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건축 투기경마장 ‘은마’ 다시 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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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은마아파트 안전진단계획 발표… 규제완화 통과 기대감

최근 강남구로부터 안전진단계획을 통보받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모습.

최근 강남구로부터 안전진단계획을 통보받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모습.

“안전진단 소식 덕에 전화는 좀 늘긴 했지만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시세에 반영돼 있어 예전과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은마아파트 주변 P공인중개사사무소 박명준 중개사(53)는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는 달리 한가하기까지 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부동산시장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강남구가 전격적으로 은마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수순을 위한 정밀안전진단 실시계획을 발표했다. 2003년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지 6년 만의 안전진단이며, 결과는 내년 1월 말께 나온다. 이에 따라 부동산시장이 다시 한 번 들썩일지 초미의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수익성 하락, 추가 부담금 우려도
그동안 은마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가부 논란은 ‘뜨거운 감자’였다. 사교육 열풍을 타고 입시특구로 대치동이 뜨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수직상승하기 시작한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에 대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꾼들까지 몰려들면서 강남의 대표적인 ‘대박’ 투자처로 각광받아 왔다. 은마아파트에서 부동산 업소를 15년 동안 운영해 온 희망공인의 김성호씨(55)는 “은마아파트는 실거주자가 거의 없는, 그냥 투기판이라고 보면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은마아파트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자녀 교육을 위한 전세 수요가 많다. 시설이 워낙 노후화돼 돈 있는 사람들은 여기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재건축이 추진된다고 하지만 재건축이 어떤 방식으로 추진될지 장담하기 어렵고, 조합원 간 의견 조정 등 절차가 많아 지금 호재 여부를 논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지금 분위기로는 강남재건축의 상징인 은마(銀馬)아파트가 ‘금마(金馬)’아파트가 될지 애물단지로 전락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라는 얘기다.

한산한 은마아파트 주변 부동산 업소의 모습.

한산한 은마아파트 주변 부동산 업소의 모습.

우선 시장의 반응이 예상외로 차분하다. 부동산 특성상 개발계획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면 확정 이전부터 시장에 반영이 된 측면도 있지만 은마아파트의 가격 자체가 이미 많이 올라 재건축을 할 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매도 호가(부르는 값)는 102㎡(약 31평형)가 10억~10억5000만원, 112㎡(34평형)가 12억~12억5000만원 선이다.

조합원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은 수익성에 대한 판단이다. 총 4424가구의 대단지인 은마아파트는 31평형과 34평형 2개 평형으로만 이뤄져 있다. 

재건축 시 현재의 법 체계상 은마아파트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사업을 본격화한다면 지금보다 전용면적을 10%까지 늘리는 1대1 재건축(전용면적 기준으로 기존 주택과 같은 크기로 재건축하는 것), 전체 건립 가구 수 가운데 전용 60㎡ 이하를 20% 이상 짓는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지키면서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을 많이 짓는 방식 중 하나로 재건축이 추진될 전망이다. 소형주택 의무비율 방식대로 진행한다면 상당수 조합원이 지금보다 적은 평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고, 1대1 재건축의 경우 일반분양 가구 수가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 수익성이 떨어지는 계산이 나온다.

추가부담금도 골칫거리다. 현재 상황에서 34평형을 받기 위해 예상되는 추가부담금을 포함하면 총 비용은 같은 평형의 주변 새 아파트 시세와 비슷해져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대폭 상향 조정해 주거나 아파트 시세가 추가 상승하지 않는 한 은마의 ‘대박 신화’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사업 자체가 어려웠던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이 시동을 걸고 있지만 앞날을 낙관만 하기는 힘들다”라며 “재건축 투자성의 잣대인 주변 시세의 움직임에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좌우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매도물 회수에 경매낙찰가 급등
시장이 시큰둥한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지난 8월부터 재건축 아파트 취득자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확대 등 강력한 투기억제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매수세가 얼어붙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돈 없는 사람은 DTI 규제로 못 들어오고, 자산가는 매입 여력이 있어도 자금내역서 및 입주 여부까지 모두 밝혀야 하는 모험을 감수하려하지 않아 당분간 잠잠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남뿐 아니라 은마와 비슷한 처지의 아파트단지도 조용하거나 시세가 오히려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전국 아파트 9월 신고분 실거래 신고’ 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단지 가운데 은마아파트의 전용면적 77㎡는 8월 최고 실거래가보다 1500만원 떨어졌다.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77㎡도 지난 8월 최고 12억7000만원에 팔렸지만 지난달에는 3500만원 내린 최고 12억3500만원으로 거래됐고, 개포 주공1단지도 43㎡의 경우 지난주 8억3000만~8억5000만원 선에서 현재 8억1000만원부터 매물이 나오는 등 평균 1500만원 떨어졌다. 9월 초 8억7000만원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6000만원 떨어진 셈이다.
 
