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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가운데 간헐적인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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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 분향소 표정 “이명박 정부 정치적 부담 계속될 것”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1일 서울광장 분향소에 마련된 추모의 벽에 분향을 마친 시민들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다. <김창길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1일 서울광장 분향소에 마련된 추모의 벽에 분향을 마친 시민들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다. <김창길 기자>

차분했다. 서거 이튿날, 세브란스병원 지하 2층 특1실에 마련된 빈소는 각계인사의 조문이 계속됐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상주로 내방객들을 맞았다. 빈소 맞은편에는 행정안전부 상황실과 기자실이 마련됐다. 조문객을 맞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피로와 슬픔이 겹친 얼굴이다. 각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경쟁은 뜨거웠다. 세브란스병원 입구와 지하2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선 늘어선 카메라 기자들이 조문객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들은 이날 새벽 5시 무렵 한가해진 틈을 타 분향했다. 새벽엔 지방에서 올라온 지지자들이 “민주당 의원들은 다 어디 갔느냐”며 호통을 치는 소란이 있었다. 지난 2002년 붉은악마 대표로 오찬에 참석한 이재성씨(34) 부부는 자녀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액자사진을 들고 빈소를 찾았다.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계속됐다. 검은색 옷을 차려 입고 방문한 시민들은 대부분 말없이 빈소에 들어가 조문했다.

각계 인사 세브란스 병원 찾아 조문
오후 4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조문왔다.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함께였다. 벌써 22년 전이다.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배씨와 연세대 학생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던 이한열씨의 병상을 지켰다. 

이한열씨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그때의 영안실은 현재의 위치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지팡이를 짚고 국민운동본부 집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고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후보 단일화 실패, 평화민주당 결성, 재야인사들의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 참여, 정계은퇴 후 국민회의 결성, 대통령 당선과 유가협의 국회 앞 농성…주마등처럼 김 전대통령과 관련한 정치사가 뇌리를 스친다.

8월 19일 서울광장에 차려진 정부 공식 분향소. <정용인 기자>

8월 19일 서울광장에 차려진 정부 공식 분향소. <정용인 기자>

“딸이 예쁘게 컸네.” 아들 김홍일씨의 부인 윤혜라씨와 딸이 조문 온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윤씨는 상해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의 경호실장을 맡은 윤경빈씨의 딸이자 세 딸의 어머니다. 간간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고향마을에 가보지 못하는 것이 부담이 됐는데 지난 4월 하의도도 다녀왔으니 그래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셨을 것.” 돌아가는 지인을 붙잡고 소감을 물어봤다. 윤씨와 이화여대 정책대학원을 함께 다녔다는 한 지인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윤씨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들었다”라면서 “비록 지금은 다 잘 풀렸지만 남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여전히 근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김홍일씨는 비쩍 마른 모습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장례식장에 나타나 세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문을 마치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 김희선 전 의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 전 의원은 동행한 이와 김 전 대통령의 일기 내용을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인터넷에 내용이 공개되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이라는 것이다.

시청 앞 서울광장.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8월18일 오후부터 곳곳에선 대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천막을 치고 시민분향소를 만들려고 하던 안티이명박카페 회원들은 천막과 발전기 등 집기들을 경찰에 압수당했다. 대한문 앞뿐 아니라 서울광장의 시민분향소는 경찰의 ‘알박기’로 만들지 못했다. 이날 오후 9시. ‘초’를 실은 승합차는 경찰 병력의 저지를 받았다. 항의하는 시민들과 뒤섞인 경찰들. 경찰 채증카메라에 맞서 시민들은 채증카메라를 든 경찰과 지휘관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시민들의 카메라를 피하던 경찰은 결국 자리를 이동했다. 곳곳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삼삼오오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시민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서울광장 시민분향소 둘러싼 소동
“국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시민분향소도 다시 차려졌다. 19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는 시민추모위원회 결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를 주도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에 섰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3개월 전에 노 전 대통령을 보내고 이렇게 또다시 김 전 대통령을 보내게 된 데 대해 비통함을 느낀다”라면서 “민주·통일·인권 단체들이 국민들이 모여 슬퍼할 공간을 마련하고 그런 시간을 갖자고 생각해 시민추모위원회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열어 놓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조계사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하다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는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불법으로 규정된 전교조에 합법화의 길을 열어주셨던 분”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이 생각하고 실천한 것을 학교에서 이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사시국선언 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 의해 해직된 상태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입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객을 취재하려는 언론사들의 취재경쟁 열기가 뜨겁다. <정용인 기자>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입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객을 취재하려는 언론사들의 취재경쟁 열기가 뜨겁다. <정용인 기자>

