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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의 사유지 강제수용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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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사업으로 인정받으면서 가능…
건설 ‘장려’하는 관련 법률 애매모호

경기 지역 한 골프장. 골프장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영리시설로 규정하고, ‘국토계획법’에서는 공익시설로 규정해 정체성이 모호하다. <경향신문>

경기 지역 한 골프장. 골프장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영리시설로 규정하고, ‘국토계획법’에서는 공익시설로 규정해 정체성이 모호하다. <경향신문>

2008년 12월 31일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은 311곳이다. 건설 중인 골프장이 99곳, 착공 준비를 하는 곳도 27곳이나 된다. 모두 합하면 437곳의 골프장이 전국에 들어섰거나 들어선다. 139곳의 골프장이 있는 경기도가 전국 지자체 중 ‘단연’ 1등을 차지하고, 그뒤를 경북·강원·제주도가 차지했다. “부킹이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골프인들의 불만과 달리 골프장 운영주들은 “이제 그만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쪽에서는 골프장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골프장이 포화 상태라고 아우성인 셈이다.

규제완화 정책과 감세로 건설 촉진
‘골프장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은 것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다. 1987년 전까지만 해도 골프장은 ‘사치성 시설’로 규정됐다. 하지만 1988년 ‘골프의 대중화’를 선언한 노태우 정부는 1989년 골프장을 ‘관광업’에서 ‘체육시설’로 인정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1989년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시법)을 통해 골프장을 사치성 시설이 아닌 ‘체육시설’로 공식 인정한 것. 일반 체육 시설로 인정받은 후 사치성 재산 적용 비율이 일반 재산 비율로 경감됐고, 특별소비세 등 감면 혜택도 받게 됐다.

골프장에 관한 현행 법적 제도의 문제점을 연구하고 있는 최재홍 변호사는 “체시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골프를 과소비로 여겨 세법상 많은 제재를 받았는데, 체시법을 통해 제재가 풀리면서 골프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많은 환경단체가 체시법 제정을 반대하는 상경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골프금지령을 내리면서 골프 확산을 막았지만, 골프장 건설 주무부서에서는 대중화 노력(?)을 계속했다. 감세를 위한 법률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골프장의 허가권을 지자체로 이관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골프장을 대폭 확산시키는 ‘골프장 진흥 정책’을 발표했다. 해안구릉지, 한계농지, 서해안 간척지와 매립지 등을 골프장 부지로 쓸 수 있게 했고, 대중골프장 건설을 위해서 체육진흥기금을 투자·지원하기도 했다.

[창간특집]골프장의 사유지 강제수용 타당한가

특히 이명박 정부는 감세와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골프장 건설지지자들을 만족스럽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골프장 부지 내 농지전용면적이 1만㎡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을 폐지한 것. 농지의 용도 변경을 무제한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또 수질기준 1a(최고 등급) 하천에서 상류 방향 유하거리(물 흐르는 거리. 하천의 곡선 모양을 따라 거리를 잰다) 20㎞ 이내의 지역에 대해 골프장 및 숙박시설 설치를 금지하는 규정을 폐지했고, 경사도 기준도 완화했다. 즉 물 맑고 경치가 좋은 곳에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게 한 것이다.

규제 완화와 함께 감세정책도 진행 중이다. 2008년 9월 정부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따른 세금 완화 정책을 통해 수도권 이외 지역의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취득세와 재산세를 인하했다. 그리고 골프장 이용객에게 받았던 개별소비세와 체육진흥기금도 전액 감면했다. 그만큼 지자체가 골프장에서 받아야 할 세금도 줄어들게 됐다. 강원도 자치행정국 세무회계과의 세정담당자는 “골프장을 처음 등록할 때 취득세와 등록세를 받는데 보통 70억 원을 받았지만, 세금 감면 때문에 14억~20억 원을 받고 있다”면서 “재산세도 4%에서 2%로 줄어들어 3억 원 정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금이 줄어들면 골프장 건설로 지자체 재정 확보가 된다는 말이 틀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세금도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것이니까, 2010년이 지나면 원상복귀되는 것 아니냐”면서 “세수는 줄어들었지만, 골프장 이용객들을 통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골프장 영리시설인가, 공공시설인가
지자체의 바람대로 골프장 건설이 지자체 재정 확보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 지난해 대전충남녹색연합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충남에서 골프장을 통해 거둬들인 지방세가 얼마나 빈약한지 분석·조사해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기초 지자체가 골프장을 통해 거둬들인 지방세는 0.4~0.6%에 지나지 않았다. 골프장이 많이 건설돼도 지자체의 세수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이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생태도시국 양흥모 국장은 “이 자료를 분석하기 전에는 기초지자체에서 18홀 골프장에서 7억~8억 원을 걷는다고 했지만, 실제 5억 원 정도를 걷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그리고 골프장이 아니어도 내는 종합토지세를 제외하면 실제 2억~3억 원에 그치는데, 골프장이 지자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청라-송도-영종 지구도. 이런 개발특별지구에 골프장을 건설하면 수많은 지원과 특별한 혜택을 받는다. <경향신문>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청라-송도-영종 지구도. 이런 개발특별지구에 골프장을 건설하면 수많은 지원과 특별한 혜택을 받는다. <경향신문>

