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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신뢰 없는 ‘개성공단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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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에 등불’ 운명, 북핵문제 진전 여부가 최대 변수

북한 요구로 개성관광과 경의선 운행이 중단된 지난해 11월 28일 개성공단의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북한 요구로 개성관광과 경의선 운행이 중단된 지난해 11월 28일 개성공단의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개성공단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흔들리고 있다.
2006년 북한의 핵 실험에 따른 안팎의 거센 광풍도 견뎌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른 최근의 악화 사태는 개성공단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 5월 15일 통지문을 통해 개성공단에 적용해온 관련 법규와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하고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공단 폐쇄의 수순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남측의 정치권 등 보수 진영에서도 ‘개성공단 인력철수’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그럴 계획은 없고, 그게 개성공단 문제를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으나, 입주 기업들의 생산 주문량이 급감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낙관보다는 비관 쪽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은 지금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갈 뾰족한 방책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듯하고, 우리 정치의 보수화도 깊어지면서 서로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입주 기업들은 절박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남북 당국은 해법을 찾지 못할뿐 아니라, 제대로 된 협상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의 탄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측 근로자 합숙소 건설 문제와 밀접
사실 오늘날 개성공단 위기는 북측 근로자들을 위한 합숙소 건설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과 후속회담 등에서 남한 당국이 조기에 지어주기로 약속한 합숙소 건설이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벽에 부닥치면서 북한 당국은 남쪽 정부의 지속적인 개성공단 개발 의지에 강한 의심을 품어왔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합숙소 건설은 적지 않은 재원이 투입되느니만큼 남북 당국 간 대화가 먼저 이뤄지고, 북한 측의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해결이 진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개성공단사업은 점차 수렁에 빠져들었다. 입주 기업들은 지금이라도 합숙소 건설 문제만이라도 진전되면 개성공단 사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경색 국면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합숙소 문제는 지지부진하고 있는데도, 입주 기업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경쟁력의 핵심인 북측 근로자의 적기 조달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실무자들은 이 상태로는 남측 기업이 원하는 인력 공급을 맞출 수 없다며 남한 당국의 전향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틈만 나면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임원들과 입주 기업들에 언급해왔다.

현재 4만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개성공단에 근무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의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많게는 1만 명 이상의 북측 근로자가 모자란 상태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입주한 기업들은 생산라인을 다 설치해놓고도 근로자를 확보하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북측이 3월 9일 남북 간 군통신선을 차단해 개성공단 출입이 중단됨에 따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가 닫혀 있다. <김문석 기자>

북측이 3월 9일 남북 간 군통신선을 차단해 개성공단 출입이 중단됨에 따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가 닫혀 있다. <김문석 기자>

현재 추진 중인 개성공단 1단계 가동에 필요한 노동력은 모두 10만여 명으로, 이중 5만 명은 개성시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그래서 이전 노무현 정부는 개성공단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1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합숙소를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해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 합숙소는 북한 당국이 짓는 게 바람직하나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직접 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국 이는 남한 당국이 공적 기금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남북한 당국 간 대화를 선행하지 않고서는 추진할 수 없다. 지금도 북한은 나름대로 근로자를 꾸준히 제공해주고 있으나 근로자 조달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더구나 우리 기업들에 필요한 20~30대 여성 인력이 고갈되면서 고령 인력이 대체 투입되고 있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전면적 재설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북한은 두 차례 통지문을 통해 비록 표면적으로는 임금 인상 문제 등을 협의하자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합숙소 건설 등 더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이 통보한 현안 가운데 근로자 임금·토지 사용료 문제는 기본적으로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토지임대차 계약 문제는 개발업자(토지공사·현대아산)과 협의할 사항이지 우리 당국과 협상할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도 통일부 당국자들을 개성공단에 불러들인 것은 이런 북한의 의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입주기업 대책 없는 철수는 곧 도산
이제 공은 우리 측에 넘어온 듯하다.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의 자진 철수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상당수 중소기업들에 대책 없는 철수는 곧 도산을 의미한다. 실제 많은 기업은 당장 다른 생산할 곳이 없다. 5000여 개의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크게 늘어난다. 다른 외국의 투자처와 달리 남측에서 원부자재, 소모품 그리고 식자재까지 개성공단에 가져간다. 개성공단은 북측 근로자에게 전달되는 인건비만 빼고 물류를 포함한 모든 부가가치가 남한에서 발생한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상당수 중소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털어 투자한 이들이다. 또 이들에게 기업은 평생을 몸바쳐 일궈온 것으로 공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종업원은 남쪽으로 돌려보내더라도 기업주 본인은 현지를 떠나지 않고 개성공단이 정상화될 때까지 공장을 목숨으로 사수하겠다는 입주 기업인이 적지 않다.

북한에도 공단폐쇄는 정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폐쇄조치는 곧 전 세계에 이제 문닫고 혼자 살겠다는 쇄국정책을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추락하면서 외자 유치가 거의 중단되고, 운이 없는 경우 정권에 돌이킬 수 없는 자살골로 작용할 수 있다. 당장 개성공단에 보낸 근로자 4만 명과 딸린 식구들에 대한 생계대책를 세워줘야 한다. 민심이 흉흉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단 페쇄로 연간 18억 달러에 이르는 남북교역 규모도 당장 크게 줄어들 게 뻔하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남북관계의 정치적 안정 없이 개성공단 사업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남북대화 단절과 서로에 대한 낮은 신뢰 수준은 가장 기본적인 의사 소통과 이를 통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향후 개성공단 사업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의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아가 더 궁극적으로 최대 현안이자 최상위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여부가 개성공단 사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당장 핵문제의 진전을 통한 북·미관계의 개선 없이는 개성공단 생산 제품의 미국 시장 개척과 관련된 원산지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 또 기술집약적 공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략물자 반출 등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경제통합을 향한 험난하고 긴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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