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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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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6개월 결산, 정치 실종 속 ‘강부자’ 정책에 서민 등 돌려

지난해 5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에 대해 사과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촛불정국이 사그라들면서 이명박 정부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지난해 5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에 대해 사과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촛불정국이 사그라들면서 이명박 정부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지난 8월24일 청와대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5.5%로 상승했고, 이는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40% 지지율을 넘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였다. 7월26일 31.1%였으니 1개월 만에 지지율이 14%나 오른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급격하게 상승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우선 요즘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친서민’, ‘중도실용’ 등의 구호가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서민과 중도 담론이 먹혀드는 것 같다”면서 “경제위기가 우려한 것보다 빨리 해결되는 것도 한 몫 했다”고 진단했다. 제한적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25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정치의 실종, 여야의 대치 정국
이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년6개월 동안 한국 정치는 후퇴를 거듭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정치가 실종됐다”는 혹독한 평이 나오기도 한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토론과 합의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방통행과 강행의 정치 및 정책이 이어졌다. 대치와 갈등이 계속됐고 소통부재란 지적이 쏟아졌다.

여권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국정원법 개정안 ▲금산분리 완화 ▲미디어법 개정 ▲테러방지법 등을 밀어붙였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MB 악법’으로 부르면서 여당의 강행 처리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권은 야권을 상대로 타협 대신 ‘직권상정’이라는 카드를 시시때때로 내밀었다.
7월22일 미디어법이 날치기 처리되기까지 여야의 대치 과정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여줬다. 여야의 대치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됐다. 고흥길 문방위원장(한나라당)은 기습상정을 감행했고, 상임위 활동이 취소됐다. 유례가 드문 ‘국회본관 출입제한’ 조치가 내려지고 국회 경위와 경찰이 국회의원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여야 타협과 토론이 없어진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부활’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손호철 교수는 제18회 민주정책포럼에서 “한나라당은 다시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대통령 개인의 정당’으로 변화하고 말았다”면서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역시 다시 ‘정권의 하수인’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지적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정치가 실종된 것이고,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정치력을 발휘해 큰 정치를 해야 하는데 갈등만 야기했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 인사도 적지 않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윤리교육과)는 칼럼을 통해 “막상 기대한 리더십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서 “공익 지향의 리더십은 자기 캠프 사람만 고집한 인사로 인해 의구심의 대상이 됐고,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은 진정성을 띤 대화보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상명하달식의 간섭적인 지시와 명령 형태로 변질됐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정치외교학과)도 “정치는 지난 10년과 비교해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촛불집회처럼 대규모 집회를 포옹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포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1년6개월 동안의 한국정치를 ‘증오의 정치’, ‘속도의 정치’라고 지칭하는 이들도 있다.

서민은 없는 1%만을 위한 경제정책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가운데 핵심은 연 7% 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747공약’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얼마 가지 않아 7% 성장은 스스로 포기했다.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부도로 시작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7월2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던 장면. <경향신문>

7월2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던 장면. <경향신문>

한국 역시 원자재가격 폭등, 환율 폭등, 주가 폭락 등 여파로 경제지표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8년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물가안정 ▲민생관리 ▲일자리 창출 등으로 잡았다. 그러나 MB노믹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이명박 정부의 전체적인 국정 기조는 ‘선진화’, 이러한 정책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두 가지 주요 정책 수단은 ‘규제완화’와 ‘감세’로 각각 제시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을 경제위기 국면에서 채택하면 안 되는 ‘역주행정책’으로 꼬집었다.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를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법인세 인하는 5%의 대기업이 혜택을 보고 소득세 인하는 근로자 절반이 면세 대상이어서 서민들은 별 혜택을 보지 못했다. 한국방송대 김기원 교수(경제학과)는 “세율인하 정책은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재정운용을 하겠다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경상대 경제학부 장상환 교수는 ‘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에서 “감세로 소비와 투자의 확대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세수가 감소해 재정적자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고, 소득분배를 악화시켜 경제의 소비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도 많다. ‘대불공단의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불도저식 규제 완화에 대해 김기원 교수는 “함부로 규제를 완화하면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질서가 무너진다”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잘못 추진하면 반시장적 퇴행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각국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만이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부동산 거품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양도세 일시 면제혜택, 분양가 상한제 폐지,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의 움직임이 있다.

쌍용차 사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행진을 벌이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경찰. 쌍용차 사태는 노사정 신뢰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창길 기자>

쌍용차 사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행진을 벌이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경찰. 쌍용차 사태는 노사정 신뢰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창길 기자>

부자 감세 등으로 대규모 재정적자가 예상되는 데도 22조원 이상을 ‘4대강 살리기사업’ 토목공사에 투입키로 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그럼에도 사회간접자본(SOC)이나 복지 등 분야의 지출을 줄이면서까지 이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이 가장 큰 문제다. 혁신도시 건설을 재검토한다고 했다가 지자체가 반발하자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정부 경제정책은 일관성이 결여됐다. 이로 인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경제 주체의 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정책’을 표방하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것은 1년6개월의 임기 동안 펼친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반면교사이다.

민주주의의 후퇴, 반법치주의 사회
1년6개월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촛불정국이 끝나자마자 정부는 대화와 타협, 소통 대신 ‘강공 작전’을 감행했다. 시위나 파업 참가자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이 이어졌다. 미디어법 개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마스크 데모 금지법 등 시민의 정당한 목소리까지 제한하는 법안들이 마련됐다. 휴대전화 감청, 위치파악 등 시민 감시 수단은 늘어났다. 올해 초 용산참사가 터졌다. 사회적 약자인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불법적인 공권력으로 누르려다 철거민은 물론 경찰까지 사망케 한 비극이었다. 사건 발생 8개월이 다 되도록 용산참사 피해자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 모든 것을 ‘법치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커버스토리]이명박 정부 변해야 산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법학과)는 ‘이명박 정권과 법치주의’라는 글에서 “원칙과 기준이 없는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변태적 ‘법치주의’를 말한다”고 비판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시민이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가 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면서 “시민의 참여와 행동을 이념적으로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시민사회 활동은 위축됐다. 유형·무형의 정부 압박 탓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명박 2년 길 잃은 시민사회’라는 글을 통해 “민주주의와 함께 ‘참여’라는 또 다른 메뉴를 올린 시기는 어떤 의미로든 한 사이클을 돌아 ‘명박시대’와 함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의 국면을 지나는 중이다”고 평가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후퇴했다. 민주정책연구원이 이명박 정부 1년을 앞두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신장됐다’는 답변은 33.9%였고, 57.6%가 ‘후퇴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신장됐다’는 답은 36%인 반면에 55.4%가 ‘후퇴했다’고 답했다.

지난해의 미네르바 구속은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으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이 법은 1980년대 이후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활했다. 농림부장관이 MBC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수사가 이뤄지고 제작진이 긴급체포당한 것이나,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 YTN 노조위원장의 구속 등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훼손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수많은 신음이 쏟아졌다. 일제고사 부활로 학생들은 1년 내내 시험 준비를 해야만 했고, 일부 대학은 시류에 편승해 3불 정책(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부할)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교육 현장을 살인적인 경쟁체제로만 만드는 것에 반대한 교사들은 해임과 파면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징계당한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지난해 5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에 대해 사과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촛불정국이 사그라들면서 이명박 정부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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