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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1층서 겨우 지상 올라온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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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연구소장이 말하는 우리경제 ‘현주소’… “경기부양 정책 제대로 해야”

"연구원을 정부의 싱크탱크(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입) 정도로 생각하는 정부에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31일 임기 1년 반을 남기고 중도 사임해 파장을 일으킨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의 이임사 일부다. 이 원장의 사임은 국책연구기관과 재벌 연구소가 내놓는 경제 전망에 대한 의심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전 원장의 말처럼 정부 산하의 경제연구소나 그룹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의 발언엔 ‘한계’가 존재한다. 때문에 이해관계가 없고, 발언이 자유로운 민간 경제연구소의 전망이 오히려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다.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주목받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정한 민간연구소’ ‘독립연구소’ ‘재야 경제고수’ 등으로 불리는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윤채현 한국시장경제연구소장,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등의 ‘신조’ 있는 목소리를 통해 현재 우리 경제의 ‘실제 주소’를 들여다보았다.

긍정적 경제지표, 바닥 찍었나?
최근 주식과 환율 등 경제지표를 통해 “국내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신중론과 반론도 존재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도 사실. 이에 대한 민간경제연구소 소장들의 접근은 신중했다.

우선 윤채현 소장은 “연초 대비 주가지수가 30~40% 상승하면서 신규로 투자한 투자자들 중에서 소비 여력이 다소 회복되고 있지만, 주가지수 1400선 이상에서 투자한 투자자들은 아직까지 손실을 보고 있으므로 주가지수가 상승하더라도 소비(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실업자 증가, 실질소득 감소 등에 따른 소비 감소 효과가 적지 않으므로 아직까지 바닥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것. “주가지수는 이미 실물경제 회복을 선반영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상승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공병호 소장도 “바닥론은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부실자산 처리와 구조조정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의 지표 회복은 유동성 공급의 증가 덕분”이라고 밝혔다.

<b>최용식 소장</b> 21세기경제학연구소 "바닥은 지났지만 부진을 벗어나기는 여렵다. 지하 21층에서 이제 겨우 지상으로 올라온 정도다"

최용식 소장 21세기경제학연구소 "바닥은 지났지만 부진을 벗어나기는 여렵다. 지하 21층에서 이제 겨우 지상으로 올라온 정도다"

반면 최용식 소장은 “경기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바닥은 이미 지났지만 부진을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국내 경기를 “지하 21층에서 이제 겨우 지상으로 올라온 정도”라고 비유했다. 최 소장은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동안은 앞으로도 경기 상승은 지속할 것인데 이는 환차익을 노리고 외국인 투자가 증가할 것이고,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에 따라 소비와 생산과 투자가 증가할 것이지만 경기 상승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환율이 어떻게 변동하느냐가 관건인데, 이게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각종 긍정적인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실제 체감지수는 오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공 소장은 “실물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내수 중심 업종의 경우 경기 회복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서민들 역시 가처분 소득이 정체 내지 감소한 상황이고 실업도 증가 추세기 때문에 경제지표와 체감지수 사이를 메우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라는 그는 “지표가 바닥을 치고도 2~3분기 차이를 두고 체감지수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채현 소장 역시 “실업 증가와 임시직 증가는 물론, 명목임금이 감소한 중소기업과 대기업도 적지 않고, 환율 상승 등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 수준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는 가구는 지난해 대비 실질 소득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서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주가지수 및 부동산 가격 소폭 반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경기 회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경기지표와 체감지수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용식 소장은 “경제지표란 경기 흐름을 조금이라도 먼저 읽어내기 위해 세계적으로 탁월한 경제전문가들이 개발한 것으로, 따라서 지표경기가 체감경기보다 앞서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체감경기란 경기가 상승할 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고 경기가 호조를 보일 때에 비로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기가 호조에 이를 때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며, 더욱이 경기가 하강으로 돌아설 여지까지 있다는 분석이다.

