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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고향열차, 한국철도 1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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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탄 순간 귀성객 마음은 고향집에… 고속철 등 속도 빨라져 ‘철도의 부흥’


<코레일 제공>

<코레일 제공>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 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 나훈아 노래 <고향역>

으레 명절이면 고향을 향하는 두 광경이 TV나 신문의 1면을 장식한다. 귀성 또는 귀경 행렬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가 한 광경이고,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귀향기차에 몸을 싣는 귀성객의 모습이 또 한 광경이다. 고향을 향하는 넉넉한 마음이야 한가지이겠지만 정체 걱정이 없는 기차에 오르는 귀성객들의 모습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국토해양부는 올해 추석 연휴가 짧아 귀성객이 다소 줄겠지만 고속도로 정체는 여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전 4시간40분, 서울~부산 8시간40분, 서울~광주 7시간, 서서울~목포 7시간10분, 서울~강릉 4시간40분 예상. 그러나 철도는 서울~부산을 2시간50분(KTX 기준)에 주파하는 등 약속된 도착시간을 지킨다. 232만명이 철도를 이용한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KTX의 경우 모두 1058회를 운행,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평시(93.6%)보다 4.5% 높은 98.1%의 정시율을 기록했다. KTX 정시율은 종착역 도착시간을 기준으로 5분 이상 늦게 도착하지 않는 비율을 말한다.

‘철도명’만 봐도 한국 근현대사 보여
지난 9월18일로 한국철도는 기적을 울린 지 110주년을 맞았다. 1899년 경인선(노량진~제물포 33.2㎞) 개통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철도는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 경원선, 호남선(이상 1914년) 등으로 노선을 넓혀 왔다. 

철도는 일제 치하 때 침략과 수탈의 도구로 활용됐지만 한국전쟁, 경제성장기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국가 기간수송망으로서 지속 발전해 왔다.

경인철도가 개통된 때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화륜차(火輪車)가 운전된다고 각처에서 구경꾼들이 정거장, 선로에 몰려들어 열차 운행에 큰 지장을 줬다. 더욱이 배일 감정이 심한 때여서 의식적으로 방해하는 행위가 많았다. 여름철에는 철길에서 낮잠을 자거나 돌이나 장애물을 철길에 올려놓고, 포인트를 돌려놓기도 하며, 열차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무임승차자도 많았던 모양이다.

철도회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심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코레일 자료에 따르면 일본회사는 그 한 방책으로 ‘로선순사’를 고용했다. 일종의 철도공안원인 셈이다. 효과는 상당했다. 잡힌 사람은 태형으로 혼을 내기 때문에 순사만 보면 도망치는 등 촌극도 발생했다고 한다.

기차 이름의 변천사를 열거하면 이 안에 한국 근대사가 보인다. 열차명은 그 시대의 국민정서, 국가정책 등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명명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격동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열차 이름은 ‘모갈1호’다. 1899년 9월18일 경인선 개통 당시 목재 객차 3량을 연결하고 노량진~제물포 구간을 시속 20~30km로 운행했다. 1906년 4월 경부선(서울~부산)을 운행하는 열차는 순종의 연호 ‘융희’를 사용했다. 서울로 향하는 열차를 ‘융호(號)’,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를 ‘희호’라고 각각 불렀다.

일제식민시대에 우리나라는 병참기지화가 됐다. 한반도와 만주지방의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는 한편 대륙 침략을 위해 일제는 철도망을 정비하고 운행구간을 연장했다. 그때마다 히까리호, 노조미호, 아까스끼호, 흥화호, 대륙호 등의 이름이 열차에 붙여졌다.

