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선’ 박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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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난에서 정치인 단수에 대해 언급한 것에 몇 분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사에서 의미도 있고 연구 대상인데 몇 단을 줘야 할지 매우 난감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박찬종 전 의원입니다. 기자는 현대사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한 인물의 위인전을 읽기 좋아합니다. 사건의 진실은 이 사람의 증언과 저 사람의 증언을 날줄과 씨줄로 이어보면 더 명확해지지요. 그래서 유명인의 전기나 평전, 정치인의 회고록을 모으는 취미도 있습니다. 기자의 인물 연구 대상에 박찬종이라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5선이고 창당에 준하는 정치력을 보인 그에게 정치단수를 몇 단 줘야 할까요.

기자는 고대앞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구호를 외치는 변호사 박찬종을 사진으로 처음 봤고, 이후 1987년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삭발하는 그를 봤습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야당 통합을 주장하는 그의 논리를 받아 적으며 기자는 솔직히 감명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대부분 기자는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쇼하고 있다”며 냉소를 보내곤 했습니다. 기자는 그의 이런 행동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김씨와 정면으로 맞선 강단과 기개를 보면 그에게 최소한 정치 8단 정도는 줘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1980~90년대 야당에서 정치하려면 3김씨 그늘에 들지 않고는 불가능했거든요. 그래도 그는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1등을 오래 했고, 또 3김씨에 버금가는, 최소한 300만 표를 몰고 다니는 정치인으로 꼽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지역을 초월한 몇 안 되는 큰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주변에 세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소속을 전전하다 기껏 한다는 것이 몇몇 정치인과 꼬마 정당이나 만들다보니 변변한 당직도 맡지 못했습니다. 그는 97년 대선에서 경선을 포기하고 탈당하면서 명분을 잃고 방황의 길을 걷다가 결국 정계를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술먹고 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BBK 김경준 변론을 맡으며 이명박 후보와 각을 세웠습니다. 참 운이 없는 변호사지요.

그런데 이번에 한 건 했습니다. 미네르바 변론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요즘 그가 매스컴을 많이 타고 있습니다. 혹시 본인은 과거의 인기가 살아나니 다시 정치를 하려고 마음먹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그의 정치 인생을 되씹어보면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대목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기자는 그를 떠받드는 사람이 많아 신의 경지에 오른 정치 9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절반의 신, 그러니까 8.5단 정도의 ‘신선’으로는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확고한 족적을 남긴 3김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있는 듯하면서 없는 것 같은, 마치 선계에서 오가는 듯 한시대 정치를 휘저었다가 떠나는 ‘정치 신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럴듯한 단수를 부여했나요? 이번호 ‘Weekly 경향’에서 그의 인물을 다시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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