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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도 정권 눈치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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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교수 재임용 탈락·캠퍼스 공개행사 취소 등 ‘이상 징후’

8월17일 오후 서울 중앙대 본관 앞에서 중앙대 학생들이 진중권 독문과 겸임교수 재임용 불가 처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17일 오후 서울 중앙대 본관 앞에서 중앙대 학생들이 진중권 독문과 겸임교수 재임용 불가 처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름 햇살에 고즈넉한 가을 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요즘 중앙대는 되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그룹이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본격적인 물밑 작업에 들어간 데다 최근 이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 한 사람이 학교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17일 중앙대 본관에 이 학교 총학생회, 독어독문과, 문과대 학생들이 모였다. 학교 측의 진중권 독문학과 겸임교수 재임용 불가 통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성명서에서 학생들은 진 교수의 재임용 불가가 불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먼저 진 교수는 지난 7년 동안 세 차례 공식 임용 절차를 밟아 겸임교수로 재직해 왔지만 다른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느닷없이 임용불가 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다음은 ‘겸직기관’ 없음이라는 재임용 불가 사유는 이미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것. 마지막은 진 교수 강의는 학생들의 호응이 높아 타교에서도 청강생이 몰려올 만큼 중앙대의 위상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오히려 더욱 안정적인 지위를 진 교수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학본부의 이번 결정은 교육적 차원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학생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학과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했다.

“수업권 침해, 학문자유에 대한 도전”

지난 6월21일 밤 서울 성공회대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에서 시민들이 초청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이 공연은 애초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이 노천광장 사용 불가 통보를 하면서 장소를 성공회대로 옮겼다. <김영민 기자>

지난 6월21일 밤 서울 성공회대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에서 시민들이 초청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이 공연은 애초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이 노천광장 사용 불가 통보를 하면서 장소를 성공회대로 옮겼다. <김영민 기자>

학생들은 성명서 낭독을 마친 후 총장실로 향했다. 박범훈 총장은 당시 총장실에 없었다. 학생들은 빈 총장실에 들어가 레드카드를 붙였다. 학생들은 이것이 퍼포먼스였다고 주장했지만 학교 측은 ‘학교 건물에 무단 침입하거나 학교 건물을 점거하는 행위를 한 자’에게 적용하는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을 들어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성 부총학생회장(22·정외과)은 “총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안에 들어가도 된다는 총장실 직원의 허락을 받고 들어간 것”이라면서 “그때 마침 학생지원처 직원이 찾아와 잠시 언쟁이 벌어졌다. 총장실에서 레드카드 10여 장을 붙이고 나오는 데 5분이 걸렸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학생지원처는 이에 대해 8월21일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시위 방식은 학생 본분에 어긋나며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행위로서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이 있은 이튿날 독문과 대학원생 2명, 총학회장, 독문과 학부생 3명 등 6명은 학교 측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기자회견 당시 한 언론사의 사진에 찍힌 사람들을 추렸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학생지원처 조사 요구에 응하는 대신 8월24일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생지원처장을 면담했다. 면담하는 자리에서 학교 측은 사과를 요구했고, 학생들은 거절했다.