철도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암표’ 등 옛것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추석 귀성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있는 시민들의 모습. <코레일 제공>

철도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암표’ 등 옛것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추석 귀성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있는 시민들의 모습. <코레일 제공>

광복 이후 대체로 열차 명칭은 운행구간, 열차등급 등에 따라 별도로 부여됐다.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해방자호’(1946년), 6·25 한국전쟁 이후 ‘통일호’(1955년), 애국심 고취를 위한 ‘무궁화호(1960년) 등 수많은 열차 명칭이 생겼다. 여객열차뿐 아니라 화물열차에도 중앙선 화물을 운송하는 열차를 건설호(1966년), 호남선 화물을 운송하는 열차를 증산호(1966년)라고 각각 불렀다. 똑같은 모양, 같은 등급의 열차라도 운행 구간에 따라 열차 명칭이 달랐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통일된 열차 명칭 부여 방식이 필요했다. 1974년 8월15일 열차명을 일제히 변경했다. 운행하는 노선과 열차등급이 같을 경우 동일한 열차 이름이 부여됐다. 운행구간별로 달랐던 열차 명칭이 노선별, 등급별로 통합 정리된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새마을호 열차가 탄생했다. 당시 새마을호는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새마을호가 아니라 경부선을 운행하는 초특급열차만을 의미했다. 특급열차 가운데 경부선 열차를 통일호, 호남선 열차를 풍년호, 전라선 열차를 증산호라고 각각 불렀다. 한때 열차등급인 ‘새마을호, 우등, 특급, 보급, 보통’을 운행구간과 상관없이 열차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열차 이름을 부여하게 된 것은 1984년부터다. 노선과 상관없이 열차 등급에 따라 새마을호, 무궁화호(우등), 통일호(특급), 비둘기호(보통)로 불렀다. 1967년부터 사용된 ‘비둘기호’ 명칭은 2000년 11월 33년 만에 폐지됐다. 통일호는 2004년 4월1일 KTX 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지난 6월 무궁화를 대체하기 위해 친환경 전동열차인 누리로가 운행을 시작했다. 현재 코레일에서 운행하는 열차에는 KTX, 새마을호, 누리로, 무궁화호, 통근열차가 있다.

‘암표’ ‘까치와의 전쟁’ 등은 여전
현재 우리나라 철도의 영업노선은 3383km에 이르며 복선화율 50%, 전철화율은 60% 수준이다. 전철화의 경우 일본(60.98%), 독일(57.66%)과는 비슷한 수준이고 프랑스(50.58%)보다 앞서는 등 이미 선진국 수준에까지 올라왔다. 2004년에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고속철도가 개통됐으며, 복선화율과 전철화율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연인톤거리(수송량) 기준으로 여객은 17.3%, 화물은 6.2% 수준이다. 특히 중·장거리 여객수송의 경우 경부고속철도의 수송분담률은 60% 이상을 차지하는 등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사이 천지를 진동시키며 기적을 울리던 증기기관차는 사라지고 이제는 서울~부산을 2시간대에 운행하는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철도는 단순히 철로 만들어진 운송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가 되고 있다. 경기 부침과 시대상에 따라 새로운 선로가 깔리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평행선의 끝은 늘 사람 사는 마을에 닿아 있다. 최근 열차는 정차하지만 직원이 없는 무인역을 맡아 ‘고향역’을 지키는 명예역장들도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KTX는 반나절 생활권을 가능케 하면서 속도를 통한 철도의 부흥을 불러 왔다. <연합뉴스>

KTX는 반나절 생활권을 가능케 하면서 속도를 통한 철도의 부흥을 불러 왔다. <연합뉴스>

코레일이 경영효율화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무인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올해부터 시작한 ‘무인(간이)역 명예역장’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경원선 신망리역엔 작은 도서관이 생겼고, 경북선 용궁역은 지역주민의 힘으로 아름다운 역사로 거듭났다. 경부선 지탄역은 대외 홍보활동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경전선 낙동강역 역시 여행객을 위해 역사 환영 방문 스탬프와 주변 관광안내도를 자체 제작해 비치했다.