서울광장에 정부의 공식분향소가 만들어졌다. 긴 줄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때와 ‘차이’라면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주변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수많은 분노의 메시지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문 앞 횡단보도 입구에서 흰 상복을 입고 삿갓을 쓴 남자가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찰, 쪽팔려 해야 합니다. 잡으라는 범죄자는 못잡고 1인시위를 하는 사람에게 교통방해로 20만원 벌금을 매기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10년 넘게 활동해온 민정기씨(50·택배업)다. 그는 “지난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경찰이 민생치안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는 데 나서고 있다”라고 강도 높게 성토했다.

또 다른 소란도 있었다. 공식분향소가 마련된 뒤 시민분향소를 둘러싸고 일부 노인들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상갓집에 상주가 둘이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 김종만씨(73)는 “전직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명숙씨나 이해찬씨도 저쪽에 있는데 이쪽에서 또 다른 분향소를 만드는 것은 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분향소를 만든 쪽의 입장은 어떨까. 김 전 대통령 팬카페 DJ로드의 한 관계자는 “국장을 수용하라는 시민여론에 굴복해 마지못해 공식분향소를 만들었지만 상주가 누구인가”라고 반문하며 “시민분향소는 민주주의 후퇴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 정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 공식분향소를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있던 정재호군(17)은 지난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부터 시민분향소에 나와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존경했던 두 분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대립은 격화됐다. 멱살잡이까지 나왔다. 시민상주이자 민주당 당원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들어섰나”면서 “어르신 같은 분들이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부의 성과를 부인했기 때문 아니냐”고 소리쳤다. 흥분한 철거 주장 쪽 사람들은 “여기 대표가 누구냐, 나와라”, “이명박이 사주해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날 저녁 시민분향소는 자진 철거됐다.

시민 민정기씨가 서울광장 맞은 편 대한문 앞 쪽에서 ‘미디어법’을 비판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시민 민정기씨가 서울광장 맞은 편 대한문 앞 쪽에서 ‘미디어법’을 비판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셋째 날인 20일 저녁에도 소란이 있었다. 정부 공식분향소의 천장이 주저앉은 것. “저 놈 잡아라”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무너지는 순간 누군가 망치로 내려치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 분위기는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서울시와 행안부 관계자들 앞으로 몰려간 시민들은 “아무리 서울 광장을 내주기 싫더라도 국민들이 찾는 분향소를 이따위로 만든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일부 시민들은 무너진 분향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앉은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차이는
노 전 대통령 때와 같은 ‘분노’는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추모하는 분위기였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사회학 박사)는 “죽음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뜻밖의 자살이었다. 특히 정부와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로 빚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격앙된 반면에 김 전 대통령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시국 상황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유씨는 “고인의 죽음을 놓고 정부책임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확실하다”면서도 “20일 공개된 김 전 대통령의 일기장만 보더라도 용산 문제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강한 비판과 우려가 담겨 있는데 결국 이명박 정부로서는 그런 정서에 대한 부담은 계속해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9일 서울광장에 차려진 정부 공식 분향소. 짿 쨁 쨂 19일 서울광장의 정부 공식분향소 옆에 차려진 시민분향소. 정재호군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있다. <정용인 기자>

19일 서울광장에 차려진 정부 공식 분향소. 짿 쨁 쨂 19일 서울광장의 정부 공식분향소 옆에 차려진 시민분향소. 정재호군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있다. <정용인 기자>

첫째 날과 둘째 날, 비교적 차분했던 서울광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시민들은 분향소 주변에 노란색 풍선을 매달았다. 노란색은 평민당 시절부터 DJ를 상징하던 색이다. 일부 시민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노란색 셔츠를 배포하고 있었다. 곳곳에 소자보도 나붙기 시작했다. “침묵하고 두려워하는 당신은 악의 편이자 겁쟁이, 깨어나 행동하는 당신은 의로운 민주시민”이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손 펼침막을 들고 1인시위를 하는 여성도 있다. 광장 오른편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처럼 ‘추모의 벽’이 만들어졌다. 근조 리본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삽시간에 벽을 메웠다. 보수언론을 비판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패널도 여럿 등장했다. 후광(後廣).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가 떠올랐다. ‘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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