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러시아 ‘팩스 한 장’ 으로 무너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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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술에 의존한 정부의 조급증이 빚어낸 해프닝

8월19일 발사예정인 나로호의 모습.

8월19일 발사예정인 나로호의 모습.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 발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지난 2002년 8월 100kg급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우주발사체 개발 및 발사를 위한 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고흥 나로 우주센터 건설비를 포함해 8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투자됐다. 그러나 나로호는 러시아와의 기술 협력 지연과 발사대 시스템 부품 공급 차질, 1단 로켓 연소시험의 기술적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발사 일정이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8월19일로 발사 시기를 정했지만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기상 악화나 기술적 문제가 나타나면 일정이 또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정 지연은 우주개발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한 예로 미국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의 경우도 기상악화와 연료공급 장치 이상 등으로 여섯 차례 발사가 연기되는 일이 발생했다.

‘우주선 공동개발’ 선전은 정부의 기만
나로호 발사 지연으로 가슴 졸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은 이 사업에 참여한 과학기술자들일 것이다. 엄청난 혈세가 투입됐고,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업이므로 발사가 실패했을 때 쏟아질 질책을 의식해 심적 부담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 국가들의 첫 발사성공률은 30%도 안 될 정도로 실패율이 높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이 개발한 H-1로켓도 두 차례나 발사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사실 나로호 발사도 100%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들도 이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설령 발사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사업에 참여한 과학기술자들을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로호 발사가 계속 연기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가 나로호 1단 액체추진 로켓을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한 공동개발 사업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개발 및 제작 과정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1단 액체추진 로켓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의 이용이 가능해 국제적으로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 연구진의 접근을 막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잘 알면서도 정부가 공동개발이라고 선전한 것은 로켓에 관해 잘 모르는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나 다름없다. 1단 액체 추진 로켓은 전적으로 러시아가 주도해 추진하는 사업부문이고, 우리가 수입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말했어야 했다.(과학기술 위성 2호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상단로켓은 한국이 개발) 둘째, 나로호 사업을 통해 발사대 관련 기술의 80%를 국산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러시아가 제공한 A4 용지 2만1631장 분량의 발사대 설계도를 토대로 관련기술의 대부분을 19개월 만에 국산화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발사대 관련 핵심기술이 아니라면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핵심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할 경우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2018년까지 나로호의 뒤를 이을 후속 발사체를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진짜 그렇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실패를 교훈삼아야 핵심기술 개발가능

나로호 발사 연기와 관련,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이 지난 7월17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나로호 모형을 들고 기술적인 발사 연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나로호 발사 연기와 관련,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이 지난 7월17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나로호 모형을 들고 기술적인 발사 연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셋째, 인공위성과 우주발사체 및 발사장을 모두 갖춘 자국에서 위성을 발사한 세계 10번째 국가가 됐다는 상징적인 효과 때문에 정부가 나로호 발사 일정을 너무 성급하게 정하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도 문제다. 우주 관련 자체 국내 연구 기반 없이 러시아의 우주개발 기술에 의존해 ‘우주클럽’에 가입해 보려는 정부 정책의 조급증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차피 우주개발 기술을 익히려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차근차근 따져가면서 발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러시아·유럽·중국·일본·인도 등 주요 강대국들은 국가적 자긍심, 경제적 이익,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우주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주도하는 우주개발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번 나로호 발사 연기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지금부터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 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우주 연구개발 관련기술의 자립도(국산화)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더라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우주 연구개발 관련 기술개발 사업은 워낙 첨단기술이다 보니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 관련 개발사업에 실패하면 문책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성능이 충분히 입증된 핵심기술은 주로 선진국에서 직도입하고, 단기간에 개발이 가능한 기술만 국산화해서 그것을 결합해 연구개발 결과물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처럼 실패도 발전의 한 과정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돼야만 힘들어도 핵심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려는 자세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 연구개발 사업의 지속적인 유지·발전을 위해서는 항공 분야와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항공우주 연구개발 사업 관련 여러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참여해서는 효율적인 기술개발 결과물을 산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국가 전체의 항공우주 연구개발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여기에서 항공우주 관련 연구개발 사업 수요를 창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이번 나로 1호 개발사업 때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무엇을 구체적으로 얻었는지, 앞으로 추진하게 될 나로 2호 개발사업에 1호 개발 사업이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그 결과를 이른 시일 내에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몇몇 정책입안자들이 보여 주기 성과에 집착, 급하게 졸속으로 추진한 사업이라는 국민적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김종하<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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