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3대 세습’ 성공하면 수령제 국가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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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업적 비판 어려워 후계자의 정책적 자율성은 높지 않을 듯

북한 김정일 위원장 후계 문제가 최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각했다. 사진은 올해 2월 연평도 인근에 있는 해군 해상 전진기지. <김문석 기자>

북한 김정일 위원장 후계 문제가 최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각했다. 사진은 올해 2월 연평도 인근에 있는 해군 해상 전진기지. <김문석 기자>

지난해 여름에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후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해외공관에 통보했다고 우리 정보당국이 밝혔다. 로버트 우드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이 한국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한 고위 정보관리는 북한당국이 새로운 지도자 김정운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지침을 해외공관들에 보냈다고 확인했다. 김정운 후계 지명 정보가 사실이라면, 북한 지도부가 ‘3대 세습’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하고 후계구축을 본격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유고 대비 후계구도 가시화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를 운영하는 북한에서 지도자의 건강과 후계문제는 북한 정권과 체제의 운명과 직결될 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김정운 후계 지명이 사실이라면 최근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 일련의 위기 조성이 북한 내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에 따른 북한 지도부의 초조함이 연이은 위기 조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후계 지명 문제는 ‘한반도 절반의 상속인’을 결정하는 문제다. 총체적인 체제 위기에 봉착한 북한에서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후계구축은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를 지명한 1974년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은 편이었고 김일성이 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고 ‘선군정치’에 따른 군부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 악화 이후 북한의 정책결정 구조에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전면대결선언’을 하는 등 위기 수위를 높이고, 국제사회를 향해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하는 등 초강수를 연거푸 쏟아내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강경노선이 김정운 후계 지명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 아래 면밀히 관찰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이상설을 잠재우기 위해 현지지도를 활발히 하고 있지만 동영상을 통해 본 김 위원장의 건강은 좋은 편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3대 세습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들로 권력세습을 본격화하려는 데는 믿을 사람은 혈육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이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한 급변 사태 가능성에 모아졌다. 북한 지도부의 김정운 후계 지명 가시화는 지도자의 유고를 곧바로 정권과 체제 붕괴로 등치시키려는 외부 세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권력의 급격한 이동과 권력투쟁의 가능성 등을 의식해서 후계 구축을 미뤄왔던 북한 지도부가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김정일 건강이상에 따른 급변 사태론의 재부각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로 편입 모색 가능성
북한 지도부는 김정일 건강이상설 이후 나타나고 있는 체제 불안정과 급변 사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후계를 조기에 가시화하고, 갑작스런 건강 악화나 유고에 대비함으로써 김정일 이후 북한이 큰 혼란 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을 외부 세계에 전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후계가 준비돼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설령 지도자의 유고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정권과 체제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를 운영하는 ‘수령제’ 국가에서 지도자의 건강 변수는 국내외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유고 당시에는 30여 년 동안 준비해온 후계체제가 곧바로 작동하여 ‘유훈통치’를 시행하면서 권력 공백을 막을 수 있었다. 후계 준비가 덜된 김정일 정권의 경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따라 과도적 집단지도, 점진적 권력 이양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후계를 조기에 가시화하고 갑작스런 건강 악화나 유고에 대비함으로써 김정일 이후 북한이 큰 혼란 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을 외부 세계에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이후를 대비한 후계체제 구축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확립한 혁명계승론과 혈통계승론 등 후계자론에 따라 아들들에게 후계수업을 받게 한 후 이중 한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위부터 후계체제를 정비해나가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을 것이다. 만경대 3대 위인(김형직·김일성·김정일),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김정숙·김정일) 등 북한의 혁명 가계론에 따르면 김형직-김일성-김정일-김정일 아들(김정남·김정철·김정운)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데, 3남인 김정운이 후계자로 간택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일성 가계 우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에 3대 세습을 ‘관습헌법’처럼 받아들일 것이다. 3대 세습이 완성되면 북한은 ‘수령제’ 국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3대 세습이 이뤄지면 북한의 수령제는 일본의 천황제나 태국의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계자는 수령으로 군림하면서 당과 군을 영도하고 내각 총리가 국정을 이끄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3대 세습이 이뤄질 경우 후계자의 정책적 자율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후계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업적을 비판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지도자 교체와 함께 전임 지도자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재해석한 후 새로운 정책노선을 제시했다. 전임 지도자가 추진해왔던 혁명과 건설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기비판에 기초한 교정 메커니즘을 발휘하기 어렵다. 다만 3대 세습의 대상인 세 아들 모두 해외 유학 경험이 있어 기존의 자력갱생원칙에 입각한 자립적 민족경제건설노선을 수정하여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적극적인 편입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정책 전환을 위한 전제조건들은 북·미 적대관계 해소, 북·일 국교정상화, 남북 화해 제도화 등을 들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은 지난 20여 년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카드를 내밀고 서방과 대타협을 모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건강 악화 이후 김 위원장이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초강수를 연거푸 쏟아내는 것도 어쩌면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 정비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이 경제 위기 심화, 국제사회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후계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물려줄 경우, 후계체제는 정당성과 효율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후계 선택 기준은 그들이 확립한 유일체제를 가장 잘 유지하고 전임 지도자를 격하시키지 않을 지도자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3남인 김정운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철에 대해 ‘유약하다(girlish)’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야심차고 단호한(take-no-prisoners)’ 성격의 소유자인 김정운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장남이긴 하지만 성혜림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괴짜(flake)’로 위조여권 사건 등으로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남과 김정철이 후계 후보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 어린 김정운(26)으로의 후계 구축 과정에는 많은 난관과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의 후계 지명만으로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사례는 중국의 화궈펑(華國鋒)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일 생전에 후계 구축이 늦어지고 급작스런 유고가 발생할 경우 매제인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국방위원회 집단지도 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방과의 타협 통한 경제 재건 관건
북한 지도부가 3대 세습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부자 승계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된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방과의 대타협을 통한 경제 재건이 긴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건강 악화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조급해진 것도 후계 구축을 위한 환경 정비 차원의 ‘속도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고 후계체제를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핵보유국의 지위를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정권 유지와 체제 수호에 주력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불거지고 후계 문제가 가시화함으로써 한반도 문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전환기로 접어들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 변수가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면서 북·미 핵협상의 진전 여부는 불투명해졌고,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안정적 관리 문제가 중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남북문제에서도 후계 변수에 따라 예상되는 여러 문제에 대한 대처가 남북관계 원상 회복 못지않은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했다. 우리도 이제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맞대응 차원을 넘어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에도 다각적인 대응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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