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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속출 정부 대책은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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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예방백신 확보 나섰지만 물량 부족 우려

지난 7월 정부가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올렸지만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실질 대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8월20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신종 플루 당정협의회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정부가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올렸지만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실질 대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8월20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신종 플루 당정협의회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월28일 국내에서 첫 신종 플루 감염 추정 환자가 발견된 지 꼭 110일 만인 8월15일과 이튿날 신종 플루 감염자 두 명이 잇따라 폐렴 합병증으로 숨지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망자 모두 신종 플루에 대한 진단이 늦어져 제때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초기대응 실패 등 정부의 방역체계에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안일한 자세에 ‘사후약방문’ 남발
표면적으로 드러난 두 사망자의 사인은 신종 플루의 합병증,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과 폐부종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최초감염 증세 후 5일 만에 생명이 위중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확인돼 의료기관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종 플루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48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면 대부분 완치되지만 첫 사망자의 경우 보건소와 의료기관 3곳을 전전한 후 엿새가 지나서야 신종 플루 감염자로 판정받아 치료시기를 놓쳤다. 두 번째 사망자 역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엔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다.

이는 정부의 ‘조기 치료’ 중심의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방역당국이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를 통해 신종 플루 의심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하도록 일선 병·의원에 내린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신종플루 감염자의 사망률을 최하 0.2%라고 보면 감염자가 2000명을 넘어섰을 경우 사망자 발생은 예견된 일이지만 방역당국과 의료기관의 안이한 자세가 화를 부른 것이다. 정부는 사망자가 나온 뒤에야 본인 감염 여부를 가까운 병원에서 확인하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하는 등 ‘사후약방문’을 내놓았다.

보건 당국이 신종 플루 의심환자에 대해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도 높다. 당초 보건 당국이 내놓은 진단지침은 ‘7일 이내에 유행지역을 여행하거나 7일 이내에 확진환자와 접촉’한 기록이 있을 때나 ‘37.8도 이상의 고열이 동반될 때’ 신종 플루를 의심할 것. 그러나 이번에 사망한 2명의 환자는 모두 이와 같은 진단지침에 해당되지 않은 환자들로서 이 때문에 진단과 치료가 늦었고, 병세가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기자가 실제로 보건소에 확인한 결과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신종 플루가 의심된다”고 상담하자 “우선 37.8도 이상이어야 검사를 한다. 37.8도가 넘으면 보건소로 오라”는 보건소 직원의 답변이 돌아왔다. 보건 당국이 ‘37.8도’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선 병원에 대한 홍보와 협력체제 부족도 문제다. 정부가 신종 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일선 의사들은 이와 관련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 의사포털 닥플닷컴이 개원의사 4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신종 플루와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상세한 의학정보를 공급해야 할 책임 기관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를 꼽았다.

의료계뿐 아니라 지역 교육청 또한 개학 시즌이 다가왔지만 방학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학생은 물론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학생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방역 체계가 총체적 부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 관계자는 “보건 당국과 정보교류가 되지 않는 탓에 신종 플루 확진 학생이 누구인지, 다른 학생들에게 노출된 상황인지 여부를 알 수 없어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승욱 대한보건협회장(서울대 교수)은 “환자 발생도 외국보다 다소 늦었고, 게다가 아직 신종 플루 환자가 2000여 명인 데다 치사율이 0.07%임에도 사망자가 그동안 나타나지 않아 방심을 불렀다”면서 “사망자가 발생한 이상 방역시스템도 이제는 사망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치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협력 부족, 백신 확보는 언제?

서울 송파구청 직원들이 구내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송파구청 직원들이 구내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기관과의 공조도 삐걱거려 향후 치료 중심의 관리도 불안해 보인다. 복지부는 신종 플루 의심환자 확진검사에 대해 건강보험을 한시적으로 적용함에 따라 의심환자들이 동네 병·의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정부는 의료진에게 마스크, 항바이러스제도 보급하지 않으면서 진료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당장 의료인들은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내몰린 형국”이라면서 “의원급 민간 진료기관의 경우 자체 검사시스템 등을 갖추지 못해 신종 플루 1차 진료기관으로 운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국 치료거점병원과 거점약국 체계도 신뢰를 상당히 잃었다. 첫 사망자 발생 뒤 검체 검사 거점병원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일주일이 다 돼서야 명단이 나와 환자들의 애만 태운 것. “의심환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환자들이 내원을 기피할 것”이라는 의료기관과의 협상을 통해 보건 당국은 8월21일에야 거점치료병원 455곳과 거점치료약국 567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보건 당국은 신종 플루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하루빨리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을 찾으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과 따로 노는 의료 현장의 현실은 신종 플루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신종 플루 백신만 투여하면 치료되므로 안심하라고 말해 왔던 보건 당국의 백신 확보 미흡도 지적 대상이다. 5월 초 내국인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 항바이러스제를 단시일 내에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최근 전체 인구의 11% 분량만이 확보돼 있다고 발표해 충격을 준 것이다. 부랴부랴 20일 당정이 협의를 거쳐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을 15∼20%로 늘리고 소진되는 양은 신속하게 추가 구매키로 했지만 세계시장에서 신종 플루 백신에 대한 주문이 폭주하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량도 달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예산으로는 백신을 충분히 비축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4월 말 첫 의심환자 발생 후 4개월 동안 도대체 보건 당국이 한 일이 무엇이냐”, “정부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치 못하면서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손 씻기’만 강조할 것이냐” 등 의료계와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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