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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앞세워 시간강사 ‘씨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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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개강을 앞둔 대학 캠퍼스에 ‘칼바람’이 불었다.
대학들이 비정규직법을 ‘악용’해 시간강사들을 대거 해고시킨 것이다.
정규직 교수에 비해 훨씬 열악한 처우에 신음하던 이 땅의 시간강사들.
전국 13만 시간강사가 ‘생존의 기로’에 몰려 있다.

김동애 대학교원지위회복투쟁본부 위원은 2년째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들은 교원 지위 보장이 비정규직 교수 문제의 선결조건이라고 말한다. <강윤중 기자>

김동애 대학교원지위회복투쟁본부 위원은 2년째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들은 교원 지위 보장이 비정규직 교수 문제의 선결조건이라고 말한다. <강윤중 기자>

해고, 해고, 해고….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다. 2학기 개강을 앞둔 전국 대학 캠퍼스에 칼바람이 불었다. 수천 개 강의 자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소문은 여름 방학 무렵부터 무성했다. ‘한 학교에서 4학기 이상 연속으로 강의한 55세 이하 강사 가운데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가 대량으로 해고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이때부터 개강 직전까지 시간강사들은 소리없이 해고됐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대학별 시간강사 해촉 현황’ 자료를 통해 비로소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9월9일 현재 전국 112개 대학에서 시간강사 1219명이 해고됐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자료를 제출하기로 한 전체 200개 대학 가운데 88개 대학의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영곤 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 분회장은 “실제 해고자는 5000명에서 1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분회장이 강의를 나가는 고려대에서는 모두 75명이 해고됐다. 고려대는 50명 이상을 해고한 9개 대학 가운데 한 곳이다. 해고자 수는 한남대가 195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외국어대와 대진대는 각기 124명과 95명이었다. 해고자는 사립대에 몰려 있다. 80개 사립대에서만 1208명이 해고됐다.

부산대와 영남대 강사 150여 명은 싸움을 통해 살아남았다. 부산대는 8월24일 연속해서 4학기 이상, 한 학기에 5시간 이상 강의한 시간강사 가운데 박사학위 미소지자 70여 명에 대해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 2학기 수업계획서 제출까지 끝난 상황이었다. 강사들은 행동에 돌입했다.
 
해고 통보를 받고 사흘 후 학교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8월31일에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학교 측과 강사 측은 9월2일 강사들에게 강의를 배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유윤영 비정규교수노조 부산대 분회장은 “개강을 겨우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서 불가피하게 절충한 것이지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강의를 배정하는 대신 ‘5시간 미만’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경우 주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로 분류돼 비정규직법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영남대도 8월22일 시간강사 80여 명을 해고하려다 2학기 강의를 주당 5시간 미만으로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부산대·영남대는 ‘미봉책’으로 겨우 회생

지난해 10월25일 비정규교수노조 소속 시간강사들이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비정규직교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지난해 10월25일 비정규교수노조 소속 시간강사들이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비정규직교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부산대의 어느 학과에서는 더 교묘한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유윤영 분회장의 말이다. “모 학과의 경우 1학년 교양필수 과목을 강의하는 강사가 26명쯤 된다. 그런데 과에서 강사들에게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 재직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면 강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비정규직법도 피하고 강의료도 깎겠다는 계산이다. 전업강사는 시간당 5만원을 줘야 하지만 다른 직업이 있는 경우는 2만8500원만 주면 된다.”

부산대와 영남대처럼 노조가 있는 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번에도 고려대와 성공회대를 제외하면 노조가 있는 대학에서는 해고자가 나오지 않았다. 노조가 있는 조선대와 전남대는 노조의 주도로 이런 사태가 발생할 소지를 애초부터 차단했다. 정재호 비정규교수노조 조선대 분회장은 “2003년에 고등법원이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은 강의 시간의 3배로 산정한다’고 판결하긴 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법 판결을 근거로 시간강사들을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 “조선대는 이 부분에 대해 학교 측과 노조 측이 합의해 해고자가 없다. 전남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있는 대학에 출강하는 강사들은 비명이라도 질렀지만 노조가 있는 대학은 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부산대, 성공회대, 성균관대, 영남대, 전남대, 조선대 등 전국 9개 대학에 불과하다. 학기마다 해당 학과 전임교수들의 결정에 따라 강의 배정이 이뤄지는 구조에서는 노조를 결성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조합원들의 결속력을 끌어내는 것도 요원하다. 고려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고려대 분회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은 김영곤 분회장 혼자다. 학교 측은 7월8일 이메일로 강사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김 분회장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해고됐으리라고 짐작한 강사 181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회신하지 않았다. 김 분회장은 “그냥 감수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찍히면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시간강사 문제는 대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들을 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은 고려대 학생들이 이번 학기 시간강사 대량해고 문제를 규탄하기 위해 내건 성명서. <비정규직교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시간강사 문제는 대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들을 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은 고려대 학생들이 이번 학기 시간강사 대량해고 문제를 규탄하기 위해 내건 성명서. <비정규직교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사들 차원에서는 해고된 강사들이 누구인지는 물론 전체 해고자 숫자 파악도 어렵다. 성공회대에서는 이번에 8명이 해고됐다. 그러나 노조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숫자는 아니다. 홍영경 성공회대 비정규교수노조 분회장은 “8명이라는 것도 학교 직원에게서 들은 것”이라면서 “학교 측에 해고자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정원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우리도 짐작만 할 수밖에 없다”면서 “노조 분회가 없는 대학이나 전문대는 짐작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김진표 의원이 교과부에서 받은 자료에는 전문대가 포함돼 있지 않다.

