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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껴안기’ 믿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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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 추이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 추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0%를 상회하고 있다. 중도실용이란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면서 친서민 행보를 펼치자 돌아섰던 지지자가 다시 돌아오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촛불정국 이후부터 수세에 몰렸던 이 대통령이 국정의 주도권을 잡고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친서민정책이 일시적인 국면전환용이라면 지지도는 물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 추세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청와대는 “등을 돌렸던 지지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공동으로 지난 8월25일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최근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41.4%로 나타났다. 이는 7월13일 정기조사 때의 31.9%에 비해 9.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에 대해 윤희웅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은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가 경제에 관심이 높은 수도권, 40대, 자영업과 주부층 등에 어필하면서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청와대가 최근 공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8월23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5.5%로 나타났으며, 8월22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진행한 또 다른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46.7%로 나왔다. KSOI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집권 이후 국정지지도가 48.1%(2008.3.25)까지 올라갔으나 촛불집회 국면을 맞으면서 15.2%(2008.6.11)까지 추락했으며, 이후 20~30%대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8.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대선 득표율까지 육박
수치로만 보면 이 대통령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국 운영을 할 수 있는 모양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남북관계 악화→용산 참사→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역설적으로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중도실용주의로의 노선 전환과 친서민정책이 먹혀들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에는 갈팡질팡했다가 최근에 중도실용이란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국민들로부터 ‘부자정권’이라는 인식을 톤다운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이 대통령의 서민행보를 ‘정권위기 탈출용’이라고 폄하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정책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정권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이런 정권이 친서민정책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라고 비난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 대통령이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진정성과 지속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책적으로는 부자 감세 등 부자·재벌 편향의 정책을 지양하고 30조원에 이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예산을 교육·복지 분야에 투입해야 ‘서민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서민행보가 일시적인 국면전환용이거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발로라면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상승은 물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민심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중도실용은 이명박 정부의 전매특허라기보다 세계의 대다수 정부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노선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도실용노선 추구가 이명박 정부의 자발적인 선택도 있지만 정부라면 당연히 양극단보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포진해 있는 중간층을 껴안는 정책을 펼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작은 국정 주제로 국민들 환심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최근 이 대통령이 국정의 주도권을 잡고 이에 따른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국정지지도가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정부여당이 빅톡(큰 현안) 보다 스몰톡(작은 현안)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최근 ‘4대강 살리기 사업’, 부자 감세 같은 큰 현안보다 ▲대학생들의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 ▲5세 이하 아동 보육비 지원 ▲검찰 출석이 어려운 피해자·참고인의 전화 진술제 도입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보증 한도 확대 ▲150만명 규모의 생계형 서민 특별사면 등 작은 주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등록금 후불제와 아동보육비 지원 등은 진보진영인 민주노동당의 총선(또는 대선) 공약이었으나 예산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 대통령의 작품이 됐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이 심혈을 기울인 ‘4대강 살리기 사업’, 부자 감세 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는 어젠다는 수면 밑에서 조용히 시행하고 있고, 친서민 정책은 큰소리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참모진이 전략적으로 어젠다를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대통령이 국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자치단체장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와 김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통해 화합과 통합 이슈를 선점한 점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달리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각별히 예우했다.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고 빈소를 방문했으며, 보수우익 진영에서 극렬히 반대한 국장을 하도록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로 파견된 북한 조문단의 접견 요구도 수용했다. 이같은 이 대통령의 모습은 김 전 대통령의 강고한 지지층이 집결한 호남지역 지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은 8월24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통합과 화합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겠다고 말했다.

‘화합과 통합’ 공염불 그치지 말아야
그러나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엿볼 수 있는 이 대통령의 속내는 중·대선거구제 개편,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개혁이었다. 이는 나아가 개헌과 여권의 차기 정권 창출이란 일련의 프로그램과 연결돼 있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화두로 야당인 민주당에 국정운영에 협조해 줄 것과 상대적으로 선거구가 많은 영남지역의 선거구를 개편함으로써 친박계(박근혜계)를 견제하는 ‘양수겸장’ 포석인 셈이다.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중·대선구제로의 전환 ▲권역별 비례대표제 및 석패율제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야당과 협의해 국회 내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셋째 이 대통령이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로 보수층의 지지를 탄탄하게 굳혔다는 해석도 나온다. 즉 친서민정책으로 보수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선택한 보수층이 계속 이 대통령을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보수층 여론을 주도하는 조(조선일보)·중(중앙일보)·동(동아일보) 등 부자신문들의 이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도 국정지지도 상승에 한 몫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명박 정부가 조·중·동이 지지하는 방송 진출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있는 조·중·동이 최근 이명박 정부 정책을 떠받쳐주고 있다”면서 “과거에도 언론이 정권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친 적이 있었다” 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두 가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현 정부 내의 온건파와 강경파 간 긴장 지속이다. 현재는 이 대통령이 친서민정책을 펼치는 등 온건파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강경파도 언제든지 이 대통령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다. 특히 정부의 부채 증가에 따른 재정 악화시 강경파는 건전재정으로의 정책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이념 기반인 신자유주의와 중도실용은 근본적으로 공존이 불가능한 관계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분배 위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이명박 정권의 화합과 통합이라는 화두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국민 70%가 반대하는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하는 등 국회에서는 토론과 타협의 기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정기 국회에서도 거대 여당에 의한 정국의 일방적 운영이 예상된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이 시대정신임을 강조했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당장 7개월째 해결이 되지 않은 용산참사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상승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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