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초빙교수 이재오 ‘말문’ 열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정치적 방랑 마치고 새로운 모색… “당분간 한반도 미래 문제에 전념”

이재오 전 의원이 5월 7일 중앙대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이재오 전 의원이 5월 7일 중앙대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지난 5월 7일 중앙대 초빙교수인 이재오 전 의원이 중앙대 국제대학원 학생을 상대로 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한국의 미래’라는 제목의 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이재오식 정치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젊었을 때 민주화운동을 했고 국회의원 시절 부정부패와 싸웠고 야당 시절 정권 쟁취를 위해 싸웠는데 그런 정치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김해진 코레일 감사는 이에 대해 “투쟁정치의 졸업 선언”이라면서 “이 전 의원은 ‘누군가 나라의 100년 뒤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친박-친이 갈등의 최전선에 있던 이 전 의원의 새로운 모색인 셈이다.

이날 강연은 이 전 의원이 10개월여의 ‘정치적 방랑’을 마치고 귀국한 뒤 한 첫 대외행사다. 내외의 관심이 주목된 것은 당연한 일. 기자들이 꽤 몰려들었다. 정치인의 변신에는 정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이 전 의원의 새로운 모색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귀국 후 첫 대외행사 관심 끌어
‘주목구조(Attention Structure)’라는 정치학 이론이 있다. 정치인이 대중의 인기를 끌려면 정책, 행동, 발언, 실력, 퍼포먼스 등을 스토리텔링화해야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이론이다. 원외 실력자인 이 전 의원 움직임은 그 자체가 언론의 관심거리였다. 특히 4·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영패→친이(親李)세력의 한 축인 이상득 의원의 입지 축소→친이와 친박(親朴)의 세력 갈등 확대재생산 등 일련의 상황에서 나온 그의 ‘새로운 정치역할론’은 최소한 대중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5월 26일 “더 배우고 돌아오겠다”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그는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 이재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미국 대륙 횡단과 역사 탐방, 중국 실크로드 횡단, 중국 동북3성 방문과 같은 ‘여행 정치’를 통해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다. 한 정치학자는 이 전 의원의 그간의 활동에 대해 “새로운 상품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퍼포먼스”라고 평가하면서 “역경을 역이용한 좋은 사례“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이재오’로 등식화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는 얘기다.

‘과거 이재오 정치’는 ‘투쟁의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 의원은 ‘투사’로 통했다. 야당 의원 생활 10년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서 굳어진 그의 이미지는 ‘전사’ 혹은 ‘저격수’였다. 박근혜 의원을 향해 “유신공주” “독재자의 딸”이라는 독설을 서슴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이날 강연은 그 같은 과거 이미지를 개선하는 연장선상에 있었다. 강연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구한 과제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전 의원은 “나라가 어려울 때 현실을 타개하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여의도에 있는 분들이 한반도의 현재를 얘기하고, 나는 당분간 한반도 미래를 강의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청중들이 강의 내내 ‘충정’과 ‘애국심’이란 말을 떠올릴 정도였다. 그는 “이 좁은 땅에서 사는 우리 자식들이 50년, 100년 뒤에 넓은 땅을 가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데 나머지 인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구상인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한 공동체’를 소개했다.

“난 침묵해서 도움이 되겠다”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해 5월 26일 미국 연수를 떠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해 5월 26일 미국 연수를 떠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이 전 의원은 “다른 지역과 상호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개방적인 공동체”라고 규정했다. “통일한국이 동북아에서 위상 정립을 위한 외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그중 하나”라면서 “이런 외적 환경 구축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곧 미래의 한국 비전”이라고 역설했다.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 TASR(동남아횡단철도)의 거점도시에 문화·경제적 개념의 (한국) 영토를 만드는 것에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민들이 거점도시들에 문화·경제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공간적 개념의 영토와 다르다는 말도 했다.

그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어려울 때 말을 많이 해서 돕는 방법이 있고, 어려울 때 침묵해서 돕는 방법이 있다”고 전제하고 “나는 말을 안 함으로써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역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된 행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전 의원은 귀국할 때 “서울시내로 향하는 무악재, 여의도로 가기 위한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재오의 침묵’은 이유가 있다.

4·29 재·보선은 이 전 의원에게 기회이자 굴레다. 이번 선거와 사후 수습 과정에서 더욱 고착화된 친이-친박 세력 구도 때문이다. 이 갈등은 이 전 의원의 운신을 옥죄고 있다. 그의 현실 정치 행보는 곧 친박 세력의 거센 반발을 야기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친이-친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복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에) 복귀해 생각해도 늦지 않다”며 “지금부터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복귀하면 진지하게 생각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정치 재개를 시사한 것이다. 또 다른 정치학자는 “잠재력이 가장 큰 정치력은 침묵이다”라고 전제하고 “지금 상황에서 정치를 재개하는 순간 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잠재력도 소진된다”고 전망했다. 이 전 의원이 향후 정치 복귀 시점에 대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동북아 평화번영 공동체’가 공론화되면 그 주제가 나를 떠날 것이고, 그때 제 임무는 끝날 것이다”고 여운을 남긴 것도 그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상득 의원의 ‘상왕정치’ 기세가 꺾인 것은 이 전 의원에게 나쁠 것이 없다. 이 전 의원이 가장 원하는 방식의 정치 재개, 즉 당의 부름을 받는 구도가 가까워졌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귀국 후 그의 일련의 행보는 정치 재개를 위한 암중모색이 미국으로 떠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