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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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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의 노래_임동확

일진사 제공

일진사 제공

다시금 살아서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 곁으로 지팡이를 짚고
아프고 지친 다리를 끌며
다가오는 너의 발자국 소리
잠시나마 네 고단한
생의 불편을 감추려는 듯
때마침 여름비가 쏟아지고
네 육성에 묻어나던 지난날들의
꿈과 악몽, 사랑과 절망들이
급기야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
은빛 기억의 바큇살을 타고 밀려온다

여전히 거짓을 진실이라
우겨대는 더러운 혀와 위장된
평화와 진실을 독점하는 가면들에
삼중 사중으로 포위되어 있는 너.

죽어서도 근거 없는 낙인과 더러운 음모,
이름 모를 증오와 이유 없는 질시에도
예전처럼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고개 수그리던 너의 장례식장에
가냘픈 몇 개의 잎으로 모진 겨울을
이겨낸다는 인동초의 향기가 퍼져 오른다
젊은 날 총살 직전의 감옥 탈출과
느닷없는 14톤 트럭의 돌진, 그리고
토막 살해와 수장(水葬)의 위협과 시도를
애써 감추려는 듯 너의 제단은
희고 순결한 인동초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인동초란 너의 별명이
결코 원치 않았을 납치와 망명,
투옥과 감형, 그리고 사형선고가
가져다준 처참한 은유였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널 가택연금하고
끄덕하면 감옥으로 끌어가고
끊임없이 절라도놈이라 손가락질하고
걸핏하면 빨갱이라 몰아세우던 자들
길고 오랜 감시와 집요하고 질긴 박해가
만들어낸 위대하고 거룩한 비유라는 것을.

그러나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 넌 신이 아니었다.
넌 눈물 많은 한 사내에 불과했다
그래서 때로 넌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와 과오를 보여줬다
제 아무리 불가피한 경우라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세력과 타협해,
무수한 비난과 야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때로 잠시의 권력에 취한 이들이
눈먼 돈과 고급술을 탐하는
치명적인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넌 지친 자들이
기꺼이 찾아들던 외로운 섬,
모함 받거나 쫓겨난 자들의 증인,
오래 햇빛 들지 않는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겨울 산동네 응달 길의 시멘트 계단,
결코 잘나지 못한 자들의 푸념,
늘 빈손인 자들의 반항과
불평 많은 시인들의 광기로 차린,
한없이 빈약한 밥상에 초대된 최초의 대통령.

오! 하늘이여!
땅이여!
그리고 사람들이여!
오, 다시 최루가스
화약 냄새 수상한 시절의 밤
여기 잠들어 가는 양심과
양처럼 순해 빠진 눈빛과
악다문 침묵의 입들을 벌리는
꽹과리를 앞장서 치며
폭정의 한복판을 휘저으며 건너가는
저 당당한 하의도 섬 소년을 보라
힘없는 역사의 발걸음과 간단없는 회의,
깊은 슬픔과 한없는 연민의 눈길,
그리고 텅 빈 희망을 자궁을 감싸 안는
넉넉한 감동과 낙관의 내일을 노래하는
수리성의 가객 풍류남아를 기억하라

그래, 넌 안 되면 벽에 욕이라도 퍼부으며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저항,
결코 지지 않은 고난의 힘을 보여주며
늙고 병든 조국의 멱살을 뒤흔드는
다시금 독한 양심의 바람소리로 살아 있다
결코 달라지지 않는 거리의 험담과
힘없는 자들의 분노가 들끓는 분단의 땅,
넌 언제나 푸른 미소가 넘쳐나는 얼굴,
영원히 젊은 세계의 바다물결 소리로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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