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개각 후폭풍

정 총리 후보자, 소통인가 변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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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에 대한 다양한 반응… 총리직 수행 낙관·비관 엇갈려

2007년 초에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2007년 초에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충격, 실망, 기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이명박 정부의 총리로 내정되자 지식인 사회는 술렁거렸다. 평소 케인스주의자, 중도 성향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던 정 총리 후보자가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이명박 정부에 들어간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진보쪽에서는 실망의 목소리를 주로 냈고, 보수쪽에서는 기대의 목소리를 주로 냈다.

여러 재미있는 표현도 세간에 회자됐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표출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논에 장미를 옮겨 심은 격인데, 꽃이 필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2년 후배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는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살아나오는 사람은 못봤다”면서 “잡아먹히든가 호랑이에게 동화되는 것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의 ‘변신’에 대한 비판이었다.

“진보 지식인이었다고 보기 어려워”
정 총리 후보자의 충격적인 선택을 두고 ‘원래부터 중도실용이었으므로 다른 선택이 아니다’에서부터 ‘변신’, ‘변심’, ‘변절’, ‘훼절’이라는 표현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이 반응은 정 총리 후보자가 어떤 인물이었나 라는 평가에서 서로 엇갈리고 있다. 중도 성향으로 본 인사들은 “변신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라고 애써 평가절하하지만 그를 진보적 성향으로 본 인사들은 “어울리지 않는 변신을 했다”며 비판했다. 정 총리 후보자는 2007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정치권이 자기 자신을 문민정부 시절에는 ‘진보주의자’로 비판했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주의자’라고 비판했다고 써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으로는 자유주의자, 정책적으로는 실용주의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자, 학문적으로는 케인스 주의자, 이념적으로는 합리적 중도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학계에서는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철학이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를 “온건 케인스주의자이고 중도적인 분”이라면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의 중도적인 성향이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중도실용과 비교할 때 그렇게 다른 선택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본인이 평소에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나 대운하 정책을 비판하다가 총리직을 받아들인 것이 그전의 입장과 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정 총리 후보자의 제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철학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케인스주의자인 정 총리 후보자가 정부의 역할을 평소 강조한 반면에 민간 시장 주체들의 시장질서를 유독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원래부터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철학이 엠비노믹스와 비슷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평소에 견지해 온 경제철학과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선택과 뜻밖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자 입장에서는 놀랍고 아쉬운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케인스주의자가 신자유주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든지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를 넘나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총리 후보자의 ‘변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의외로 많았다. ‘변신’ 자체를 변절이라든지 훼절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김호기 교수는 학문적 선택과 정치적 선택을 분리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단지 정 총리 후보자가 2년 전에 야권 후보로 거론되다가 2년 후 총리직을 수락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선택이 달라서 개혁 진영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학문적·이념적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한 소장파 교수 역시 정 총리 내정자의 선택에 대해 “서울대 교수 사회에서는 변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다만 그동안 정 총리 후보자가 표명해 온 입장이 기존의 한나라당 입장과 다르다는 점에서 대부분 뜻밖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중도실용 노선에 건설적 기여 기대”
김상조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는 서구적 잣대로는 진보적이지 않다”면서 “다만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그를 진보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개혁·진보 진영에서 충격과 배신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실에 대해 어쩔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부언했다. 이해영 교수는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히든가 왜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은 그만큼 보수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내재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진보 진영의 실망에 대해서는 “정 총리 후보자가 진보적 성향을 지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진보 진영에 충격도 아닐 뿐더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총리 후보자의 총리직 수행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희망과 비판적인 전망이 엇갈렸다. 서울대의 한 소장파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독선적인 정책을 바로잡는데 정 총리 후보자가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역시 정 총리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노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철학이 엠비노믹스와 맞지는 않지만 중도실용 노선에 건설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해영 교수는 “총리 개인이 소신에 따라 정책을 펼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 내정자가 자신의 경제철학을 구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 총리 후보자의 선택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와 맥이 닿아 있다. 제자인 김상조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의 스승인 조순 선생은 경제학 이전에 한학을 공부해 유교에서 말하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의무로 받아들였다”면서 “정 총리 후보자가 스승의 길을 따라 현실 참여를 했지만 평생 학자로만 남은 변형윤 선생의 선택 역시 하나의 또 다른 현실 참여였다”고 아쉬워했다. 김호기 교수는 “인문학은 권력 비판이 주요한 임무지만 경제학이나 정책 과학적인 성격의 학문에서 지식인의 참여는 굳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면서 “지식인의 정치 참여 자체를 탓하기 힘들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 총리 후보자의 선택을 두고 최근 소설가 황석영씨의 ‘변절 논란’이 언급됐다. 그러나 정 총리 후보자의 경우가 황씨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학계의 관점이다. 정 총리 후보자는 정치적 선택을 했고, 황씨는 정치와 관련이 없는 1회성 발언이자 실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황씨는 진보적인 성향의 집필자였지만 정 총리 내정자는 진보적 학자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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