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개각 후폭풍

정운찬 급부상, 대권주자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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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몽준과 삼각구도 형성… 이재오·강재섭 전 의원 행보도 관심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정운찬 총리 후보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정운찬 총리 후보자

“원래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친이의 한 핵심 의원은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가 ‘박-정-정(박근혜·정몽준·정운찬) 삼국지’로 그려진 데 대해 일부러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서 정몽준 의원을 대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각각 앉히는 구도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정 대표는 10월 재보선 선거가 고비
친이 주류세력의 관심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계 복귀에 있었다. 박희태 전 대표가 10월 재보선 출마를 위해 사퇴할 경우 9월 조기전당대회를 생각했다. 친이의 핵심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구상한 것은 아니지만 전당대회를 통한 이 전 최고위원의 9월 복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친이 주류와 청와대 간에 서로 공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친이쪽의 바람이었을 뿐 끝내 접어야 했다. 이 때문에 정몽준 의원이 자연스럽게 대표직을 승계받아 차기 대권 주자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정 대표는 자신이 맡아 총지휘하는 오는 10월 재보선 선거가 대선 가도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대권주자로의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을 뿐더러 2월 조기전당대회론을 불식시키고 내년 6월2일에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여당을 지휘할 수 있다. 친이 핵심의원은 “정 대표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 아래 이를 악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 역시 우연한 선택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 부각됐다는 것이 친이 쪽의 시각이다. 친이 핵심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여권은 오래 전부터 충청권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년 지자체장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충청권 민심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유선진당 대표였던 심대평 의원에게 눈독을 들였다. 이회창 총재의 반대로 무산되자 충청권 총리론은 충청·호남권 총리론으로 확대됐다. 친이쪽 핵심의원은 “충청·호남권 총리감을 찾다보니 모두 나이가 많은 70대였다”면서 “젊고 신선한 인물을 찾다가 결국 정운찬 후보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정 후보자의 총리 기용과 대권 주자 부각이 우연 속에 이뤄졌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핵심의원은 “이런 과정을 보면 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묘하게도 정 총리 후보자의 이름은 운(運)과 관련이 깊다. 정 총리 후보자가 2007년에 펴낸 자서전 <가슴으로 생각하라>를 보면 주역에 통달한 마을 어른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운을 가득 차고 나왔다’며 돌림 자인 구름 운(雲) 자와 빛날 찬(燦) 자로 이름을 지어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 첫 장의 제목도 ‘행운’이다. 어머니가 독한 약초를 먹어 배 안의 아기를 지우려 했지만 익모초를 많이 먹은 덕분에 어릴 때 건강했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정 총리 후보자는 이를 ‘나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나 햇빛을 본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 이들 두 명의 정씨가 행운 덕분에 박 전 대표와 각을 이루는 대권 주자로 일거에 발돋움했다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불운한 편에 속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곧장 박 전 대표와 양대 대권구도를 마련하려던 계획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과 박 전 대표와 맞설 수 있을 만큼의 당내 기반 세력을 갖추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은 배지를 달지 못한 탓에 여전히 장외를 맴돌 뿐 대권 주자로서의 첫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친이재오계의 한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 구도에서 ‘박-정-정 삼국지’가 언급되는 것에 대해 “박-정-정이 아니라 박-정-정-이-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강재섭 전 대표도 차기 대권의 대열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0월 재보선에서 이 전 최고위원과 강 전 대표가 배지를 단다면 충분히 다자구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후보 시절이던 2007년에 강재섭 전 대표(오른쪽),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후보 시절이던 2007년에 강재섭 전 대표(오른쪽),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 전 최고위원의 은평구 출마는 벌써부터 화젯거리다. 한나라당의 장광근 사무총장은 9월4일 평화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은평을 지역이 재보선 지역에 포함될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듣고 있다”면서 “이번에 은평을 재보선이 확정되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나가게 되면 상대 당에서 누가 나오든 이 전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야당을 자극했다. 여당의 실세인 사무총장이 사법부가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을 사실상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 야당의 시각이다. 이재오계의 한 인사는 “이번 10월에 재보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재보선은 지자체장 선거 때문에 미뤄지기 때문에 10월 재보선이 은평을에서 이뤄져 배지를 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 전 최고위원이 행동에 나섰다는 소문이 여의도에 나돌고 있다.

친이 진영 ‘다자구도’ 선호
강재섭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자파 의원들의 정책연구 모임인 ‘동행’을 꾸려나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여권에서는 강 전 대표가 총리직을 희망해 왔지만 ‘TK 대통령-TK 총리’라는 구도 때문에 총리직을 성사되기 어려운 카드로 보았다. 이 때문에 10월 재보선의 대상 지역인 수원 장안구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강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이 10월 재보선에서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게 되면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구도는 그야말로 다자 구도로 변하게 된다.

정몽준 대표는 9월8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일성으로 “한나라당이라면 대통령 후보가 네 다섯 분은 있는 것이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언론에서 주로 언급한 박-정-정 삼국지 외에도 다른 대선 주자가 더 있을수록 좋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친박 진영, 개헌론까지 겹쳐 긴장
독주 체제를 사실상 굳힌 박 전 대표 측의 친박 진영은 새로운 구도에 대해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한 친박 진영 측의 인사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친이쪽에서 그동안 어떻게든 판을 흔들려고 노력해 오다가 이번에는 다자구도를 의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에게 맞설 뚜렷한 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현 상황은 그렇게 경계할 정도는 아님을 강조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정 대표와 정 총리 내정자는 당내 자신의 계파라고 할 만한 의원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뿌리가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대선 주자들이 여러 명 부각되면서 박 전 대표가 대선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n분의 1로 위상이 줄어든다고 해도 여전히 유력한 대선주자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는 “정 후보자가 차기 대권에 관심이 있다면 총리직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한다”면서 “총리직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차기 대선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자의 총리직 수행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차기 대권 행보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주전(主戰)과 주화(主和)의 두 기류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친이쪽과 대립각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는 시각과 일정 부분 협력하면서 차기를 도모해야 한다는 시각이 서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주화쪽은 이번 주에 있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친박의 한 의원은 “이날 회동에서 내년 지자체장 선거에서 친이와 친박이 협력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친이-친박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해도 친이에게 견제당하고 저렇게 해도 친이한테 견제당한다는 인식 때문에 어차피 견제당할 바에야 각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친이와 친박이 하나가 돼 지방선거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독주가 아닌 다자 구도를 선호하는 친이 측과, 박 전 대표 중심의 차기 대선 준비를 주장하는 친박 측 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의 끈이 놓여져 있다. 여기에다 개헌론까지 친이-친박쪽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키고 있다. 친이쪽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선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친박쪽은 이원집정부제가 차기의 유력한 대권 후보자인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고착화될 경우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맡을 총리를 친이쪽에서 맡음으로써 친박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미디어법 통과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미묘한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인 박 전 대표를 향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행보가 다소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박 전 대표의 발언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소 떨어지는 반면에 이 대통령의 인기도가 올라가면서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친이쪽 구심력이 예전과 다르게 커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그동안 강경파인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에 대해 경질 주장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이 홍보수석으로 사실상 승진됐음에도 이 주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때 “박 전 대표가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 주자라면 친이도 결국 그쪽으로 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친이쪽 핵심의원의 발언도 최근에는 “아직 대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라는 발언으로 바뀌었다. 여권 대권주자 구도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다른 한 의원은 최근 차기대선주자 구도 형성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친이쪽에서 차기 대선에서 친이의 승리를 고집할 것인지,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나설 것인지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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