진 교수에 대한 중앙대 학생들의 평가가 만장일치로 호감 일색인 것은 아니다. 김준호 독문과 학생회장(25)은 “유능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수업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학생도 꽤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우리가 반발하는 건 학생들의 수업권이 무시됐다는 점”이라면서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이미 끝낸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임용불가 방침을 밝힌 바람에 학생들만 손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과의 인터뷰에서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는 학교가 자신에게 베푼 시혜가 아니라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이 학교 독문과 김누리 교수는 “겸임교수는 처우 면에서 시간강사와 차이가 없다. 진 교수 말처럼 시혜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진 교수가 오히려 학교에 특혜를 준 것”이라면서 “(진 교수에게) 고맙게 여기고 있는데 (시혜를 준 것처럼 얘기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당국의 친정부적 행태”
김 교수에 따르면 중앙대 독문과는 2000년대 초반 독문과 대학원 진학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자구책을 모색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학술진흥재단의 장학금을 유치하는 것과 새 교수진을 꾸려 수업을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독문과 교수들은 2002년 무렵부터 프로젝트 수행에 매달렸다. 프로젝트 수행이 학생 장학금 마련을 위한 물적 기반 조성이었다면 필명을 날리던 진 교수를 영입한 것은 수업 차별화의 일환이었다. 수업 차별화의 큰 틀은 기존 문학과의 문학 중심 수업 틀을 문화비평과 미학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 진 교수를 영입할 때 진 교수에게 박사학위가 없었다”면서 “학위 없이도 가능한 일을 학교 규정을 뒤져 찾아낸 것이 겸임교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학교 규정에 따르면 겸임교수는 2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받게 돼 있다. 진 교수는 2003년 임용된 후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 재임용 심사를 받았다. 규정에 따르면 겸임교수는 재직증명이 있어야 하지만 진 교수는 사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처럼 학교 측은 학과의 필요에 따라 지난 두 차례 재임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유로 진 교수 재임용 불가를 통보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 선대위 문화예술정책위원장과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은 박범훈 총장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일까. 박 총장은 올해 2월 한나라당 ‘국민통합포럼’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판소리 공연을 한 여제자를 향해 성희롱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진 교수는 당시 박 총장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써 여론의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김 교수는 “더 큰 맥락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만 놓고 보면 진 교수와 학교 측의 불협화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에 앞서 카이스트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진 교수가 자리를 잃은 전례를 보면 정권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학생들은 ‘문화연구학과 일동’ 명의로 법학관 건물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대자보에서 이 사건을 “교육적 목적과는 무관한 총장 이하 학교 당국의 친정부적 행태가 노출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는 지난해 촛불집회 현장을 누비며 집회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인터넷 중계방송으로 전달했다. 사진은 김근태 전 의원을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인성욱 기자>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는 지난해 촛불집회 현장을 누비며 집회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인터넷 중계방송으로 전달했다. 사진은 김근태 전 의원을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인성욱 기자>

중앙대만의 일은 아니다. 대학과 정권의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일들은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한 달 간격으로 일어났다.

지난 6월 연세대는 총학생회가 같은달 21일 개최하려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를 불허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6월 초 학교 측으로부터 추모 콘서트를 위해 노천극장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콘서트 사흘 전인 6월17일 불허 통보를 한 뒤 19일에는 서대문경찰서에 시설물 보호를 요청하고 무대설치 및 정문 출입을 막았다. ‘다시 바람이 분다’는 제목의 이 추모 콘서트는 결국 성공회대로 장소를 옮겨 열렸다. 당시 학교 측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사법고시 시험을 이유로 불가 방침을 공식적으로 알렸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노천극장 추모콘서트가 불발된 한 달 후 부산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노 전 대통령 49재 콘서트를 학교에서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학교 측은 ‘계절학기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된다’, ‘정치 행사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가 방침을 밝혔다. 7월8일에는 학교 측의 불허 방침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학교 직원들이 정문 진입을 놓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연세대와는 달리 부산대 콘서트는 결국 예정대로 열렸다. 부산대교수협회가 공연 예정 하루 전날인 7월9일 오후 성명을 통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제하면서 본부가 보호하려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라며 학생들을 지지했고, 학생들은 같은날 밤에 또다시 학내 진입을 시도해 무대 장치를 설치했다. 학교 측은 더이상 학생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8월에는 홍익대에서 행사 개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학교 간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홍익대 학생회는 한국대학생연합생 등 학생단체 및 시민단체와 함께 8월15일 ‘8·15 통일문화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학교 측은 14일 차량으로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날 오후 학생들이 학교 측이 설치한 차량을 밀어 옮기면서 행사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우연이라고 보기 힘든 일은 또 일어났다. 진 교수는 8월19일 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2학기에는 홍익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8월28일에 홍익대 강의마저 없던 일로 됐다. 진 교수는 8월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홍익대 강의도 오늘 갑자기 날아갔네요. 개학 3일 남겨놓고 갑자기”라고 썼다. 진 교수가 블로그에 남겨 놓은 홍익대 측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은 이렇다.
“좀 황당하네요.”
“아, 예….”
“사유가 뭔가요?”
(머뭇머뭇)“중앙대 일도 있고 뭐….”
“예, 알았습니다.”
진 교수는 글 말미에 “올해 들어 웬 우연의 일치가 이렇게 많은지…”라고 썼다.
기사 마감일인 8월28일 현재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와 진중권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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