국회예산정책처가 2008년 3월 내놓은 ‘골프장 건설로 인한 지자체 재정 확보 및 지역 경제 발전 효과’ 보고서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상공회의소는 골프장 1개로 유발되는 생산 효과가 1086억원, 소비 유발 효과가 199억6000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일반적으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고, 세수 증대 효과와 고용 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효과를 과대 추정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골프장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는 법이 또 하나 있다. 2002년 2월 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 2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반시설’ 항목이 들어가 있는데, 수도·전기·공원·녹지·도로·공항 등의 교통시설과 공간시설과 유통업무설비 등을 기반시설 즉 공공시설로 지정하고 있다. 이곳에 체육시설이 포함돼 있는데, 지자체에서 골프장 건설 인·허가를 내줄 때 체육시설로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골프장을 영리시설로 생각하지만, 공공시설로 인정받고 있는 것.

이런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화관광부 체육진흥과의 담당자는 “지자체에서 골프장을 주민들의 생활체육시설로 운영하면 공공시설로 인정받는 것이다”면서 “골프장이 공공시설인지, 영리시설인지는 지자체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고 답변했다. 그럼 지자체는 어떨까. 안성시의 골프장 허가를 맡고 있는 도시과 담당자는 “골프장 승인은 국토계획법으로 처리하는데, 골프장을 도시계획 시설로 규정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지 80% 확보하면 나머지 수용 가능

5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골프장 건설을 위해 다양한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 <경향신문>

5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골프장 건설을 위해 다양한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 <경향신문>

골프장이 공익시설로 인정받으면서 불거지는 문제는 토지의 강제수용이다. 국토계획법상 골프장을 건설하려면 ‘도시관리 계획 변경 결정 처분’을 받아야 한다. 개인사업자가 이 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골프장 부지의 80% 소유 주민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이후 사업시행자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50%의 동의만 얻으면 된다. 최초 80% 부지를 확보하면 나머지 20%의 토지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용할 수 있다. 최재홍 변호사는 “국토계획법상으로 골프장을 공익사업으로 인정해주면서 이런 강제 수용의 문제가 생겼다”면서 “골프장 관련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법률가들도 골프장 건설 때문에 개인의 사유재산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골프장의 정체성을 더욱 혼란케 하는 것은 지역 발전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만든 다양한 개발특별법이다. ▲택지개발지구(택지개발촉진법) ▲관광단지(관광진흥법) ▲지역특화 지구(지역특화발전특구에대한규제특례법) ▲개발촉진지구(지역균형발전및중소기업육성에관한법률) ▲경제자유구역(경제자유구역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 ▲관광레저형도시(기업도시특별법)가 개발특별법의 적용을 받는 개발특별지구에 해당한다.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정연경 사무국장은 “골프장 건설에 관한 법을 쉽게 일반법(국토계획법)과 특별법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특별법은 더욱 복잡한데 관련법에 따라 토지 수용 범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골프장이 개발특별지구에 건설되면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과 특혜가 있다. 토지 수용의 범위를 예로 들면 지역특화지구, 개발촉진지구, 관광단지에서는 골프장 부지의 3분의 2를 획득하면 나머지는 토지 수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택지개발지구나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는 100% 토지 수용이 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기획단 기획총괄팀 이규봉 사무관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면 토지수용권이 발생하는데, 토지 수용에 관한 법을 따른다”면서 “골프장이 공익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골프장만 볼 게 아니라 산업과 레저 등을 공익적 목적으로 개발하는데, 거기에 골프장이 일부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부장판사의 일화는 개발특별지구에서 골프장을 건설할 때 생기는 일이 ‘비상식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 부장판사는 지인이 골프장 건설 때문에 자신의 토지가 수용당할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하지 마라, 수용당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특별법을 살펴본 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야기를 잘못 전했다고 걱정했다는 것. 그만큼 골프장 건설에 따른 수많은 혜택은 법률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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