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걸려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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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경향 편집실에는 전화가 자주 옵니다. 독자 전화로, 기사에 대해 항의도 하고 격려도 하고, 때로는 제보도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보나 격려보다 항의가 더 많습니다. 거친 말로 “어떻게 그런 ‘좌빨 기사’를 게재할 수 있느냐”고 따지거나 기자들이 응대할 겨를도 없이 일방적으로 욕설을 퍼붓고 난 뒤 끊는 전화도 있습니다. 물론 “힘내라”는 전화도 적지 않습니다.

독자 전화는 대체로 깁니다. 할 말이 많아서일 겁니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언론사에 전화했는데, 미처 할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심정이 전해져 올 때도 있습니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대화가 경제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심정일 때가 많습니다. 마감 때 걸려오는 전화일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저도 얼마 전 한 독자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항의도 격려도 제보도 아니었습니다. 전화한 주인공은 서울의 한 재래시장 입구에서 ‘불법 좌판’을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Weekly 경향 정기독자는 아니었습니다.

장사도 안 돼 시장 상인들이 돌려보던 잡지를 빌려 소일거리 삼아 읽다가 전화를 했다며 갈수록 팍팍해지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20분 가까이 전했습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적대감과 5년째 병원에 입원 중인 남편, 바깥으로만 나도는 고교생 자녀 문제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어려운 삶을 개선시키기보다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에만 몰두하는 듯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도 있었습니다. 제가 자신의 얼굴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솔직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이런 얘기를 남한테 한 적이 별로 없다”는 그는 “‘기자님’에게 이런 하소연을 해도 되는지 망설였다”며 “털어놓고 났더니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울림이 계속되는 전화였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종합시사주간지로서 Weekly 경향이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도(正道)인지도 함께 생각해봤습니다. 독자들의 전화는 이렇게 늘 교훈을 남겨줍니다.

짐작컨대 저희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독자들은 한국인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그나마 저희에게 전화조차 걸어오기 힘든 이들을 취재했습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머나먼 타국에 와서 신산스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다시금 새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래시장 ‘불법 좌판’ 아주머니의 전화에서 얻은 착안에 따른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서 저희에게 항의전화도 하고 격려전화도 하고 제보도 하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

<조호연 편집장 ch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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