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계천서 쫓겨나 동대문서 길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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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50여 곳 동대문디자인파크 개장 앞두고 강제철거 수난

주변 상가의 불빛에 비친 DDP 건설 현장의 모습과 인적이 드문 곳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장사하는 서명순씨의 처지가 비교된다.

주변 상가의 불빛에 비친 DDP 건설 현장의 모습과 인적이 드문 곳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장사하는 서명순씨의 처지가 비교된다.

장면 하나. 10월27일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일명 DDP)의 부분 개장 행사가 열린다. ‘디자인 서울’의 랜드마크로 짓고 있는 DDP는 2011년 12월 말에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부분 개장 행사는 동대문디자인파크(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개장을 축하하는 자리다. 디자인파크는 3만7000㎡에 이르는 규모이며, 이곳에는 녹지와 휴식공간이 마련된다. 또한 일제시대 때 사라진 성곽 등 문화재도 함께 복원되거나 보존될 예정이다. 한쪽에서는 레미콘 차량과 공사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고, 한쪽에서는 마무리 공사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현장이 궁금한지 한참을 구경하다 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옛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DDP 개장 준비로 활기가 넘쳤다.

개발에 밀려 영업 보장없는 이전

한양공고 뒷길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인들은 서울시의 강제 철거에 대비하기 위해 집에 가지도 않고 천막에서 자고 있다.

한양공고 뒷길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인들은 서울시의 강제 철거에 대비하기 위해 집에 가지도 않고 천막에서 자고 있다.

장면 둘. 오후 6시, 길거리가 어둑해지자 DDP가 보이는 한양공고 뒷길에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노점상 역시 대부분 물건을 천막으로 덮고 장사를 접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물건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찍 장사를 끝낸 것이다. 그런데 형광등을 켜 놓고 장사하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각종 공구와 액세서리, 옷 등을 팔고 있는 서명순씨다. 서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노점상으로 살아 온 30여 년 동안 요즘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어서 시작한 노점상. 처음 종로와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시작했을 때는 먹고살 만했다. 단속반을 피해 매일 도망치기 일쑤였지만 장사는 잘된 때였다. 청계천 공사 때문에 장사가 잘되는 청계천을 떠나 동대문운동장으로 옮기라고 했을 때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만들겠다”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세훈 시장이 DDP를 만든다고 나가라고 했다. 서씨는 다시 한양공고 뒤쪽으로 옮겨야만 했다. 이때도 서울시는 중구노점상 특화거리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서씨는 11개월 동안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한양공고 뒷길에서 장사를 했다. DDP가 개장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시조차 하지 못한 날도 부지기수이다. 한두 점의 물건을 팔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장사를 하면 할수록 밥값과 교통비 때문에 적자였다. 그런데 DDP 개장을 앞두고 서울시는 약속과 달리 또다시 서씨와 다른 노점상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노점상인 서명순씨가 서울시의 노점 강제 철거에 반발해 써 놓은 자신의 유서. 그만큼 서씨에게 있어 노점은 삶의 모든 것이다.

노점상인 서명순씨가 서울시의 노점 강제 철거에 반발해 써 놓은 자신의 유서. 그만큼 서씨에게 있어 노점은 삶의 모든 것이다.

서울시는 DDP 개장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가로환경개선반의 이 모 팀장은 “노점상인들이 하는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우리가 특화거리를 해 주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면서 “DDP 오프닝 행사를 하면 시민이 많이 찾아올 텐데 노점상이 있으면 미관상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강제로 철거하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협조를 얻어 자발적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일부 노점상은 나이가 많아서 못나간다는 등 이유를 대면서 그곳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노점상의 이야기는 다르다.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여 년 동안 노점상을 계속하고 있는 홍경희씨의 말이다.

“청계천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반강제적으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주하게 했다. 당시 서울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이 공원으로 바뀌어도 풍물시장은 남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은 DDP를 만들어야 하니까 한양공고 뒷길로 가라고 했다. 서울시는 이곳에 특화거리를 만들어 5~10년 동안 장사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노점상이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다고 강제로 우리 부스를 철거했다.”

