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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강경 태도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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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계약 조건 무효 선언 배경… “체제 안전 위해 자본주의에 노출 꺼려”

북한이 지난 3월 20일 개성공단 육로통행을 전면 차단함에 따라 이날 물자를 싣고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차량들이 되돌아 빠져나오고 있다. <박재찬 기자>

북한이 지난 3월 20일 개성공단 육로통행을 전면 차단함에 따라 이날 물자를 싣고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차량들이 되돌아 빠져나오고 있다. <박재찬 기자>

개성공단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낳은 ‘옥동자’라고 불린다. 분단과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전 세계적 냉전 구도가 소멸한 후까지도 한반도를 얼어붙게 만들던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사업이기 때문이다. 탄생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진통을 겪으면서도 남북한 화해 협력의 상징이자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 구실을 했던 그 개성공단이 시범단지 준공 후 5년 만에 사생아로 내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위기는 지난해부터 배태했다. 지난해 3월 27일 북한은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남쪽 인력 11명을 전격적으로 추방했다. 같은날 “북핵 타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같은해 11월 30일에는 개성공단 남쪽 상주 인력을 880명으로 축소한다고 통보했다.

개성공단 비중 북한서도 가볍지 않아
지난 몇 달 사이 북한은 남한 정부를 더욱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3월 9~20일 한·미 합동군사연습 키리졸브 기간 중 남쪽 인력의 물자 통행을 차단했다. 3월 30일에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를 ‘북한 체제 비난 및 여성 탈북 책동’ 혐의로 억류하고 지금까지 놓아주지 않고 있다. 4월 21일 남북 당국자 간 개성 접촉에서는 개성공단 노임과 토지사용료 재협상을 요구했고, 급기야 5월 15일에는 계약 조건 무효를 선언했다. 사실상 폐쇄 가능성까지 시사한 발언이다.

북한의 강경 입장은 예사롭지 않다. 위기의 수압은 어느 정도일까.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이런 상태까지 간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 2006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때도 위기 국면이었지만 대화의 끈은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처럼 위기 국면이 지속된 경우는 없었다”고 우려했다.

북측 군통신 차단 이후 개성공단 출입이 중단되자 3월 9일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입주 기업 관계자들이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북측 군통신 차단 이후 개성공단 출입이 중단되자 3월 9일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입주 기업 관계자들이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관심은 북한이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다. 북한 권력 핵심부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추측은 쉽지만 확증은 어렵다. 여러 갈래에서 제기되는 추측을 짜맞춰 하나의 명쾌한 결론에 이르는 데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다. 개성공단 문제는 보는 각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대응 방식도 달라진다.

개성공단이 외형상 북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업 자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단호한 결단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토대로 탄생했다. 김 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개성공단이 이 정도로 자리잡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공업특구로서 개성공단이 갖추고 있는 장점은 뒤집어놓으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민감한 딜레마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성은 지금과 같은 복잡한 통행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서울에서 차량으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다. 남북경협의 관점에서는 물류나 통행 면에서 이상적인 입지지만, 안보 차원에서는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군사적 요충지를 내준 셈이 된다. 북한은 2000년 8월 개성공단 약 6600만㎡(2000만 평)을 개발하기로 남측과 합의한 후 2년 동안 개성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1개 사단을 후방으로 이동했다. 북한은 또 북한 노동자가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노출되면서 파생할 수 있는 정치적 부담도 감수했다. 어느 쪽이든 북한 권력 구조상 최고권력자의 결단이 아니라면 실행하기 힘든 조치들이다.

체제 안전은 후계구도 확립과 관련
북한은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수하는 대신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 조치와 허약한 산업 기반 탓에 별다른 외화 획득 수단이 없는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얻는 수익은 연간 약 3400만 달러에 달한다. 재정 차원의 손실도 크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받을 타격과 일자리를 잃은 데 대한 불만이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될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4월 현재 개성공단에서는 4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104개 입주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2012년 강성대국론을 표방하면서 ‘경제와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숫자다.

이 같은 손실 부담을 감수하고 북한이 ‘계약 무효’를 선언한 배경으로,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체제 안정”이라고 전제하면서 “개성공단에서 들어오는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4만 명 가까운 노동자가 자본주의 사상에 노출되는 게 체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보는 측면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유력한 외화 확보 수단이 된다는 데 대해서도 “그 정도 수입은 미사일 판매로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은 체제 안정과 남한과 경제협력에 두는 우선순위가 우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관광 중단이 선언된 지난해 11월 24일 경기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이 정적에 휩싸여 있다. <김창길 기자>

북한의 개성공단 관광 중단이 선언된 지난해 11월 24일 경기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이 정적에 휩싸여 있다. <김창길 기자>

북한 당국은 남북경협을 통한 장기적 교류 기반 구축보다는 내부 단속을 통한 체제 안정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 권력 구도에서 기존 대남 교섭 라인의 후퇴와 군부의 역할 강화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월 북한의 대남업무를 총괄했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지난해 3월 실각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최 전 부부장은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개성에서 영접한 인물이다.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남북 문제를 담당했던 권호웅 내각 참사도 실각한 것으로 알려졌고, 남북경협을 담당해온 민족경제협력위원회의 정운업 전 위원장은 지난해 초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김정일 3기 체제 출범을 알린 지난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 구성원이 기존 9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나면서 ‘2인자’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주상성 인민보안상,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등 5명이 새로 국방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양무진 교수는 “국방위원회가 대남 부분까지도 총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개성공단총국은 국방위의 위임을 받았을 뿐”이라면서 “북측이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국방위가 하나의 위기 국면 관리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체제 안정에 집중하는 것은 후계 구도 확립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새로운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중심으로 후계 체제를 강화했다.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인 리재강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여덟 차례나 김정일을 수행했다. 최익규 전 내각 문화상이 공석이었던 선전선동부장에 임명되고, 김경옥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다. 모두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의 말이다. 정 실장은 “그러나 후계 구도는 개성공단 문제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체제 안정과 관련해 군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개성공단 자체의 원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지속적으로 악화한 남북관계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이 체제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는 있다”면서도 “군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남한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부의 입장이 최고지도자의 입장과 일치하는 부분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문제는 6·15공동선언에 대한 남측 입장”이라면서 “북한이 개성공단에 특혜를 준 것은 6·15선언에 입각한 것이다. 남측이 6·15선언을 부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특혜도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 북측 논리다”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대한 쌀·비료 등 인도적 지원이 중단된 상태에서 6·15선언마저 부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계약 조건을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남한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폐쇄하면 명분도 실리도 잃는다”
6·15공동선언에 대한 남한 정부의 태도가 북한에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성공단이 6·15공동선언의 산물이라는 점과 깊게 관련돼 있다. 정성장 실장은 “6·15선언은 북한이 이념을 버리고 실리를 택하겠다는 선언”이라면서 “6·15공동선언은 김정일이 직접 서명한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김정일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위가 훼손됐다고 판단한 이상 군부의 발언이 크게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단계까지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폐쇄한다면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다.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향후 북한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도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봤다. 양무진 교수는 “폐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면서 “북한에서 경제는 정치의 종속 변수다. 남한 정부의 정책 전환을 압박하기 위해 적신호를 보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폐쇄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북한이 계약 조건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수준을 요구하느냐, 우리 기업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유 교수는 “기업 사정에 따라 선별적으로 철수하면서 규모를 줄인 상태에서라도 이어가는 방법도 있고 북한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남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남측이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인들은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개성공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남북한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본다”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북쪽과 대화가 차단돼 있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남북 문제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길은 어렵더라도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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