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심 재개발 폭력성’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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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풀 ‘드림하우스’전, 10명 작가 참여 용산참사 등 기록

조민호 ‘RAKE’

조민호 ‘RAKE’

지난 1월 20일 아침,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 끔찍한 장면에 많은 국민은 경악했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물대포가 쏘아지고 사람들은 망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비규환의 현장.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6명이 사망했다. 용산 참사 이야기다.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며 제도 정비를 약속했지만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들에 대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관심한 사이 제2, 제3의 용산 참사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서울에서만 재개발이 예정되거나 진행 중인 지역이 550여 곳이고, 이 중 상당수가 조합과 세입자가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수 ‘무너진 풍경’

김기수 ‘무너진 풍경’

이런 가운데 서울의 대안공간 풀에서는 용산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드림하우스(Dream House)’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도시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개발독재식 자본주의 논리가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2009년의 현실을 고발한다. 용산 참사 현장뿐 아니라 아현동 재개발 지역, 청계천 개발로 철거된 육교상가, 은평 뉴타운 재개발 사업 때문에 사라진 산기슭 동네 등을 담은 작품 30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강홍구·조민호·최선아·고승욱·양성윤씨 등 모두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선령씨는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등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용산 참사까지 터지면서 미술작가들도 답답함을 토로했고 모여서 이런저런 논의를 하면서 이번 전시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며 “참여 작가들은 나라 전체를 갈아엎을 기세로 도처에서 진행되는 재개발 사업의 심각한 문제점, 또 모든 가치가 부동산적 가치로 환원되고 있는 도시에서 그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령처럼 방치된 사각지대 등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언론이 놓친 부분 찾아 부각했다”
조민호·양성윤씨는 도시 재개발 사업의 폭력성을 기록한 사진을 선보인다. 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 사업 재개발 지구와 용산 참사 합동 분향소, 참사 사고 건물(남일당) 등을 촬영한 조민호씨는 “용산 참사 현장과 그 주변에는 시간이 지나도 갈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며 “언론 보도가 놓친 부분을 찾아 부각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조씨의 작품 ‘RAKE’는 남일당 주변 건물 옥상에 스스로 알몸 상태로 걸터앉은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는 “경찰이 사고 건물과 불에 타 무너진 망루를 거대한 파란 천막으로 가린 것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듯한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가리는 모습은 권력의 방어 수단이자 또 다른 폭력이라는 생각에서 그에 대한 항거의 표현으로 나는 벗은 것”이라고 밝혔다.

강홍구 ‘골목2009’

강홍구 ‘골목2009’

최근 서울 몽인아트센터에서 은평 뉴타운에 관한 기록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 강홍구씨도 이번 ‘드림하우스’ 전에 같은 주제의 작품 2점을 내놓았다. 은평 뉴타운이 개발되기 전 모습을 담은 것들이다. 강씨는 “은평지역을 찍기 시작한 2001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보자는 의도가 있었는데 갑자기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면서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며 “그래서 뉴타운 이후 사진은 결국 뉴타운에 대한 우연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 사진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아현동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진 촬영에 나섰다는 안현숙씨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원주민이 떠난 빈 집의 낮과 밤을 담았다. 또 현장에 남아 있던 자개장·타일을 이용한 작품도 선보였다. 김기수씨는 철거로 버려진 물건들이 폐허처럼 쌓여 있는 풍경을 그린 회화를, 김지은씨는 위성 사진을 이용해 지적법이 규정한 풍경을 묘사한 회화를, 최선아씨는 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미래를 장밋빛으로 제시하는 광고 전단지를 촬영한 영상 작업을 출품했다. 고승욱씨는 주거와 관련한 기억 등을 담은 드로잉집을 내놓았다.

양성윤 ‘용산4구역’

양성윤 ‘용산4구역’

안규철·최원준씨의 작품은 도시의 버려진 장소 혹은 자기 권리를 갖지 못하고 떠도는 공간의 문제를 다루었다. 안씨는 합판으로 만든 1인용 조립식 집을 통해 주거권 자체를 갖지 못하는 노숙자들의 공간문제를 환기시킨다. 안씨는 “공공미술 차원에서 1인용 조립식 집을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은 노숙자를 위한 집은 조형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과 현실을 우회 없이 연결하고 있다.

최원준씨는 우리나라 최초 개발 지역 중 하나인 여의도에서 2005년 5월 발견된 군사독재 시절의 지하 벙커와 지상의 도시를 병치한 사진작품을 출품했다. 최씨는 “벙커 위에는 섬의 항구 같은 역할을 하는 버스환승센터가 생겨 버스를 통해 섬(여의도)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이들은 어김없이 벙커 위를 밟고 지나가는데, 군사정권 시대의 유물인 벙커와 그 위를 매일 무덤덤하게 오가는 여의도 직장인들의 모습이 과거를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생각에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는 조선시대 말 목장에서 일제 강점기 비행장 그리고 한강개발계획을 통해 현재의 틀을 구성했다. 벙커는 군사정권 시대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져 잠시 쓰이다 이제는 용도가 사라져버린 공간이다. 2005년 벙커가 발견되고 얼마 후 서울시는 이 지하벙커를 버스환승센터의 휴식공간으로 바꿀 것이라는 계획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산문제로 변경하지 못하고 처음처럼 다시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 02-396-4805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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