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홈플러스 회장의 ‘마이너스’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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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회장 ‘장애인 차별 발언’ 구설… 국감 답변서도 의원들 힐난 불러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설화’에 올랐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매출 하락과 SSM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업이 자금난과 매각설 등에 시달린 ‘조급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설화’에 올랐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매출 하락과 SSM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업이 자금난과 매각설 등에 시달린 ‘조급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들면 빵을 사 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소상공인들이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우리에게도 강요하고 있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회장이 지난 16일 아시아태평양 소매업자 대회에 참가해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며 기업형 슈퍼(SSM) 진출에 반대하는 중소상공인을 ‘장애인이 만드는 맛없는 빵’이라고 비유, “장애인차별 발언을 했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그는 나아가 “SSM을 적극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개인대형슈퍼를 1~6개 소유한 사람들”이라면서 “이들이 맛없는 빵을 만들어 판매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마치 SSM 진출 저지싸움을 부유한 상인들만 하는 것처럼 몰아가기도 했다. 그는 또 “SSM 정책이 친서민적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이유는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토론이 끝난 뒤 “비유가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애인이 만드는 맛없는 빵’ 발언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장애인단체와 소상인단체들은 ‘장애인 차별 발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장애인단체들이 삼성테스코 본사를 찾아가 “이 회장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한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하고 “이 회장은 장애인이 만든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시식해 보고 그런 말을 하라”며 장애인이 만든 빵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서인환 사무총장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장애인을 발언한 것은 가장 큰 문제”라면서 “평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보신당 장애인위원회, 느티나무 경남 장애인부모회 등 장애인단체들과 기관들도 릴레이로 성명을 내고 이 회장의 공개사과를 촉구했다.

중소상인들도 발칵 뒤집혔다.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와 중소 상인들도 이 회장의 망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회장이 자신들을 ‘맛없는 빵을 만드는 장애인’에 비유한 점과 대형슈퍼를 5개씩 가진 부자 상인들이 SSM 진출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 발언의 허구성을 질타하며 홈플러스와의 전면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회장 발언의 배경과 관련해 “이승한 회장은 지금 대형마트와 SSM을 운영하고 있는 재벌유통 회사들의 연합체인 ‘체인스토어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면서 “그가 회장으로서 ‘총대’를 메고 중소상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삼성테스코 본사 앞에서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장애인 차별 발언에 대한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빵이 정말 맛이 없는지 먹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비마이너 제공>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삼성테스코 본사 앞에서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장애인 차별 발언에 대한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빵이 정말 맛이 없는지 먹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비마이너 제공>

이와 함께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이 회장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소송가액은 7개 소상공인단체 대표 1명당 1원씩 총 7원으로, “물질적 배상보다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것”이라는 설명했다.

이렇게 논란이 확산되자 홈플러스 측은 “이 회장이 다니는 교회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빵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가운데 장애인들이 더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어야 수익도 늘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홈플러스그룹의 제빵회사가 기술 지원을 하는 등 돕겠다는 얘기를 하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회장의 ‘망발’ 또는 ‘소신 발언’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서 “SSM 때문에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립니다”는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의 말에 “가슴에 손을 얹고 SSM은 친서민 정책이라고 봅니다”라고 대답한 것. 질의하던 조 의원은 이 회장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고, 여당 의원들조차 이 대표에게 “무슨 궤변이냐”고 힐난했다.

업계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은 단순한 궤변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무엇이든 ‘친서민 정책’으로 포장하고 뒤로는 친기업 행보를 벌이는 현 정부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감 사흘 전인 12일 지식경제부는 이 회장이 대표로 있는 체인스토어협회와 함께 설문조사를 벌여 SSM의 폐해가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영 악화가 회장님 조급증 불렀다?
1999년 2개 점포로 시작한 홈플러스는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전국에 113개 대형 할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1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승한 회장은 유통업계의 마술사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 발언과 행보를 보는 재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지난 8월에는 자신의 에세이 출판기념회 경비 일부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가 곤욕을 치른 이후 개인카드로 재결제했다. 유통업계의 한 간부는 “평소 책임경영, 사회경영을 외치던 사람이 이 회장”이라면서 “그의 개인홈페이지는 업계에서 유명한데, 그 속에 담긴 모습과 최근 행보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최근 홈플러스의 매출 부진에서 그 답을 찾기도 한다. 

SSM 설치가 미뤄지면서 이로 인한 홈플러스의 손해가 누적되자 작심하고 ‘정면돌파’에 나선 모양새라는 분석으로, 이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최근 SSM 문제 때문에 10∼30개를 열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 SSM에 대한 전체 사업조정신청건수(73건) 가운데 50%가 넘는 37건이 홈플러스로, 오픈을 준비한 매장들이 문을 열지 못하면서 이로 인한 인건비와 관리비 등으로 인한 손해가 누적됐다.

홈플러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9월부터는 자금난설, 매각설이 퍼지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이에 대해 “매각설이 나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현재 부채 비율이 30%선으로 안정적인 상태”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테리 리히 영국 테스코그룹 회장이 방한하면서 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행여 매각 문제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궁금증에서다.

무성한 억측에 대응하기 위해 홈플러스는 매각설 등에 대한 해명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테스코가 한국 시장에 투자한 금액은 6조4000억원에 달하고,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에 4조원대 규모의 투자를 할 계획이다. 매각은 어불성설이며, 앞으로 더 열심히 기업활동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매각설과 위기설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튀어나온 이 회장의 막말에 대해 질책이 많지만 일각에선 ‘의도적인 행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승부사 기질이 강한 이 회장 성격상 무심코 내뱉은 말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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