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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큰 기둥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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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고동락한 이해찬 전 총리 인터뷰

[커버스토리]“민주주의 큰 기둥 잃었다”

이해찬 전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오래 함께 해 온 ‘정치적 동반자’이자 ‘민주화의 동지’관계였다. 이 전 총리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지금까지 30년 동안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이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과 재야민주화운동 10년, 정치활동 20년을 동고동락했다. 이 전 총리는 특히 불과 3개월여 만에 오랜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영결식장에 참석, 햇볕이 내려쬐는 데도 2시간 가까이 있었다. 그게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친노그룹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누구보다 마음이 아플텐데.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불과 100일도 안 돼 또 한 분의 큰 지도자를 잃게 돼 섭섭한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 남북화해, 민생경제를 잘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필요한) 큰 기둥을 잃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30년 동안 모셨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1980년에 구속돼 재판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석방 이후 김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에 돌아와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하다가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국민운동본부는 정치권, 재야운동권, 종교·시민단체 등 연대의 틀로 6월 항쟁을 이끌었다. 1987년 대선이 끝나고 대선 패배와 후보 단일화 실패의 책임이 김 전 대통령에게 전가됐다. 이 때문에 당시 평화민주당은 와해 위기에 처하게 됐다.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평민당이 와해될 경우 영남에서 여당과 야당을 독식하고 호남에는 정치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후 평민당을 살리기 위해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를 만들어 1988년 2월에 입당했다.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등이 이때 함께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평민당은 예상을 뒤엎고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보다 10석을 더 얻어 제1야당이 됐다. 호남과 수도권에서 표가 많이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 이후 20년 동안 정당정치를 했고, 앞에 10년 동안 재야민주화 운동을 한 것을 포함하면 30년 동안의 인연이 된다.”

김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당 정책위의장을 세 차례 했다. 새정치국민회의(1996년)와 새천년민주당(2000년) 때 4년 동안 했다. 다른 것보다 김 전 대통령과 정책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책 마인드가 굉장히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견실하고 꼼꼼했다. 김 전 대통령은 보고를 하면 모두 기록했다. 내가 수첩을 쓰게 된 것도 김 전 대통령의 기록 습관 덕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 확립,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탈출, 시장경제 정착 등을 이뤄냈다. 그 전까지 우리 경제는 관치경제였다. 재벌이 은행 차입금 기업을 운영하는 관치경제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부채를 줄이고, 금리도 한 자릿수로 낮춰 정상적인 기업경영의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정보통신(IT)산업 육성은 국가적으로 성공한 정책이었다.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중공업이 발전한 것도 모두 IT기술 덕택이다. 김 전 대통령 때 집중적으로 육성해 IT분야가 세계적으로 선두그룹에 위치하게 됐다. 인터넷은 더욱 그렇다. 인터넷 뱅킹이 일반화되고 온라인을 통해 교육 받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전통산업 사회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행사에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했다. 이 규정에 동의하나.
“최근에 충격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경찰국가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모든 것을 경찰공권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실제로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건 때 경찰특공대로 진압했다. 근래 15년 사이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거리 집회도 전경을 동원해 진압하고 있다. 전경의 진압은 방어가 아닌 공격적 작전이다.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 1인 시위도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포털사이트에 있는 조문 리본을 청와대에서 줄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독재 발상이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의 3대(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 위기를 걱정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다. 전체적으로 역사 발전에 역행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를 열었고, 남북관계도 대결에서 공존의 관계로 변모했으며, 민의를 반영한 선거제도가 정착되는 등 정치도 안정화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집회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도 침해되고 있고,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6000달러로 떨어졌으며, 국가부채도 100조원 가까이 늘었다. 현 정부가 토건국가를 목표로 하다 보니 교육·기술 개발 예산이 줄었다. 남북관계에서도 억류된 선원들조차 데려오지 못하고 있으며, 유성진씨도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에서 데려왔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도 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몇 번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나라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진 것과 정부가 역주행하고 있는 것을 굉장히 걱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나의 반쪽이 무너진 것이다’고 했다. 또 남북관계가 너무 나빠진 것을 우려하고 8·15쯤에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방안을 준비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중단됐다.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햇볕이 내려쬐는데도 2시간 가까이 참석했을 때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또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토록 처절하게 치욕을 당했더라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에게 치욕을 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분노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가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두 분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주개혁적인 정부, 즉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만들어냈다. 우리 역사상 1800년 정조대왕 이후 1997년까지 한 번도 민주개혁 진영이 집권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집권한 10년 동안 민주화 사회를 만들고, 특권과 권위주의를 없애고, 개혁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또한 앞으로 남은 사람들이 민주개혁 진영을 추슬러 발전시켜 나갈 과제다. 지금은 이쪽 진영의 정당이든 시민단체이든 하나하나 역랑이 모자라기 때문에 연대를 통해 거대 여당, 족벌 언론, 독점 재벌에 대응해야 한다. 거대 권력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기구를 만들어서 10월 재·보선을 비롯해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 및 대선에 대비해야 한다.”

민주개혁 진영이 구심점을 잃었다. 특별히 이들을 대체할 만한 정치적 리더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리더십은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오랜 민주화운동과 정당활동 등 시련을 통해 강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와 기득권을 버리는 정치활동을 통해 리더십이 생겼다. 지금은 그만한 강력한 리더십이 나올 만한 지도자가 없다. 우선은 민주개혁 진영이 연대를 통해 국면에 대응하다 보면 그 중에서 좋은 판단과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리더십이 모아질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 마인드가 굉장히 자유민주주의 틀 속에서 견실하고 꼼꼼했다. 김 전 대통령은 보고를 하면 모두 기록했다. 내가 수첩을 쓰게 된 것도 김 전 대통령의 기록 습관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 마인드가 굉장히 자유민주주의 틀 속에서 견실하고 꼼꼼했다. 김 전 대통령은 보고를 하면 모두 기록했다. 내가 수첩을 쓰게 된 것도 김 전 대통령의 기록 습관 때문이다.”

