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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사 업적 쌓기,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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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김문수 지사 ‘대심도 결투’… 임기내 더 많은 성과 내기 경쟁 불붙어

2006년 6월1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당선 인사차 들른 오세훈 당선자와 악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2006년 6월1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당선 인사차 들른 오세훈 당선자와 악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4월26일 경기 포천시 영북면의 한 한우 농가를 방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4월26일 경기 포천시 영북면의 한 한우 농가를 방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일단 뚫어놓고 본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사회기반시설 사업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다. 초대형 토목사업이 치밀한 사전 준비나 검토가 부족한 상태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 말은 또한 사업 시행의 성과는 정치인이 가져가고 실패에 따른 불편과 손해는 국민이 감수해야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최근 유력한 지자체 단체장 두 사람이 초대형 토목사업 경쟁에 뛰어들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경기도는 지난 4월 경기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145.5㎞ 길이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난 8월5일 149㎞ 길이의 지하도로망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양쪽 모두 지금의 수도권 지하철 노선보다 더 깊은 지하 40~60m 깊이에 길을 내는, 소위 ‘대심도 교통망’ 구상을 발표한 것이다.

서울시 지하도로망 안전문제가 쟁점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를 압도하는 거대 규모의 예산을 주무른다. 게다가 지방자치 이후 당선한 전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권경쟁에 연루된 선례가 있다. 이처럼 자치단체의 규모나 정치 지형상 라이벌 구도를 설정하기 쉬운 배경에서 오 시장과 김 지사가 대심도 교통망이라는 비슷한 성격의 토목사업을 불과 넉 달 간격으로 들고 나왔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2016년 9월까지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양 킨텍스~동탄 신도시, 의정부~군포 금정, 청량리~인천 송도 등 3개 노선을 개통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공사가 끝나면 서울 강남과 일산을 20분대에 오갈 수 있다고 밝혔다. 예상 사업비 13조원 중 60%는 민자로 충당할 생각이다. 이미 10개 건설사로 이뤄진 컨소시엄이 국토부에 사업 제안을 한 상태다. 서울시는 서울 도심을 남·북간 3개축, 동·서간 3개축의 총 6개 노선으로 구성해 서울의 땅밑을 거미줄처럼 잇는 지하도로망을 2020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하도로망을 통해 서울 전역을 30분대에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상교통량의 21%가 지하도로망으로 흡수돼 지상도로의 통행속도도 시속 8.4㎞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예상 사업비 13조원 중 대부분을 민간자본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엄청난 공사비용 상승 딜레마에 빠져
서울시 지하도로 구상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시는 1990년대 초반에도 지하도로 계획을 세운 적이 있지만 기술적인 걸림돌에 부닥쳐 실행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지하도로 구상이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주선 의원 캠프는 서울시 교통난 해소 대책으로 올림픽 대로와 동부간선 도로에 지하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선거 기간에 오세훈 후보 측의 공약에는 지하도로 건설이 들어 있지 않았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2006년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패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오세훈 후보 측은 지하도로 건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석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국장은 8월7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서울시가 2005년 9월부터 지하공간 기본계획 용역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방송에서 그는 “지하공간 기본계획에 따라 지상교통량 절감을 위한 방법이 뭐가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 2008년 6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약 2년에 걸쳐 지하도록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성 경기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기획단 추진단장은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토부에서 여섯 차례 회의를 했다”면서 “지난해 말에 서울시가 지하도로망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그 자리에서 했다. 당시 국토부 입장은 대중교통의 핵심인 철도망을 먼저 구축한 후 지하도로를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광역급행철도망 수도권 교통망 집중화
교통 전문가들은 대개 대심도 교통망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성낙문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실장은 “지하도로 건설 기술은 외국에 비해 발달해 있다. 공사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로부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연구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한 고승영 서울대 교수팀이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다.

경기도가 구상하고 있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가상도. <경기도청>

경기도가 구상하고 있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가상도. <경기도청>

그러나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과 비용 조달 문제,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 발전 및 안전문제 같은 사회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특히 서울시 지하도로망의 경우 장거리 지하도로 개념 자체가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어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지하도로망과 광역급행철도에 들이기로 한 예산은 각기 약 11조원과 13조원이다. 2007년 기준 서울시(약 16조9000억원)와 경기도(약 11조3000억원) 한 해 예산 전체와 맞먹는다. 이처럼 엄청난 사업비를 투입해 만들려고 하는 광역 단위 도시 교통망의 미래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는 서울시나 경기도의 주장과는 달리 잿빛이다.

