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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인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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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정치 지도자’와 대비되는 대중의 우상

|일러스트 이민호

|일러스트 이민호

박근혜 의원이 국정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정하기 위해 대통령과 당 대표가 회동하여 결정했다는데, 박근혜 의원의 한마디에 두 사람의 결론이 공중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어떻게 아무런 당직도 없는 국회의원이 당 대표보다, 아니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것에 대해 정치평론가와 언론에서는 박근혜 의원의 대중적 인기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미 우리에게 파키스탄의 부토, 버마의 아웅산 수치, 아니면 영국의 대처와 같은 인물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이 박근혜 의원을 어떤 이미지로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위엄이 있는 공주’
박근혜 의원의 대중적 이미지가 무엇이며, 또 국민이 그녀를 통해 찾고자 하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것을 알려면, 박근혜 의원 자신뿐 아니라 현재와 과거 대통령의 이미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박근혜 의원이 정치인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박근혜 개인의 특성이나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는 그녀가 어느 정치 지도자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의원의 이미지가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다.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이라는 위기를 맞았을 때, 대다수 한나라당 핵심 정치인은 지리멸렬 상황에 빠졌다. 이 와중에서 박근혜 의원은 마치 잔다르크처럼 등장했다. 이후, 박근혜 의원이 아닌 한나라당 대표로 그녀는 노무현 대통령과 끊임없이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이 둘의 관계에서 그녀는 대통령을 상대하는 야당 대표가 아니었다. 마치 야당 지도자 노무현을 상대하는 여당 총수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의 판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와중에서 원칙을 내세우면서 우아하게 처신하는 박근혜 대표가 마치 대통령처럼 보인 상황이었다. 이런 이미지의 영향 때문인지, 박근혜 대표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뜬금없이 ‘대통합·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박근혜 의원의 대중 이미지는 대통령보다 위엄이 있는 ‘공주’였다. ‘유신공주’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출발한 코드였지만, ‘귀한 분’이라는 공주의 이미지는 박근혜 의원에 대해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했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사심이 없는 귀한 인물, 권력은 없으나 로열패밀리의 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대중은 자연스럽게 절대 상류층을 상징하는 그녀를 자신의 대표자로 신봉했다. 마치 과거 칠레 국민들이 에바페론에 열광했던 것처럼 박근혜 의원의 대중적 인기는 치솟았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심지어, 싸이월드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누리꾼이 일촌으로 맺기를 가장 원하는 인기 정치인이 되었다.

이 대통령과 관계는 ‘서희와 길상’
‘공주’의 코드가 대중이 박근혜 의원에 대해 갖고 있는 일차적 이미지라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는 박근혜 의원의 심리를 반영하는 이미지다. 몰락한 황손처럼 잃어버린 영광스러운 과거를 회상하거나 또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강박성과 강단을 보여준다. 원칙과 규정, 절차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결벽증 아니 강박증 수준이다. 사심 없이 국가에 자신을 바친 듯한 모습에서 대중은 현실 인간의 코드로 이해하기 힘든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이미지를 느낀다.

인간 박근혜에 대해 대중이 가지는 단순한 이미지는 그러나 정치적 맥락 속에서 복잡해진다. 박근혜 의원의 이미지는 태생적으로 ‘대통령’과 관련 있다. 특히, 현재 대통령이 그녀와 어떤 권력의 대척점을 짓느냐에 따라 그녀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쥔 사람의 이미지는 박근혜 의원의 이미지를 분명히 해줌과 동시에 대중이 박근혜 의원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한다. 혹자는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 관계를 과거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상호 비방과 불신의 앙금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 해석은 틀렸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갈등의 문제는 경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와 각자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서로 공유하기 힘든 차이에서 발생한다. 마치 <토지>의 ‘서희’와 ‘길상’의 관계처럼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실질적인 권력을 쥔 사람이다. 그의 이미지는 ‘CEO형 장군’이다.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으면서 현실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내는 사람이다. 일을 잘 만들기도 하고, 잘 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질주하는 ‘증기기관차’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명박씨가 CEO장군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부각될 때, 박근혜와 이명박 모두 노무현이라는 분명한 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들의 대척점에 노무현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과거 열린우리당 소속의 386 정치인들은 박근혜 의원과 비교할 때, 천박하고 경박한 또는 잡초 같은 정치인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 그의 무리가 대중의 적이 되었을 때, 이들과 더 잘 싸울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우아한 공주보다는 강한 CEO장군이었다. 이제 무대가 바뀌었다. 적은 사라졌고, 전쟁에 승리한 장군과 공주만 남았다. 권력을 쥔 장군이 공주를 치고 역성혁명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공주를 모시면서 국가(한나라당)를 잘 지켜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생겨났다. 한나라당이라는 왕조의 운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혼란과 불안의 시대엔 구세주 원해
2008년 12월께, 필자의 연구팀은 국민이 가장 원하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를 조사했다. 혼란과 위기의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무엇이며, 향후 국민이 바라는 리더는 누구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커버스토리]박근혜의 인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전략이 분명하다. ▲정치 지향점과 주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원칙이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할 때 핵심을 잘 파악한다. ▲유능한 정부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나라가 잘 되는 길을 가장 먼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치 있는 일이라면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달성하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한다.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일을 처리한다.

그 당시 대중이 이상적으로 원했던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다. 구세주의 이미지였다. 대중이 구세주를 기다릴 때, 그 상황은 혼란과 불안을 의미한다. 자신이 어디로 나아갈지 몰라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말기 현상이다. MB정부는 집권 1년 만에 이 현상을 만들어냈다. 대중이 구세주를 기대할 때, 구체적인 인물로 세종대왕, 레이건, 그리고 박근혜가 있었다. 아버지 박정희의 신화가 만들어낸 음덕(陰德)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음덕은 바로 현재 대중의 마음속에 ‘이상적이지 않은 정치 지도자’로 연상되는 사람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념 지향이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과장과 허풍을 통해 자신감을 표현한다. ▲항상 꿍꿍이가 있어 보여서 믿기 힘들다. ▲간사하고 차갑게 보인다.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만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모든 행동이 권력 투쟁과 파워 게임으로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방식이다. ▲전형적이며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 ▲보수층이나 부유층에 영합하는 정책에 동조한다. ▲자기가 믿는 종교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다.

‘마키아벨리’로 명명될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다. 대중은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 삼국지의 영웅 조조,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연상했다. 대중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구세주와 마키아벨리(조조)’라는 서로 상반된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바로 MB정부나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의 정체를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아니, MB정부의 위기가 논의될 때 항상 그 대안으로 박근혜 의원의 참여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알려준다.

마치, 그녀가 국정 혼란의 대안처럼 언급되는 상황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준다.
현재 대중은 막연히 구세주의 이미지로 박근혜 의원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마키아벨리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 주시한다. 혹시라도, 대타협이나 양보가 있다면 그 열쇠를 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보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움직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해법은 더욱 복잡하고 알기 어려운 상태로 갈 것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을 깨었다는 오명을 쓰지 않으면서 공주와 일전을 불사할 수 있는 길을 찾든지, 아니면 공주에게 또 다른 대연정의 길을 제시하려고 할지 모른다. 대중이 보는 박근혜씨의 이미지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공주로 계속 남든지, 아니면 극적인 전환을 이룰지 아직 모른다. 그녀는 분명 누구에게는 계륵(鷄肋)이다. 이 와중에 엉뚱하게 죽어나가는 인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대척하는 이미지의 싸움에서 그녀의 이미지가 무엇이 되었든 나라가 평안하면 좋겠다.

황상민<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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