전임교수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영곤 분회장은 “이렇게 많이 해고되는데 교수노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공회대는 타 대학에 비해 진보 성향 교수가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홍 분회장은 “진보 교수는 있어도 진보 대학은 없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자와 약자의 문제”라면서 “보직을 맡으면 진보든 보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교수노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해고 대상자를 고르고 해고를 통보한 대학들은 순진하거나 서투르다. ‘준비성이 좋은’ 대학은 부산대나 영남대처럼 시간강사들의 집단반발을 부를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길게는 이미 10년 전부터다. 임성윤 성균관대 비정규교수노조 분회장의 말이다. “성균관대는 10년 전부터 지금과 같은 일을 조금씩 준비해 오다가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에 이미 끝냈다.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강의를 주지 않았다. 그 과정이 가랑비에 옷 젖듯 진행됐고, 노조의 힘이 워낙 약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성균관대 강사들은 이미 칼을 맞고 쓰러진 상태다. 성균관대만이 아니라 다른 주요 대학들도 박사학위 미소지자에게 강의 시간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서서히 바꿔온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벌어진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가 장기간 지속돼 온 시간강사 해고 문제에 비한다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간강사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대학들은 대부분 매학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른 이후 다음 학기 시간표를 짠다. 다음 학기에 강의가 있을지 없을지 시간강사는 알 수 없다. ‘다음 학기에는 강의가 없습니다’라고 친절하게 통보하는 경우는 없다. 그저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학과 사무실 조교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으면 강의가 없는 것이다.

비정규교수노조 측은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제도적 이유는 강사들의 교원 지위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등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교원의 지위를 규정한 현행 고등교육법은 ‘총장 및 학장 외에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라고 규정하고 있어 강사는 교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사가 교원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1976년 당시 교육법은 “각 학교의 교원 및 사무직원과 그 임무는 다음과 같다”면서 “교수, 부교수, 조교수와 강사는 학생을 교수, 연구, 지도하되 연구 및 지도에만 종사할 수 있다”고 규정해 강사를 교원으로 봤다. 그러나 1977년 10월24일 정부가 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보다 앞서 1975년에 ‘교수 재임용 제도’가 생겼고 1977년에 강사가 교원에서 제외된 것이다. 김동애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투쟁본부 위원은 “대학에서 진보적 학자 세력 및 지식 계층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했다. 그는 2007년 9월7일부터 시간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해 2년 넘게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간강사 교원 지위 부여 법안 표류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법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근무 조건, 신분보장, 보수 및 그 밖의 물적 급부 등에 있어서의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간강사들의 교원 지위 인정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네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우철훈 기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간강사들의 교원 지위 인정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네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우철훈 기자>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기 당시 최순영 민노당 의원,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등이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순영 의원은 이주호 의원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서명하기도 했다. 2008년 2월에는 국회교육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약식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소위는 “양측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니 교육부와 입법 조사관이 다시 조사하라”고만 했고, 17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법안은 폐기됐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상민 의원이 법안을 재발의했다. 지난해 12월 교과위는 공청회를 열어 2009년 고등교육 예산 5조원 가운데 1500여 억원을 대학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연구비 명목 예산으로 책정했으나 이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시간강사들은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 입장에서 시간강사는 자신들의 수요에 따라 자유롭게 쓰거나 버릴 수 있는 편리한 소모품일 뿐이다. 국가가 돈을 지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임성윤 성균관대 분회장은 “해결하려고만 하면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립대는 국가가 지원해 줘도 강사들을 교원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다. 대학이 저비용으로 강의를 운영하는 데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27일 건국대에 출강하던 한 강사(44·여)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자살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강사 생활을 한지 4년 만에 목숨을 버린 것이다. 그는 유서에 “그동안 겪은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썼다.

그 뒤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국의 13만 시간강사들은 침묵 속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교수는

미국에도 비정규직 교수는 있다. 한국이 미국식 모델을 따라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비정규직 교수의 비율은 2003년 기준으로만 45.8%에 이른다. 비정규직 교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저비용-고효율 논리가 대학에 침투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학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과목들은 비정규직 교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과목에 따라서는 70% 가까운 강의를 비정규직 교수들이 담당한다. 연구시설 부족이나 학생 지도에 대한 부담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 때문에 미국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처우 개선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정규직 교수에 비해 처우가 열악한 건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미국 비정규직 교수들은 정규직 교수나 다른 분야 노조의 도움을 받아 주 의회 의원이나 주지사, 학교 당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 정규직 봉급의 50% 수준에 도달했다. 주 의회나 주지사도 비정규직 교원과의 대화 노력이나 처우 개선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은 대학 교원은 교수, 조교수, 조수, 상근강사, 비상근강사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한국의 시간강사에 해당하는 것이 비상근강사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일본의 비상근강사는 교원으로 분류된다. 또한 한 강좌가 두 학기로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다. 한 강좌를 맡을 경우 1년간의 강의가 확보되는 셈이다. 조교수와 강사 간 급여 차이도 한국만큼 크지는 않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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