 쌍두마차인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국민들로부터 국정운영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심이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대해 사실상 ‘정권 심판’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중도실용론과 친서민정책에 대해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의제인 세종시 수정론, 4대강 살리기 사업, 노동관계법 개정(복수노조허용) 등이 우선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특히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40%가 넘는 상황에서 수도권표가 이탈한 것은 여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 ▲행정구역 재편 절차 돌입 ▲방송인 김제동·손석희씨 성향 논란 ▲용산 참사 유가족에게 중형 구형 선고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이번 선거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정책이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들이 판단한 결과”라면서 “한나라당도 정권을 잡은 이후 국민과의 소통은 접어 두고 웰빙정당·부패정당으로 되돌아가고 있어 참패했다”고 꼬집었다.

정운찬 총리 세종시 주도권 약화
이 대통령의 국정 동반자인 정운찬 총리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세종시 수정론을 주장해 온 정 총리에게 고향인 충청도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이 핫이슈로 떠오른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선거에서 민주당 정범구 후보는 41.9%를 득표해 한나라당 경대수 후보(29.6%)를 큰 표 차로 따돌렸다. 결국 민주당 정범구 후보의 당선은 9부 2처 2청 이전 등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역 목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에 올인했던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의 부침도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위기에 처해 있다. ‘거대 여당 대표’로 치른 첫 시험에서 성적표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한나라당 지역구(수원 장안, 안산 상록을) 의석을 빼앗긴 데다 한나라당이 건진 2석(강원 강릉, 경남 양산)도 텃밭임에도 힘겹게 승리를 거뒀다. 특히 정 대표는 유세기간 내내 수원 장안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이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온힘을 쏟아 부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승계 대표’ 또는 ‘식물 대표’라는 꼬리표를 떼고 조기 전당대회 요구를 불식시키는 한편 차기 대권주자로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 패배로 한나라당 내에서는 정 대표에 대한 ‘선거 패배 책임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정 대표 체제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보선 결과와 관련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 플러스 요인은 재보선 결과로, 정몽준 체제가 흔들림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여기에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를 한나라당 간판으로 세우지 않는 한 한나라당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에 친이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도 재보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로서 이번 선거에서 시종일관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함에 따라 여권의 자중지란 모습이 선거에 악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턴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박 전 대표는 선거 국면에서 선거 지원유세를 다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종시 발언으로 당에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박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당대회에서 대표직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독기 김영환, 정범구 ‘화려한 귀환’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천신만고 끝에 금배지를 다시 달았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민주정의당 때부터 한나라당까지 대변인,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 당대표 등을 두루 역임한 5선 의원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민주당의 신예 송인배 후보에게 손에 땀을 쥐는 승부 끝에 가까스로 이겼기 때문이다. 그는 경남 양산으로 지역구를 옮긴 데 따른 부담에다 낙천한 여권 후보들의 무소속 출마, 친노 세력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송인배 후보의 맹추격으로 선거 막판까지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여의도 입성을 계기로 한나라당 내에서 정몽준 대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과 함께 최다선인 6선 의원의 반열에 올랐다. 박 전 대표가 꿈꿔 온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한 발 더 다가온 셈이다.

이번 재보선 최대의 수혜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승리의 주역인 정세균 대표-손학규 전 대표의 ‘양강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두 사람이 잠재적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손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시점이 되면 선의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치] 말잃은 정몽준, 말없는 박근혜, 말먹힌 손학규

민주당의 최고사령탑인 정세균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절대 기준으로 평가된 수도권 2개 지역구에서 싹쓸이했다. ‘파부침선(破釜沈船, 죽을 각오로 싸움에 임한다)’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진두진휘한 정 대표로서는 ‘승리’ 이상의 ‘승리’를 거둔 셈이다. 이에 따라 다소 흔들렸던 정세균 대표 체제도 더욱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리더십이 더욱 굳건해지고, 앞으로 대여투쟁 전략이나 각종 당내 현안에 대한 그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정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 직후까지 임기 2년을 모두 채울 가능성이 높다. 그는 효성그룹 비자금 문제 등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과 정운찬 총리의 해임건의안 제출, 4대강 사업과 내년도 예산안 연계 등 민주당의 강도 높은 투쟁을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당내 비주류는 당의 정체성 문제 제기 등 정 대표 ‘흔들기’를 당분한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주당에 복당 결정을 압박하고 있는 무소속 정동영 의원도 목소리를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본인의 정치 생명을 건 도박에서 살아남았다. 손 전 대표는 지도부의 종용이 있었음에도 수원 장안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당에 실망감을 안겼지만 이찬열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지역을 누비면서 선거 초반에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에게 20%포인트 가까이 뒤졌던 판세를 결국 뒤집었다. 그는 지난 4·29 재보선에서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장 선거에서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돼 승리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여의도 복귀’와 2012년 대권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손 전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밑바닥 민심을 훑었다. 수원 천천동의 한 아파트에 월세방을 마련한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장안구내 교회를 찾아 새벽기도로 하루 일정을 시작해 밤 12시까지 동네 골목골목을 누볐다. 손 전 대표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민주당 상징색인 녹색 재킷 한 벌만 입고 “민주당을 살려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선거가 끝난 뒤 손 전 대표는 칩거했던 강원 춘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여의도 복귀는 시간문제다.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송인배 후보를 내세워 민주당 불모지에서 여권 거물급 인사인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와 맞붙어 선전함으로써 ‘의미있는 패배’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세운 송 후보의 선방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정론과 안희정 최고위원,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민주당 안팎의 친노인사들이 총결집해 선거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산 선거의 결과로 친노 진영이 부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민주당 내의 친노그룹과 당 밖의 국민참여정당(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천호선 전 대변인이 주도), 친노 진영을 망라한 시민주권모임(대표 이해찬 전 총리)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지 주목된다.

민노-진보신당 정치력 한계 여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그동안 ‘와신상담’해 온 올드보이들이 민주당에 다시 들어오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안산 상록을에서 당선된 김영환 전 의원과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의 정범구 전 의원은 지난 16대 국회 시절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의 개혁 성향 소장파들이었다. 이들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중심이 된 열린우리당행을 거부해 정치생명에 위기가 닥쳤다. 김 전 의원은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정 전 의원은 17대 총선에 불출마했으며 18대에서는 서울 중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게 패했다.

원내 제3당인 자유선진당(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번 재보선으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충청권의 맹주를 자처하는 선진당은 충북과 안산에 후보를 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충북에서의 초라한 성적표는 ‘과연 선진당이 충북에서 존재감이 있나’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이 총재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충북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득표율 4위에 그쳤다. 선진당 정원헌 후보의 득표율은 4.4%로 민주당 정범구 후보(41.9%)와 한나라당 경대수 후보(29.6%)에 훨씬 못미쳤다. 특히 정원헌 후보는 선진당을 탈당한 심대평 의원이 지원한 무소속 김경회 후보(20.11%)에도 완패함으로써 이 총재는 충청권의 라이벌인 심 의원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이 총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안산에서 연대해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밀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강 구도에 휘말려 3파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저버리고 임 후보는 일찌감치 선두권에서 멀어졌다. 특히 민노당 강기갑 대표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직접 나서서 민주당 김영환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주도했지만 실패했다. 강기갑·노회찬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특히 민노당은 수원 장안과 경남 양산, 충북 4군 등 3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지만 후보들의 지지율이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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