서울시 지하도로망의 경우 안전문제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지하도로 특성상 차선을 충분히 넓게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교통사고나 화재발생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고인석 국장은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8월7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주행차로 외에 비상차로를 확보하고 적절한 관리조직과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사고를 예방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송상석 녹색교통 교통환경팀장은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의 경우 서울시 지하도로망의 절반밖에 안 되는 깊이였지만 대형사고를 일으켰다”면서 “화재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 보스턴 빅딕의 경우 공사 구간이 서울 지하도로망보다 훨씬 짧은 데도 누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에서 드러났듯이 지하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빠른 속도로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데다 침수나 지진 등 재해에 대한 완벽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서울시는 차량이 지하로 들어가게 되면 지상의 교통혼잡이 줄어들면서 차량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도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상의 환경오염 개선 효과에 대한 기대는 근시안적인 것일 수도 있다. 송 팀장은 “차량이 지하로 내려가면 환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도로망 배치상 환기구가 도심에 들어갈 텐데 어느 지역 주민이 그걸 반기겠느냐”면서 “호주의 경우 지하 터널 환기구 주변 아이들의 천식 발생률이 높았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모두 해결하게 되면 이번에는 공사비용 상승이라는 딜레마가 나타난다. 흔히 지하 깊숙한 곳에 교통망을 구축할 경우 통상 교통망 공사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보상비가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반의 안전시설을 구축하려 한다면 높은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낙문 연구실장은 “지상에 건설하는 도로의 경우 전체의 70~80%가 토지 보상비로 들어간다. 지하로 가면 이런 비용은 분명 크게 절감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대피시설 등 안전시설을 구축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지하도로망 구상도. <서울시청>

서울시 지하도로망 구상도. <서울시청>

도로가 늘어날수록 차량 통행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 많은 차량 수요를 견인해 문제를 원상으로 돌려놓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버스 노선 개편, 교통부담금, 주차상한제, 혼잡통행료 확대 등 승용차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교통정책을 펴왔다. 송 팀장은 “도로 공급 중심에서 승용차 수요 관리로 이동하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지하도로망이 생기면 일시적으로는 혼잡구간이 해소될 수 있겠지만 결국 도심 곳곳의 진입로에서 체증이 발생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광역급행철도망의 경우 교통망의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빚어지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수도권에 깔려 있는 막대한 교통 인프라인 가운데 광역급행철도망이 이러한 집중화 현상을 크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일단 교통 인프라가 깔리면 인근 지역에 택지개발이 진행된다. 택지가 개발되면 또다시 이를 빌미로 교통 인프라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악순환이다”라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광역급행철도를 한다는 건 경기도가 서울의 베드타운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경기도의 자립적 발전 모델을 추구해야 할 경기도지사로서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두 사업 모두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민간자본을 유치해 해결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민자유치 사업이 안고 있던 문제들이 재발할 우려도 있다. 서울시는 지하도로망 건설 이외에도 7개 경전철과 5개 민자도로 건립, 강남 순환도로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국토부도 파이자형 대심도 도로망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경기도의 광역급행철도망까지 겹칠 경우 수요 분산으로 수익이 애초 기대치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게 된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서울시 지하도로망과 경기도 광역급행철도망의 구간 중복 문제나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서울시와 경기도 간 불협화음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다. 최종 사업 승인 권한이 있는 국토부가 두 사업에 대한 검증 용역 결과를 토대로 조율 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뿌리는 사회의 모든 자원이 중앙을 향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는 회오리식 정치 구조에서 정치적 업적을 남기려는 단체장들의 욕망에 연결돼 있다.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오 시장과 김 지사는 모두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다가 보수진영으로 넘어간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성과주의에 집착하고 있다”면서 “남은 임기 내에 완료할 수 없는 장기 프로젝트다.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선거에 사용하지 않겠나”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현재로서는 오 시장과 김 지사가 대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징후가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코드가 같다. 토건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십장 마인드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의 말처럼 정책 경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반드시 천문학적 사업비를 투입해야 하는 토목사업의 형태로 드러나야만 하느냐다. 인접한 두 거대 지자체 단체장들의 ‘지자체 발전’ 프로젝트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외양으로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토목사업을 통한 가시적 업적 쌓기라는 대목에서는 이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광재 사무처장은 “전임 서울시장이 청계천으로 대권을 얻었기 때문에 두 사람 다 토목사업을 자신의 랜드마크 정책으로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하공간 활용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이 없이 서울과 경기도의 미래를 사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넘어갈 때 필요한 리더십과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갈 때 필요한 리더십은 성격이 다르다. 앞으로의 대선은 새로운 종류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토목은 아닐 것이다.” 이 사무처장의 부연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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