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월급 떼어먹는 사장님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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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의 설움, 약점 때문에 더 열악한 근로 조건도 항의 못해

정부 단속을 피해 피신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 위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정부 단속을 피해 피신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 위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네팔에서 1999년 한국에 온 구릉씨(40)는 2003년 이후 불법체류자가 됐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단속이 강화됐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구릉씨는 “3년이 지나면 외국인 노동자는 자동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란 불법체류자를 말한다.

구릉씨가 한국에 와서 처음 일한 곳은 경기 안산이다. 이곳에서 6년 동안 생활했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거처 역시 안산에 마련했지만 지금은 일자리 때문에 잠시 떠나 살고 있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가끔 원곡동을 찾는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구릉씨는 “안산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곳에 가면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구릉씨가 좋아하는 고국 음식은 ‘달 머커니’(녹두, 크림, 향신료를 넣은 커리)다. 녹두가 들어간 네팔식 밥 요리로 원곡동에서는 8000~9000원에 즐길 수 있다. 네팔에서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구릉씨 설명이다. 네팔에서 온 친구들과 원곡동에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아플 때 의료비 몇 배나 더 들어
원곡동이 구릉씨에게 편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의 손길이 일요일의 원곡동에는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일의 원곡동은 삼한시대 때 신성지역인 ‘소도’와 같다. 지난해 단속이 강화되면서 한때 손길이 원곡동까지 뻗쳤다. 일요일 종교활동을 위해 찾아온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단체에 상담하러 온 노동자가 잡혀 갔다. 외국인노동자지원단체 등에서 관계부처에 강력히 항의했다. 수도권 지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말이면 몰려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지역 상인들도 항의했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영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결국 법무부에서는 일요일 단속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불법체류자로서 구릉씨가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마음대로 밖에 왔다갔다 할 수 없다. 건강보험 카드가 없기 때문에 아플 때는 몇 배의 비용이 더 든다. 일반인들이 3000~4000원 내면 되는 치료비가 2만~3만 원에 이른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직장에서다.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는 공장은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이다. 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 가지 않는다. 혹 사업주를 잘못 만나 월급이 떼이더라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잘못 하면 불법체류자로 신고돼 귀국해야 할 운명에 놓인다.

구릉씨는 “주위 친구들이 회사에 잘못 보여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었다”며 “어떤 친구들은 단속에 잡혀 들어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구릉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했지만 숙련된 노동자에 속한다. 구릉씨는 “우리는 기술도 있고 한국 말도 할 수 있지만 새로운 노동자들은 말도 못하고 일도 못한다”며 3년이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이주노동자는 3년 이후 본국으로 귀국했다가 다시 올 수 있으며 이때는 2년밖에 머무르지 못한다. 구릉씨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내가 일하는 공장에 일하러 오지만 작업장에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잘해야 3일 정도 일하고 떠난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릉씨는 “한국 정부에서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돈을 벌어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문제에 대해 구릉씨는 “정부는 단속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불법체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한족 출신의 류화씨(20대 초반)는 더욱 딱한 경우다. 조선족 불법체류자는 규제 완화로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족 출신이 상용 비자나 관광 비자로 입국해 불법체류자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류화씨는 불법체류자로 안산 원곡동에 살았다. 류화씨는 무릎을 다쳐 2000만 원이 드는 수술을 해야 했다. 남편은 일을 하러 가다가 단속에 걸려 강제로 출국당했다. 류화씨의 말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한국으로 오기 위해 빚을 지는 바람에 중국으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류화씨는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또 돈도 벌어야 한다. 더군다나 류화씨는 불법체류자다. 언제라도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남편처럼 강제로 출국될 운명에 놓인다.

종교·노동단체와 단속 놓고 마찰
안산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친구가 있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는 고향 같은 장소지만, 이곳에서도 단속의 눈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불법체류자가 많다. 이곳을 관할하고 있는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안산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3만여 명”이라면서 “이들은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라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불법체류자는 대략 1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원곡동 지역 단속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평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기 때문에 단속이 큰 의미가 없고, 어쩌다 토요일에 단속하기도 하지만 일요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종교단체와 노동단체에서 항의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형성돼 있어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특별한 범법 행위 제보가 들어온다든지 아니면 새벽 인력시장을 단속하는 것 외에는 안산에서 단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달에 서너 번 단속하는데 한 번에 10~20명 단속에 걸린다는 것이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 거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산 원곡동 ‘국경없는 거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이곳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단속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의 집’ 이정혁 소장은 “정권이 바뀐 후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면서 “각 출입국관리소마다 단속 인원이 할당되면서 무리한 단속이 펼쳐졌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법무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후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원곡동에서는 외국인이 많다는 소문 때문에 청주·원주에서도 단속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원주 지역 같은 경우 가령 외국인 노동자의 범법 사실을 제보받아 안산까지 단속을 나올 수는 있어도 일반 단속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멀리서 단속하러 나왔다고 하면 아마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합동단속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지난해 연말에 이뤄졌을 뿐 올해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일요일 단속에 대해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없었던 일요일 단속이 원곡동에서 이뤄진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정혁 소장은 “종교활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잡아갈 만큼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경 제위기로 안산 지역의 경기도 좋지 못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반월·시화공단도 문을 닫는 공장이 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도 있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심리적 압박을 강하게 받는다고 한다.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 없다”
불법체류자는 신분의 불안정으로 범죄의 대상이 된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경우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당해도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약점을 잡아 갈취하는 외국인 범죄 조직도 생겼다. 불법체류자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인 불법체류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안산이주민센터 류성환 사무처장은 “이들은 억울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공공기관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면서 “법률적으로 일단 공무원들은 불법체류자를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이들은 일반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욱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더욱 적은 임금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류성환 사무처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은 작업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으로 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일하기 꺼리는 곳”이라면서 “대부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숙련공이지만 저임금으로 일하는 상황에서 단속으로 잡혀가면 사업주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곳에 한국인 노동자들은 작업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일하려 들지 않는다. 류 사무처장은 “한국인 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가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한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3년이 지나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장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더욱 부담스럽다. 공장에서는 숙련공이 필요하지만, 법대로라면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할 때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공장에서는 또 다른 비숙련 노동자를 써야 한다.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류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하지 않았다”면서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계속 단기적으로 순환시킬 것이 아니라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조건부로 영주를 허용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아무 문제 없이 일해온 외국인 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기 위해 3년 후에 귀국하게 하는 정책을 쓴다는 것이 류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정부의 대책은 불법체류자가 자진해서 나가도록 하든지 아니면 단속으로 잡아들여 강제 퇴거하는 것이 유일한 방식이다.

지난 4월 대전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중국 여성 노동자를 강압적으로 단속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무리한 단속이 문제가 된 것이다. 류 사무처장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를 개인적으로 무마해 본국으로 내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식의 해결 방식으로는 불법체류자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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