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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3세, 누가 누가 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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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기자 대상 설문조사 ‘경영성적표’… 정의선·정용진·이재용 선두그룹


[특집]재벌3세, 누가 누가 잘 하나

설문 응답자들은 “이재용 전무, 정의선·정용진 부회장은 경영 참여 8~10년 정도인데 비해 박세창·조원태 상무의 경우 2~4년차로 경영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편집자 주)

[특집]재벌3세, 누가 누가 잘 하나

재벌(財閥).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를 뜻한다. 그러나 그룹에선 이 ‘재벌’이라는 표현을 극도로 기피한다.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기업 활동의 긍정적 의미보다는 자본 편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특히 어느 재벌 할 것 없이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2009년 현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재벌 3세들의 경우 평균 31세에 임원이 되고, 임원이 된 후 평균 28개월마다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대물림을 끝내라”는 주장도 강하다. 권력과 재력을 갖춘 부모로부터 태어났다는 우연이 그 권력과 재력을 물려받는 유일무이한 근거로 작용한다면 이만한 무리도 없다. 빌 게이츠는 몇 해 전 워싱턴 대학 강의에서 “2008년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1976년 올림픽 대표선수들의 자녀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후광이 아니라 자기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Weekly 경향>이 언론사 산업(기업) 담당 기자 2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재벌그룹 3세들에 대한 ‘중간’ 성적을 매겨본 이유다.

재계 서열 30대 그룹 가운데 3세들의 경영 활동이 활발한 삼성, 현대·기아차, 금호아시아나, 한진, 신세계를 대상으로 한 이번 경영능력을 포함한 중간 평가 설문조사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성적이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뒤를 이었으며, 금호아시아나의 박세창 그룹전략경영본부 상무와 한진의 조원태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상무)은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보였다.

정의선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에 가장 가까운 3세’로 꼽혔으며, 이재용 전무와 정용진 부회장, 조원태 상무, 박세창 상무가 뒤를 이었다. 설문에 응한 25명의 기자들은 ‘재벌가 황태자’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이재용 전무, 재벌가 이미지가 덜한 인물로는 박세창 상무를 각각 택했다. 이메일로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16개 매체 25명의 산업(기업) 담당 기자들이 참여했다.

‘중간성적·경영권 승계’ 1위 정의선

[특집]재벌3세, 누가 누가 잘 하나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이들 재벌3세에 대해 ‘경영능력을 포함한 모든 측면의 평점을 대학 성적표식으로 산출’한 항목에선 정의선 부회장이 가장 높은 점수를 보였다. 이재용 전무와 정용진 부회장도 같은 등급인 B등급을 받았고, 박세창 상무와 조원태 상무는 C등급이었다. 박 상무와 조 상무의 경우 임원에 오른지 1, 2년 정도로 이렇다 할 경영 평가의 틀이 없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 경영권 승계와 가장 근접한 3세’로는 설문 응답자 25명 가운데 14명(56%)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꼽았다. 이재용 전무를 지목한 사람은 6명(24%), 정용진 부회장은 4명(16%)이었다. 조원태 상무라고 답한 사람은 1명이었고, 박세창 상무(0명)는 아직 경영권 승계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정의선 부회장이 응답자 과반수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8월 현대차 부회장 승진과 무관치 않다. 1974년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세운 현대정공 자재부 과장으로 입사해 해외건설 사업에서부터 생생한 현장 경험을 쌓은 그는 기아자동차 사장에 오른 뒤 ‘디자인 강화 경영’을 기치로 내세워 기아차를 2007년 적자에서 1년 만에 3000억원대 흑자 기업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 부회장은 이런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8월 기아자동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 및 현대모비스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대모비스 부회장 승진은 ‘경영권 근접’을 내포한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1000여 만주를 모두 사들이면서 4개 핵심계열사가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자동차 지배구조의 중심에 섰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 그룹 지주회사로 떠오르면서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차기 경영권 승계 구조는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 부회장은 주로 정몽구 회장이 해외 준공식에 참석하던 선례를 깨고 최근 체코 공장 준공식을 주도하거나 현대자동차 쏘나타 신차 발표회 등 경영현장 전면에 공개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재용 전무도 이건희 전 회장을 대신해 대외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경영권 승계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해외 출장도 그의 행보를 넓히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모두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 경영승계에 걸림돌이 되던 각종 송사가 일단락되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JY(재용)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 최측근 인사들이 그룹 전면에 배치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재용 전무 체제를 받쳐주고 있어 오는 12월로 예상되는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 이 전무가 중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이자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장남인 정용진 부회장도 경영권 승계는 ‘따 놓은 당상’이다. 올해 들어 구학서 부회장을 대신해 전면에 나서면서 이른바 재벌 3세 경영구도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 그러나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이 건재해 경영권 승계의 ‘거리’는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재벌3세의 개별 평가에선 그룹 총수로 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재용 전무의 경우 의미있는 경영 성과를 보여야 하고 정의선 부회장은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적 행보, 정용진 부회장은 실추된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재용 ‘성과’ 정용진 ‘이미지’ 숙제
이들에 대해선 설문 대상자 대부분이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경영 성과, 업무 추진력, 조직 장악력, 독립적 행보, 대외 이미지 등 5개 항목을 주고 ‘점수가 가장 높은 분야와 낮은 분야를 지목하라’는 문항에서 특히 이재용 전무와 정의선 부회장 및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 성과 평가와 대외 이미지에 대한 인식은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특집]재벌3세, 누가 누가 잘 하나

