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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후폭풍, 이명박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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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촛불’가능성 커져 ‘6월 정국’ 최대 고비로

2008년 5월 교육당국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중·고생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영민 기자>

2008년 5월 교육당국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중·고생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영민 기자>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 이명박 대통령이 영정에 헌화하려고 일어서자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시오. 여기가…”라고 말한 백 의원은 경호원들에 제지당하며 끌려나갔다. 다른 조문객들도 “돌아가라” “물러가라”고 고함을 질러 영결식장 분위기는 일순 험악해졌다. 이후 백 의원은 기자들에게 “정치보복으로 살해됐다”고 절규했다.

이날 영결식으로 ‘조문 정국’은 외견상 마무리됐다. 하지만 ‘추도 정국’은 끝나지 않았다. 조문 기간은 단지 정쟁 휴전기였을 뿐이다. 7일간의 조문 기간 동안 오히려 긴장감은 더욱 확산돼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산 이명박과 죽은 노무현의 대결’인 셈이다. 이날 영결식장의 해프닝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후폭풍이 거셀 것임을 예고한 한 사례에 불과한 것 같다. 이미 야권 일각에서는 공개적으로 ‘정치적 타살’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향후 정국의 흐름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수습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면서 “‘제2의 촛불‘이 켜진다면 그 상황은 더욱 암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기념행사 예정 여권 긴장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거센 ‘촛불의 화력’을 경험했다. 국민의 손에서 피어난 촛불은 대선과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기세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뜨렸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무력한 거대 집권여당’으로 전락한 셈이다.

촛불에 놀란 이명박 정부는 서거 충격파를 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자신과 한나라당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방어적 자세는 견고해졌고, 그것은 때론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민적 추모 열기를 방해한 것이 좋은 사례다. 추모제를 위한 서울광장 개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의위원회가 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사도 거부했다.

노제 때 쓸 만장 소재는 대나무 대신 PVC로 교체하도록 강권했다. 이에 대해 극도의 과민반응 아니냐는 지적이 대세다. 여권의 한 인사는 “국민이 울고 싶을 때 울도록 해줘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정부의) 절박한 사정을 이해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제2의 촛불집회’을 재연시킬 개연성이 있는 이벤트성 집회가 줄줄이 예고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여느 해나 6월의 거리는 뜨거웠다. 6·10민주항쟁과 6·15남북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념일이 이 달에 몰려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러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6월 2일에는 시민단체연대회의의 시국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특히 6월 10일에는 진보계열 시민단체들의 ‘100만 촛불계승대회’가 개최된다. 6·10민주항쟁 22돌을 기념하는 행사다. 민주노총도 6월 13일 서울 도심집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6월 말 하투를 위한 전초전이다. 반(反) 이명박 진영에서는 일련의 집회를 통해 반 이명박 진영을 결집하고 촛불집회의 열기를 재연하겠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기념행사가 여권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권은 반 이명박 진영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반 정부 투쟁’의 기폭제로 삼으려 한다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게 될까봐 정말 걱정”이라고까지 했다. 심규철 제2사무부총장도 “왜 우리가 이렇게 패배주의적 분위기에 빠져서 추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버스가 분향소 주변을 막아주니까 오히려 아늑해하는 시민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강경 대응들이 반 MB정서의 확산을 가져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5월 27일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서 오차범위는 ±3.7%포인트)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무려 9.9%가 추락,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최저 수준인 21.5%를 기록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노 전 대통령 서거 문제는 민생과 직접 관련 있던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다르다.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받다가 자살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겠느냐”던 여권의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일련의 6월 집회를 통해 ‘제2차 촛불‘이 점화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주도권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국정 성과가 가시화되는 집권 중반기에 정국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조기 레임덕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중대한 정치적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2차 북핵 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감안하면 6월 정국의 안정 여부는 이명박 정권의 향후 국정 운영을 가늠하는 방향타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안보정국’으로 국면 전환 시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서거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면 전환 수단으로 북한 핵실험 사태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은 북한의 핵실험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결정하고 북한의 군사활동을 추적하는 정보감시태세를 한 단계 강화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월 27일 북한의 핵도발을 규탄하는 의원 결의안을 채택했다. 6월에 잇따라 열리는 한·아시아 특별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여권의 일반적 얘기다. 북핵 실험에 따른 한반도 위기 상황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 조치들을 잇따라 내놓는 것은 국내 정치적인 국면 전환을 위한 의도라는 얘기다. 이것이 제대로 먹힐지는 알 수 없다. 국가 차원의 추모 열기를 감안하면 역풍이 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등하는 검찰 책임론과 맞물려 이 대통령이 개각 카드를 들고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청와대는 “지금은 (개각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쇄신위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인적 쇄신 얘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은 또 무엇보다 MB개혁 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관계법안과 비정규직법안, 그리고 한·미 FTA 관련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청와대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MB개혁입법 논란 증폭 여지 커
그러나 지난 2월 국회 당시 어렵사리 ‘6월 합의 처리’에 약속했던 언론관계법 등 MB개혁입법에 대한 논란은 증폭될 여지가 크다.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을 뿐 아니라 ‘거리 정치’라는 변수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소속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5월 27일 원내대표 간담회에서 상임위 현안에 대한 보고가 있었지만,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강경 일변도의 대응이 자칫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여론의 역풍을 부를 수 있는 만큼 대여 공세의 수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야가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데 주력하면서 언론관련법 등의 처리를 임시국회 회기 후반으로 최대한 미루면서 추도 정국 속 ‘민심의 눈치’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정치권 인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열기가 곧 민심”이라면서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추모집회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1·2차 톈안먼 사태의 원인이 추도집회였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1차 톈안먼 사태는 1976년 4월 저우언라이 총리의 사망 뒤 추모집회, 제2차 톈안먼 사태는 호야오방 총서기의 추도집회에서 비롯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야권의 공세는 갈수록 강화되고 구체화되고 있다. 이미 민주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정치적 타살”로 규정한 바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5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누가 책임이 있는지, 누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는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는 ‘표적 사정’ 의혹을 사고 있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 임채진 검찰총장의 퇴진과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사과 요구로 구체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여세를 몰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 등 여권 관련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과 ‘박연차 리스트’ 사건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여부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요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검이나 국정조사 요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고비가 될 ‘6월 정국’은 이 대통령의 국정 기조 변화 여부와 노 전 대통령 추도 분위기,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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