36명의 명예역장들의 직업도 전직 철도 직원에서 마을 이장, 현직 기자, 개인사업가, 교사, 탤런트, 전직 대학 총장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은 역사 주변 환경정비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협력해 간이역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초고속 기차가 등장하고 전철화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것도 있다. 추석 등 명절이면 등장하는 ‘암표’가 그것으로, 고속도로나 항공 등 다른 운송수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 코레일에 따르면 이번 추석을 앞두고도 경매사이트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부당 유통되는 기차표나 암표가 많다.

전차선 위 까치와의 전쟁도 진행형이다. 코레일은 ‘장애예방 신고자 포상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차선’ 1m 이내에 있는 조류 둥지, 공사장 시설물, 나뭇가지, 횡단 전력선 등을 신고하면 포상하는 제도이다. 2007년에 290건, 2008년에 500여 건의 신고가 접수·처리돼 전차선로 순회점검에 버금가는 성과를 올렸다는 게 코레일 측의 설명이다.

고속도로에 뺏긴 명성 KTX로 회복
철도는 한때 거미줄같이 전국 방방곡곡에 깔린 고속도로에 인기나 운송수단 면에서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철도는 고속철도라는 초스피드 운송 수단을 선보이며 항공기 이용객뿐 아니라 고속도로 이용객 수요마저 조금씩 잠식해 가고 있다. KTX로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고속철 도입은 도심의 ‘흉물’ 취급을 받던 서울역사를 다시 살려놓기도 했다. 전국에서 KTX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 회의나 모임을 한 뒤 다시 KTX를 이용해 돌아가는 새로운 풍토가 생기면서 역과 상권 기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 특히 서울역 4층엔 기업 회의실이 개방돼 시간적, 공간적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들을 겨냥한 식당이나 쇼핑몰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코레일 서울지사 측은 “KTX 개통으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비즈니스, 학술세미나 등 철도역에서 각종 회의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2명의 상근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공간과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의 고객 상담실을 갖춰 이용의 편리함을 높였다”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지방 경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코레일은 서울역 북부에 국제컨벤션센터를 유치하고 근대문화유산인 옛 서울역사를 보전해 시민소통의 광장으로 조성하는 등 서울역을 문화, 역사, 관광, 교통 편리성을 겸비한 다기능 복합 문화공간의 국제교류단지로 개발하는 역세권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국내 기술력으로 제작된 새로운 고속열차 ‘KTX-Ⅱ’가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시속 300㎞ 이상의 고속열차를 독자적으로 제작·운영할 수 있는 고속열차 기술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KTX-Ⅱ는 전 좌석 회전시스템을 채택해 현재 고속열차의 역방향 좌석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는 한편 이를 호남선 운행을 시작으로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전라선, 경부선 2단계, 경전선 등에 순차적으로 투입한다. 이로써 고속열차 수혜지역이 경부·호남선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게다가 내년에는 경부고속철도 전 구간이 완공되고, 호남 고속철은 2017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경춘선, 중앙선, 경의선 등 간선철도들은 복복선화와 전철화로 속도가 2, 3배나 빨라질 전망이다. 속도를 통한 철도의 부흥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가 한국철도 최고
최고 고지대역 | 태백선 추전역 | 해발 855m(1973년 10월16일 영업 개시)
최북단역 | 경원선 신탄리역 | 북위 38도13분(휴전선에서 9.5km, 서울역에서 88.8.km)
최남단역 | 전라선 여수역 | 북위 34도45분(서울역에서 449km)
최장터널 | 슬치터널 전라선 죽림온천~관촌(6128m)
최장교량 | 한강 A교 | 길이 1112.8m 용산~노량진 구간(1944년 8월1일 개통)
최고교량 | 중앙선 금교~치악간 길아천 | 철각 높이 32.97m(1941년 7월1일 개통)
최고 기울기 | 태백선 예미~조동 구배 | 연장 1147m, 30.3도
최고속도 | KTX 300km/h(2004년 4월1일 운행)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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