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김대중 시대 막 내리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일 오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인물의 죽음을 두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과장없이 말할 수 있을까. 8월18일 서거한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8월18일 8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정치인 김대중이 그간 쌓아올린 업적의 성채는 한 시대의 종언이라는 표현을 너끈히 감당할 만큼 우뚝하다.

61년 5월 보선에서 당선하면서 정치적 이력을 시작했던 그가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구심점으로서 걸어온 길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궤적과 겹치면서, 정치라는 거푸집이 현실의 모습을 거의 압도적으로 규정해온 한국 사회에 깊고 너른 영향을 끼쳤다.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독재와 억압의 정치를 정당화했던 한국 정치의 기득권 세력에게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주장하는 정치인 김대중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와 신군부 집권기에 각기 한 번씩, 모두 두 차례 정치적 타살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97년 대선 때 그의 당선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달성한 후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은 인권과 복지 차원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한 민주주의의 진보가 분단의 얼음장을 깨는 일과 무관치 않다는 그의 신념이 거둔 감동적인 결실이었다.

그러나 업적이 높았던 만큼 그늘도 길었다. 대통령 선서를 하기도 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강풍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오랜 세월 계파 정치의 수장으로 쌓아놓은 정치적 입지는 한국 최고 권력의 고질적 병폐인 측근과 가족 비리에 그를 단단하게 묶어놓았다.

병마와 세월은 그의 육체적 활력을 빼앗아갔지만, 한평생 담금질한 투사의 정신마저 앗아가지는 못했다. 그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현 정권을 향해 뿜어낸 사자후는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미증유의 충격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그가 보인 눈물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이들의 눈에서도 기어이 눈물을 뽑아냈다.

이제 그마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마지막 불꽃을 기억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은 지금 국회 빈소와 전국 곳곳의 분향소로 모여들고 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왼쪽에서 둘째)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에서 셋째) 등 북측 조문 사절단이 21일 오후 국회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왼쪽에서 둘째)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에서 셋째) 등 북측 조문 사절단이 21일 오후 국회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탁월한 대중 연설가였다. 사진은 71년 3월21일 광주 금호국민학교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탁월한 대중 연설가였다. 사진은 71년 3월21일 광주 금호국민학교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9월 마침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혐의로부터 사면복권된 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한 김 전 대통령이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9월 마침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혐의로부터 사면복권된 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한 김 전 대통령이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3년 8월13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요원들에게 납치됐다 5일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3년 8월13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요원들에게 납치됐다 5일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민주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력에게 고인은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진은 1980년 당시 군사정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던 군사재판장에서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민주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력에게 고인은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진은 1980년 당시 군사정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던 군사재판장에서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력적인 독서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도 10시간 이상 독서에 몰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력적인 독서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도 10시간 이상 독서에 몰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1년 5월18일 연세대 강경대 열사 장례식 후 가두행진에 참여한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가 경찰이 쏜 최루 가스를 뒤집어 쓰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1년 5월18일 연세대 강경대 열사 장례식 후 가두행진에 참여한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가 경찰이 쏜 최루 가스를 뒤집어 쓰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였다. 사진은 1987년 고려대 운동장에서 열린 거국중립내각 쟁취 실천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만난 두 사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였다. 사진은 1987년 고려대 운동장에서 열린 거국중립내각 쟁취 실천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만난 두 사람.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외환위기 극복에 매달려야 했다. 1997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당시 임창렬 부총리로부터 경제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외환위기 극복에 매달려야 했다. 1997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당시 임창렬 부총리로부터 경제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1년 9월26일 추석을 앞두고 서울 신림동 재래시장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 과일가게 앞에서 수박을 들고 크게 웃고 있다. <김석구 기자>

2001년 9월26일 추석을 앞두고 서울 신림동 재래시장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 과일가게 앞에서 수박을 들고 크게 웃고 있다. <김석구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북화해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사진은 시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 위원장으로부터 상장과 메달을 받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북화해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사진은 시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 위원장으로부터 상장과 메달을 받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불과 몇 걸음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기자단>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불과 몇 걸음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기자단>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고인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슬퍼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9일 노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리로 안내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고인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슬퍼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9일 노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리로 안내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8일 서울역 앞에 차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후퇴하고 서민경제가 전례 없이 빈부격차가 강화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면서 현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남호진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8일 서울역 앞에 차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후퇴하고 서민경제가 전례 없이 빈부격차가 강화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면서 현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남호진 기자>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하고 있다. 10년간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역주행하면서 노 정치인에게 남긴 상처는 그처럼 크고도 깊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하고 있다. 10년간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역주행하면서 노 정치인에게 남긴 상처는 그처럼 크고도 깊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