당초 ‘은마효과’로 전체 재건축시장이 들썩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단은 잇달은 정부의 규제 정책들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대치동 탑공인 이종호 사장은 “그동안 세 차례나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규제 완화로 통과 기대감이 높다. 당장은 DTI 규제 등으로 인해 투자심리가 다소 위축돼 있지만 지속적으로 투자 문의가 살아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인근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안전진단 소식과 함께 매도자들이 물건을 회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중앙법원에서 열린 102㎡의 은마아파트 경매에 응찰자 15명이 몰려 9억720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 6일 같은 면적의 은마아파트가 9억5111만원에 낙찰된 것과 비교하면 일주일 만에 2100만원이 오른 것이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낙찰가가 시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데도 사람이 몰린 이유는 향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1년 수능 후 대치동 학원 등록 위해 수요 몰려
사교육 광풍에 거품 날개 단 ‘은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입구 건물 외벽에 학원 간판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입구 건물 외벽에 학원 간판이 빽빽이 늘어서 있다.

대한민국에는 셀 수도 없이 아파트가 많이 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아파트에 산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아파트공화국’이다. 이 가운데 은마아파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쟁쟁한 브랜드와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도 많지만 은마아파트가 전국적인(?) 브랜드 성격을 띠는 의미는 바로 은마가 대한민국 입시특구의 중심 한복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가 1979년에 지어졌을 때 가격은 불과 2139만원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1998년 은마아파트의 34평형 가격은 1억8000만~2억선이었다. 지금의 가격은 12억원 선이다. 이를 소득과 비교해 보자. 1998년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연봉수준은 1200만~1500만원, 10년이 지난 지금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연봉 수준은 약 3000만원이다. 소득은 두 배 상승한 반면에 은마아파트 값은 5, 6배 뛴셈이다. 이는 은마가 강남부동산 신화를 지탱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은마가 처음부터 그렇게 ‘잘나가는’ 단지는 아니었다. 실상은 강남의 달동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평형 2674가구, 34평형 1750가구로 지어진 옛날 복도식 구조의 은마아파트는 그 당시 건축이 그러했듯이 지하주차장이 없어 단지를 둘러싼 빈 공터는 늘 주민들 차량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하늘에서 보면 단지가 마치 꽃 모양처럼 보이도록 설계됐는데 이런 설계가 오히려 동 배치에 제약을 가져와 지금과 같은 주차대란을 불러왔다. 강남 부유층과 투기꾼이 관심은 갖지만 살고 싶은 집은 아니다.

30여 년이 지난 은마아파트의 노후화는 지금 심각한 수준이다. 수압이 약해 물을 제대로 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녹물이 떨어지고 설비와 배관이 낡아 거실의 라디에이터는 소음을 쏟아낼 정도로 난방도 열악하다. 또 실제 집주인은 대부분 투기꾼들 손에 있고, 사는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전입 온 세입자가 총 70%를 점령하고 있다. 이런 아파트가 10억원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도대체 가격은 언제부터 뛰기 시작한 것이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980년 1월 은마아파트 분양광고지를 살펴보면 평당 분양가격이 68만원(융자금 포함)에 불과했다.1979년 7월에 완공된 은마아파트 단지는 대치동 전체 아파트 가구 수(1만8000여 가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424가구나 되는 대단지여서 첫 분양에는 실패하고 2차에 걸쳐 분양할 만큼 크게 눈길은 끌지 못했다.

그러나 25년 전 평당분양가와 지금의 평당 매매가를 단순 비교해 보면 은마아파트 값은 무려 30배 이상 뛰어올랐다. 지난 25년간 물가상승률과 주변 지역 개발에 따른 아파트 재산가치 변동 및 유지보수비·감가상각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25배, 즉 매년 1980년 당시의 분양가만큼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마는 2000년까지 강남에서 가장 쌌지만 강남재건축과 맞물려 가장 ‘성공한’ 아파트가 된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88년 은마아파트 31평형의 평균매매가격은 7500만원이었다. 당시 강북에 있는 같은 평수보다도 시세가 훨씬 낮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억원에 불과했다.

아파트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 때는 2001년 말부터다. 2001년 말에 3억1000만원으로 오르더니 2002년 말에는 4억8500만원으로 1년 사이에 무려 2억원 가까이 상승했다. 대치동의 평당 아파트 값은 1990년만 해도 압구정동(평균 800여 만원), 논현동( 820여 만원), 일원동(810여 만원)보다 낮은 780여 만원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압구정동의 뒤를 바짝 쫓았고, 2001년에는 아예 압구정동을 제쳤다. 이런 이면에는 ‘사교육 열풍’과 ‘수능’이라는 요술방망이가 톡톡히 한 몫을 했다. 2001년 11월 대입수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자 유명 학원가인 대치동에 아파트 매매 수요가 급증해 일주일 사이 2000만~3000만원씩 뛰기도 했다. 수능난이도가 집값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대치동에는 1000여 개의 대입학원이 있어 대한민국 사교육 일번지이기도 하다. 유명한 족집게 선생과 학원이 많다 보니 자식을 위해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대치동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또한 학군을 위해 강남으로 주소를 옮기려는 극성스런 아줌마들까지 가세해 은마아파트의 시세와 전세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것이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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