이재용 전무의 경우 응답자 과반수가 대외 이미지에 높은 점수, 경영 성과에 낮은 점수를 각각 주었다. 지난 2001년 ‘e삼성’의 대주주로 있을 당시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평가로 해석된다. 특히 e삼성 사건은 인터넷 사업에 실패하자 9개 삼성그룹 계열사가 이 전무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그의 계열사 지분을 모두 떠넘겼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룹 측이 기회 있을 때마다 “e삼성의 경우 교육사업 분야나 게임 분야는 각각 크레듀와 게임온이 한·일 증시에 상장돼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꼭 실패한 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반론을 펴 왔지만 이 전무에 대한 개인 이미지 답변에서 보듯이 ‘IT사업 실패’ ‘무능력’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인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셈이다. 또한 정의선 부회장이나 정용진 부회장과 달리 특정한 ‘보직’이 없어 경영 능력에 평가의 잣대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전무가 삼성에버랜드를 통한 편법 승계문제 등으로 수사를 받는 등 논란을 빚었음에도 대외 이미지에 높은 점수를 보인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다. 응답자 24명 가운데 16명이 대외 이미지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것. 개인 이미지를 묻는 문항에서도 ‘스마트하다’(3명),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3명)라는 응답과 함께 ‘깔끔하고 젠틀’(2명) 및 ‘엘리트’ ‘차분함’ 등 비교적 호감 있는 반응이 다수였다. 이는 최근 이 전무가 보이는 글로벌 행보와 더불어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에서 철저하게 보호하고 나선 그룹의 성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의선 부회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경영 성과를 좋게 평가하는 분위기이지만(11명), 낮은 분야를 대답한 23명 가운데 10명이 “독립적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여기서 독립적 행보는 ‘그룹 총수인 부친으로부터의 독립적 활동’을 뜻한다. 이는 정 부회장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서 ‘뚝심(3명)’ ‘추진력(3명)’ ‘우직함(2명)’ ‘저돌성’ 등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투박함’ ‘고집이 센 듯’ 등의 부정적 대답에서도 나타난다. ‘정몽구 회장’ ‘부친’ ‘마당쇠’처럼 부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개별 평가 또한 극명한 양상을 띤다. 경영 성과면에서 조사 대상 3세 가운데 가장 많은 12명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16명이 ‘대외 이미지’를 가장 부족한 부문으로 꼽은 것. 최근 신세계백화점 실적 호조, 이마트 해외 실적 성과, 기업형슈퍼마켓(SSM) 공격적 진출 등은 정 부회장의 경영 평가에 대한 호재다. 또한 그가 론칭한 스타벅스의 성장도 경영 능력의 잣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유명 탤런트와의 이혼, 스캔들은 이런 경영 성과를 깎아먹는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다. ‘이혼’ ‘사생활 루머’ 등 호사가들의 입에서나 나올만한 답변들이 기업 담당 기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로는 ‘여유로움’ ‘승부욕’ ‘카리스마’ ‘격식 파괴’ 등의 답변이 나왔고, ‘오랜 질풍노도에서 돌아온 능력 있는 탕아’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황태자’ 이재용, ‘은둔형’ 박·조 상무
상대적으로 ‘은둔형 후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박세창 상무와 조원태 상무에 대한 인식은 평가항목별로 다소 분산돼 있다. 박세창 상무의 경우 대외 이미지(6명), 업무 추진력(5명)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독립적 행보(9명), 경영 성과(5명), 업무 추진력(5명) 등은 낮게 나왔다. 조원태 상무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높은 점수로는 조직 장악력(8명)과 업무 추진력(7명), 낮은 점수에선 대외 이미지(7명)와 독립적 행보(7명) 및 경영 성과(5명)로 답변이 갈렸다. 어느 한 부문에 과반의 대답이 몰리지 않은 것이다.