10월18일 새벽에 사설용역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맥스타일 건설 현장 앞에서 장사하던 50여 개 노점들을 박살낸 현장의 모습.

10월18일 새벽에 사설용역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맥스타일 건설 현장 앞에서 장사하던 50여 개 노점들을 박살낸 현장의 모습.

오세훈 시장은 DDP 건설을 위해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청계천에서 밀려나 풍물시장으로 온 노점상이었다. 이 가운데 850여 명이 옛 숭인여고 자리로 이전했고, 70명 정도는 훈련원공원 주변과 옛 전매청 자리 주변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120여 명은 한양공고 뒷길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노점상 대표자와 서울시 사이에서는 중구노점 특화거리에서 5~10년 동안의 장사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 미관을 위해 150×200㎝ 규모의 부스를 설치했다. 서울시와 노점상인들이 부스 제작비를 반반씩 부담했고, 노점상인은 160만원을 부스 제작비로 내놓았다. 그리고 올해 3월까지 부스에 전기시설도 가설했다.

시-노점상대표 이주합의서 분실
당시 서울시와 노점상 대표자는 이주에 관한 약속사항을 담은 서류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그 서류의 행방이 모호한 것. 당시 그 서류에는 화장실 문제, 전기 가설, 이주비용 보상, 영업기간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공고 노점특화거리 대책위원회 은희령 대표는 “당시 서울시와 8개 사항을 합의했다. 그때 노점상 대표 5명이 서울시와 함께 이행각서를 작성했는데 현재 그 서류가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노점상들은 “서울시가 약속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서울시 측에서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오후에도 한양공고 뒷길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다. DDP가 개장하면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버텨왔던 노점상들은 DDP 개장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오후에도 한양공고 뒷길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다. DDP가 개장하면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버텨왔던 노점상들은 DDP 개장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 있다.

9월24일 서울시는 한양공고 뒷길의 노점 부스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날 21대의 부스가 철거됐다. 10월3일에는 20대의 부스가 철거됐다. 서울시는 강제철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자발적으로 옮기면 부스를 주겠다” “근처 상가에 노점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등의 이야기를 했고, 이 말을 믿고 자발적으로 옮긴 노점상도 있다. 그러나 DDP 개장만을 기다리는 50여 명의 노점상인들은 한양공고 뒷길에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도 10월27일까지 청계8가로 옮기기로 서울시와 합의해야만 했다.

노점상인들은 서울시의 약속을 믿고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동대문운동장에서 한양공고 뒷길로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서울시의 노점상인과 약속은 무용지물이었다.

사설용역업체 노점 54곳 박살
이와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발생했다. 이번에는 서울시나 중구청 직원이 아닌 사설 용역이 노점을 박살낸 것이다. 맥스타일 건설이 진행 중인 옛 흥인시장 주변 노점상인들은 10월18일 새벽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당했다. 300여 명의 사설 용역이 그곳에 있는 54대의 노점을 모두 부순 것이다. 

맥스타일 보안팀 명의로 주변 노점상인들에게 보낸 철거 최후통첩장.

맥스타일 보안팀 명의로 주변 노점상인들에게 보낸 철거 최후통첩장.

이곳 노점상인들은 파괴된 노점을 치우지 않고 있다. 그만큼 감정이 격앙된 상태다. 이곳 노점상인들은 대다수 10~30년 장사를 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점상인 김 모씨는 “서울시와 흥인시장조합 및 우리가 맥스타일 개점 1개월 전까지만 장사를 하겠다고 합의한 상태였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일요일 새벽에 이 난리를 친 것이다. 그때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주 늦게 나타나서 방관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노점상인은 “우리가 여기에서 평생 한다는 것도 아니고, 나간다고 했는데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DDP에 온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우리는 부서진 노점을 치우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도 못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DDP 개장을 앞두고 노점상 수난이 계속 되고 있다. 노점이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글·사진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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