이 전 총리를 ‘대장부엉이’로 뽑아 지지하는 카페가 눈길을 끈다. 회원들을 자주 만나나.
“지난 6월에 강연 요청하러 왔을 때 만났다. 20대 여성들이 강연을 요청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 충격을 더 받고, 이 나라의 방향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과 민주주의, 민생문제, 남북관계에서 여권에 대항해 당당하게 펼칠 사람으로 나를 주목했다. 회원이 1800명으로 시작한 이 카페는 두 달여 만에 9300명이 넘었다. 이들은 이번 김 전 대통령 서거 때도 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재단 사업은 어떻게 돼 가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족들과 비서진이 추모기념사업회를 만들기로 했다. 추모사업회 준비위원장으로서 추모사업회 발족을 책임지고 할 것이다. 9월 말에 준비위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노무현 스쿨’을 대학원대학 과정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몇 가지 형식으로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1차적으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연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유시민 전 장관, 문성근씨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궁극적으로는 케네디스쿨처럼 공공정책대학원을 만들어 전문적 교육과 리더십 교육을 통해 정치인, 시민사회운동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민주당을 탈당해 당적이 없다. 민주당 복당 등 앞으로 정치할 생각은 없나.
“정당정치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다. 정당정치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폭넓은 시민정치 활동을 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무브온’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과거에는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없었기에 경직된 조직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포털사이트가 발달해 온·오프라인에서 함께하면서 넓은 시민사회 정치활동을 하려고 한다.”

‘친노진영’의 일부가 최근 창당 선언을 했다. ‘친노신당’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친노진영의 스펙트럼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한명숙 전 총리처럼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그룹, 둘째 유시민 전 장관 같은 민주당도 신당도 참여하지 않는 그룹, 셋째 신당추진 그룹, 넷째 ‘대장 부엉이’ 카페 회원처럼 그동안 친노는 아니었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는 그룹이다. 네 개 그룹이 일사분란하게 민주당이나 신당 등 어느 한 쪽으로 통합하는 것은 어렵다. 이 네 개의 스펙트럼을 하나로 관통하면서 이것이 허브가 돼 넓은 의미의 시민정치활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체적인 민주개혁 진영의 힘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막상 ‘친노신당’ 이 창당되면 선거에서 선거연대 또는 후보단일화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에서 후보단일화가 전에는 잘 안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당, 시민단체 등 각 진영의 힘이 약화되다 보니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자각으로 후보연대까지 하자고 나오고 있다. 경기도 교육감 후보의 단일화와 지난 울산 재·보선에서의 후보단일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진보 진영에서는 앞으로 지방선거에서 서로 강한 지역을 인정해 주면서 후보연대를 모색하면 전국적인 선거연대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제는 개혁 진영의 사고가 유연해져 후보연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오는 10월의 경남 양산 재·보선에 ‘친노진영’에서 누가 나가야 할지 격론이 있는 것 같다.
“양산 선거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출마한다. 단순한 보궐선거가 아닌 상당히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현지 분위기는 박희태 대표가 국회의장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퍼져 양산지역에서는 거부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쪽에서 후보를 놓고 여러 협의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에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민주개혁 진영 입장에서는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한 선거가 될 것 같다. 공교롭게 지방선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맞물려 있다.
“아무래도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이명박 정부와 검찰의 잘못된 행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조문객 분위기나 여론을 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표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것이 강했다. 국민들로서는 집회해도 안 되고, 항의해도 안 되니까 결국은 투표로 힘을 보여주겠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국민들이 역주행 정부에 제동을 거는 의미에서 표로 심판할 가능성은 높다. ”

내년 지방선거의 관심은 아무래도 서울시장 선거가 될 것 같다. 야권에서는 누가 후보로 나올 것 같은가.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지금은 실제로 이길 가능성이 많이 생겼다. 김상곤 후보가 경기도 교육감이 되는 것을 보고 그런 조짐을 느꼈다. 당선이 어려울 것으로 봤으나 끝나니까 의외로 표차가 많이 났다. 국민들의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18대 총선과 17대 대선에서 표를 찍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 봐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로 한명숙·유시민 두 사람 중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그 두 분을 도와주는 것이 내 몫이다. ”

‘포스트 노무현’ 구상과 관련해 앞으로 민주개혁 진영과 천민수구독재 진영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이 천민수구독재 진영인가.
“보수는 기본적으로 엄격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은 지난 대선 때 자기 당 후보로 인기가 높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선출하지 않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내세웠다. 이유는 자기들의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화당은 정권교체를 당했다. 보수에 엄격한 도덕이 없으면 천민적 보수주의가 된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가치 지향적이지 않은 데다 토목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물질주의에 빠진 보수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을 국민들은 합리적으로 보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걷고, 돈이 부족하면 빚을 내며, 4대강 사업에 타당성 조사 없이 30조원이나 쏟아붓고 있다.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시장경제 시각에서 보면 합리성이 전혀 없다. 게다가 현 정부는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최근의 언론통제 발상과 집회의 자유 제한을 보면 알 수 있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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