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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고민 인권의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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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제작 옴니버스 영화 ‘시선 1318’ 개봉

[문화]청소년 고민 인권의 눈으로 보다

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당연히 갖는 권리다. 또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지켜내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권은 ‘거창한 그 무엇’으로만 인식돼왔다. 불법체포, 투옥, 고문과 같은 살벌한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이도 적잖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생긴 상처다. 그러나 인권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장애, 성(性), 외국인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 것이 인권이다.

심각한 이야기 경쾌하게 풀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시선 1318>이 6월 11일 개봉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출범 직후인 2002년 4월부터 매년 한 편의 인권영화를 제작해왔다.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인권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은 모두 7편으로 <여섯 개의 시선> <별별 이야기> <다섯 개의 시선> <세 번째 시선> <별별이야기2-여섯빛깔 무지개> <날아라 펭귄> 등이다. 작품에 따라 장애,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 탈북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에서 갖가지 이유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을 조명하고 있다. 국가인권영화로 제작한 영화들의 영어 부제는 한결같이 <내가 만약 당신이었다면>(If you were me)이다. 차별받는 그들과 한 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올해 개봉되는 작품 <시선 1318>은 제목 그대로 13세부터 18세까지 1318세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방은진·전계수·이현승·윤성호·김태용 감독이 각각 연출한 단편이 옴니버스로 연결돼 하나의 장편을 이루었다. 물론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담고 있다.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 진지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담아낸 게 <시선 1318>의 특징이다.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은 전교 1등만 하는 모범생 박진주(남지현)와 전교 꼴찌만 하는 말썽꾸러기 마진주(정지안)를 통해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출연 학생들의 춤과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는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살아가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답답함을 그리고 있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역도를 하는 소영(권은수)과 엄마에 이끌려 원치 않는 유학을 가게 된 철구(황건희)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지만 그것마저 두렵고 쉽지 않은 청춘의 성장통과 혼돈을 담아내고 있다.

다섯 개의 시선, 별별이야기, 세번째 시선, 여섯 개의 시선, 별별이야기2-여섯 빛깔무지개.(왼쪽 위부터)

다섯 개의 시선, 별별이야기, 세번째 시선, 여섯 개의 시선, 별별이야기2-여섯 빛깔무지개.(왼쪽 위부터)

이현승 감독은 <릴레이>라는 작품을 통해 비혼모 청소년의 이야기를 했다. 같은 반 친구인 희수(박부영)와 규리(손은서) 등이 아침부터 학교에서 007작전을 펴는데 내막을 알고 보니 동급생이 낳은 또 다른 친구의 아기를 교사들의 눈을 피해 양육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교감(문성근) 이하 교사들은 학생이 낳은 아기를 보육시설로 보내야 하거나 해당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학생들은 친구가 아기도 키우면서 학교에서 자신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윤성호 감독의 작품은 청소년들이 작성한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라는 제목의 영화 속에서 “병신” “반사”를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는 등 청소년들의 날것과 같은 용어와 대화법이 기성세대에는 낯설기만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청소년들의 공감은 꽤 높다.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은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다. 아빠와 필리핀인 새엄마, 그리고 아빠와 새엄마 사이에 태어난 동생으로 이루어진 다문화가정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학교 육상선수 차은이(전수영)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차은 역을 맡은 전수영은 전북지역의 실제 육상선수로, 비전문 배우임에도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배우·스태프 선뜻 영화에 참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들이 모두 옴니버스인 것은 제작비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사업예산은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장편의 경우 1년 안에 완성하기 힘든 탓이다. 제작비도 2002년 <여섯 개의 시선>을 만든 첫해에는 감독마다 5000만 원씩밖에 받지 못했다. 후반 작업의 경우 일부 영화진흥위원회의 후원을 받고야 가능했다. 지금은 감독당 7000만 원의 제작비를 주는 대신 후반 작업은 물론 프린트까지 일임하고 있다. 제작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첫해부터 인권영화 제작을 주도해온 국가인권위원회 남규선 시민교육팀장은 “노개런티로 출연한 배우도 많고, 스태프도 적은 실비로 영화제작에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처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뜻을 전해들은 박광수·이현승 감독은 국민의 인권의식을 가장 대중적이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환시시키겠다는 남 팀장의 취지에 공감했다. 임순례, 정재은, 여균동, 박진표, 박광수, 박찬욱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인권위의 첫 옴니버스영화 <여섯 개의 시선> 연출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2003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될 만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일반 상업영화가 아님에도 전국 57개 스크린에서 모두 3만5000명의 관객이 봤다.

남 팀장에 따르면 그동안 제작한 인권위 영화들은 2010년 윤리·국어과목 등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다. 지금도 인권영화 DVD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인권위의 인권영화가 다문화가정,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폭을 넓게 하는 데 훌륭한 콘텐츠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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