개인 이미지로는 박세창 상무의 경우 ‘조용하고 예의 바름’ ‘차분함’ ‘다크호스’ 등 긍정적 답변과 함께 ‘미숙성(2명)’ ‘유약함’ 등 부정적 답변이 나왔고, 조원태 상무 또한 ‘젊음’ ‘젠틀’ ‘단도직입적 스타일’ 등 답변과 더불어 ‘미완성(2)’ ‘트러블’ 등 부정적 응답이 많았다. 특히 “박 상무와 조 상무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이미지 형성이 힘들다”는 한 기자의 대답처럼 이들에 대해서는 각각 12명, 10명의 답변자가 “형성된 이미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박세창 상무와 조원태 상무가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특히 박 상무는 지난해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직에 올랐으나 실질적으로는 올해 6월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의 난’을 통해 차세대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조 상무 또한 지난해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에 오르고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민 정서상 ‘재벌가 후계자’는 부러움과 반감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재벌가 ‘황태자’의 이미지는 누가 가장 강할까. 응답자의 과반인 14명이 이재용 전무를 꼽았다. 정용진 부회장(6명)과 조원태 상무(4명)가 뒤를 이었으며, ‘경영권 승계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답한 정의선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적은 2명의 지목을 받았다. ‘경영권 승계 거리’에서 무응답을 받은 박세창 상무는 황태자 이미지에 대한 답에서도 지목한 응답자가 없었으며, 조원태 상무에 대해서도 6명이 “황태자 이미지와 가장 멀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재벌 후계자 이미지는 숙명적으로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면서 “굳이 말하면 세간에 덜 유명하면 황태자 이미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재벌3세들에 대한 객관적 비교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룹의 규모가 저마다 다르며, 객관적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벌3세들의 그룹 내 위치와 역할 또한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평소 현장에서 그들의 경영 활동을 지켜본 취재기자들에겐 일반인과 다른 ‘인식’이 존재한다. 경제학자들의 수치와 논리에서 볼 수 없는 ‘감’도 느껴진다. 그룹의 성장과 침체, 총수 일가의 영욕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으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벌3세들의 경영 움직임도 그들의 포착 대상이다. 설문에 응한 기자들은 재벌3세의 평가에 있어 무엇보다 ‘경영 실적’에 비중을 둔 것으로 분석됐다.

설문에 응한 25명 산업(기업)담당 기자

경향신문 산업부 박재현 기자
경향신문 산업부 이주영 기자
경향신문 산업부 전병역 기자
경향신문 산업부 정유미 기자
국민일보 산업부 김도훈 기자
국민일보 산업부 박재찬 기자
국민일보 산업부 유병석 기자
국민일보 산업부 천지우 기자
동아일보 산업부 주성원 기자
매일경제 산업부 유진평 기자
매경이코노미 김병수 기자
매경이코노미 명순영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성훈 기자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노희영 기자
세계일보 산업부 조현일 기자
이코노미스트 한정연 기자
조선일보 산업부 장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산업부 차석록 기자
포브스코리아 조용탁 기자
프레시안 산업부 이대희 기자
한겨레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 산업부 이정호 기자
한국경제 산업부 조재길 기자
한경비즈니스 우종국 기자
한경비즈니스 장승규 기자
(가나다 순)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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