환율정책 큰 실패, 부동산 전망 비관적
부동산 시장에 대해선 세 소장 모두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최용식 소장은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는 것은 수요가 시간 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돈을 좀 더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사곤 하는데, 이는 미래의 수요가 현재로 이동해오는 것이라는 분석. “하지만 수요가 이동해간 때가 반드시 닥치기에 이런 투기장세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그는 “현재도 마찬가지로서 실수요 공동화 상태로, 소득이 좀 더 축적되어야 신규 수요가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부동산 시장도 꿈틀거리고 있지만 이것은 가수요에 불과하며,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고 소득이 증가해야 현재의 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b>윤채현 소장</b> 한국시장경제연구소 "주가지수는 이미 실물경제 회복을 선반영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상승에는 한계가 있을 것"

윤채현 소장 한국시장경제연구소 "주가지수는 이미 실물경제 회복을 선반영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상승에는 한계가 있을 것"

윤채현 소장은 “지난해 낙폭 과다에 따른 기술적 반등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실수요 기반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 상승은 거품일 수밖에 없고, 거품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대부분 수도권 가구 부채가 증가하고,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있으므로 가을 이사철 이후에는 다시 조정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병호 소장 또한 부동산 경기 호전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으로서는 부동산 거래의 활성화에 좀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올바른 정책 선택”이라는 그는 “그렇지만 부동산이 더 이상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다른 나라보다 충격이 컸던 것과 관련해 정책당국에 대한 평가가 매섭다. 윤채현 소장은 “전반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특히 실물부문과 금융시장의 상호작용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정책 선택은 물론, 시기 선택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 환경을 무시하고 7·4·7정책을 추진한 것, 환율 상승 유도에 따른 또 다른 경제적 충격에 대한 검토 없이 정책을 선택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다. 최용식 소장 역시 “세계적인 경기 부진이 국내 경기 부진을 부르기 위해서는 수출이 감소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출에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며 “결국 경제정책 실패가 경제난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특히 환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환율이 급상승하자 외채와 외국 자본은 환차손을 입었고,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외채 상환과 외국자본 유출이 서둘러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신용경색이 벌어졌고, 국내 경기가 급강하했다”는 그는 “수출을 증가시켜 경제를 살리자는 정책이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빚은 셈”이라고 말했다.

‘4대 강 사업’ 경기 부양 안 된다

<b>공병호 소장</b> 공병호경영연구소 "가처분 소득이 정체 내지 감소한 상황이고 실업도 증가 추세여서 경기지표와 체감지수 사이에는 시간 필요"

공병호 소장 공병호경영연구소 "가처분 소득이 정체 내지 감소한 상황이고 실업도 증가 추세여서 경기지표와 체감지수 사이에는 시간 필요"

현재 정부의 추경 확보, 4대 강 정비사업 등 경기부양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최용식 소장은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12차례에 걸쳐 무려 129조 엔을 투입했지만 경기를 끝내 살려내지 못했다”며 “더욱이 4대 강 정비사업은 한계생산성이 아주 낮아 이런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면 경기는 오히려 하강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가격은 한계효용이 결정하듯이, 소득은 한계생산성이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윤채현 소장도 “경기 부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운하 건설의 기회 비용이 매우 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미래지향적으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공병호 소장 역시 “부분적인 경기부양책은 찬성하지만 추경안을 보면 쓸데 없는 곳에 돈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인플레와 재정적자 문제의 심화라는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현 정부 경제팀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다만 이전 강만수 경제팀과 비교해선 그나마 낫다는 평이다. 공병호 소장은 “적어도 지난 번 팀보다는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말을 아낀다는 것, 시장 참여자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이 지난 팀과 큰 차이점. 공 소장은 “다만 정책 조율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명확한 우선순위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채현 소장 역시 “1기 경제팀보다는 진솔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며 “향후 상당기간 동안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용식 소장은 “우리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사에 있어서도 이미 실패했던 정책들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라고 혹평했다.

정부 일각과 일부 언론에서 퍼뜨리는 지나친 낙관주의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윤채현 소장은 “자본의 국제화로 지나친 낙관주의는 오히려 국민경제를 어렵게 할 수 있는데, 정책 당국과 증권 전문가들의 지나친 낙관주의가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문제”라며 “지난해 환율 급등과 4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은 지나치게 경제를 낙관한 결과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이 지난 6일 인천시 서구에 있는 공항철도 검암역 앞에서 정부를 상대로 경인운하 공사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삽질’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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