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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장의 미래는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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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앵커 교체로 내부 구성원들과 다시 갈등

MBC 노조원들이 MBC 본사 10층 사장실 앞에서 신경민 앵커의 교체 철회와 보도본부장·보도국장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박재찬 기자>

MBC 노조원들이 MBC 본사 10층 사장실 앞에서 신경민 앵커의 교체 철회와 보도본부장·보도국장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박재찬 기자>

“이명박 정부의 영구집권 프로그램 중 하나가 언론이다. 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점체제 구축인데, 특징은 ‘법’으로 하는 것이다. MBC 사태의 시작은 <시선집중>에서 에리카 김 인터뷰를 한 후 징계받은 것부터다.”(2007년 말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12월 5일 <손석희의 시선집중> 징계 결정을 내려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재심에서 징계 결정을 철회했다.)

4월 13일 열린 ‘MB정권의 언론탄압과 민주주의의 위기’ 토론회에서 성공회대 김민웅 초빙교수는 MBC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에리카 김 인터뷰 후 징계를 시작으로 MBC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4월 8일 검찰이 제작진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을 집행하기 위해 MBC 본사에 진입한 날, MBC 간부회의에서는 신경민 앵커와 진행자 김미화씨의 교체를 결정했다. 이후 라디오국 PD들은 연가투쟁으로 맞섰고, 보도본부 차장-평기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반발이 심해지자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겠다”는 엄기영 사장은 김미화씨에 대해서는 ‘Stay’를 결정했다. 이에 PD들은 제작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신경민 앵커 교체는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Out’ 결정을 내렸고, 기자들은 제작 거부를 멈추지 않았다. 비대위에서는 엄기영 사장에게 ▲앵커 교체 철회 ▲보도국장 퇴진 ▲재발 방지 제도 마련을 요구했다. 비대위는 4월 16일 12시까지 이에 대한 답변이 없으면 투쟁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최후 통첩을 전했다.

보도국장 불신임안 97% 찬성
최후 통첩 시한을 하루 앞둔 날 “비대위의 요구사항 중 엄 사장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비대위 김연국 기자는 “우리는 공정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제작 거부에 들어간 것이다”면서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원칙대로 할 것이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최후 통첩 시한을 몇십 분을 앞두고 비대위는 제작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전영배 보도국장이 편집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했고, 엄 사장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MBC는 얼굴 격인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를 아주 신중하게 결정했다. 엄 사장이 13년이라는 최장수 앵커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경민 앵커의 경우 엄 사장이 뽑은 앵커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앵커 교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조는 6개월 만에 보도국장을 교체한 것이다. 특히 후임 전영배 보도국장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고교 동창이자 대학교 같은 과 동문이라는 사실 때문에 MBC 내부에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MBC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것은 앵커 교체와 맞물려 보도 누락 때문이다. <뉴스데스크> 톱기사로 방송됐던 천신일 의혹이 다음 날 아침 뉴스를 30분 앞두고 보도국장의 전화 한 통으로 기사로 나가지 못한 것. 그리고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에 대한 리포트나 다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중과세 폐지에 대해 환영 일색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뉴스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4월 13일 평기자 96명이 보도국장 불신임 투표를 통해 97%의 찬성으로 불신임을 채택한 이유다.

기자들이 요구했던 것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번에는 결혼을 앞둔 의 김보슬 PD가 체포됐고,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 중 김정란·옥시찬·조영호 이사 3명이 4월 15일 오후 사장·부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정란 이사는 해임안 제출 이유에 대해 “엄 사장이 공영방송을 지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정치적 억압에 투항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월 17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는 해임안이 다뤄지지 않았고, 4월 27일 임시이사회에서 다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MBC 사측이 내부 구성원의 강한 반발에도 앵커 교체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병규 미디어평론가는 ▲각종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방통심위의의 제재 등 권력기관을 동원한 전방위적 압력 ▲경영진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과 회유 ▲8월 방문진 이사진 임기 만료와 그 이후 경영진 개편 시도에 대한 우려 ▲광고 매출 격감 등 경영환경 악화라고 분석했다. 또 “특히 광고 매출 격감이 경영진의 위기의식을 크게 증폭시켰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방문진 이사 3명, 사장 해임안 제출
전병헌 의원(민주당)의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 3사 중 MBC의 1분기 광고 실적은 41.9%나 떨어졌다. SBS -26.8%, KBS 2TV -20.6%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심하다. 특히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KTF 등 주요 광고주들은 MBC 광고를 다른 방송사보다 많이 줄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병헌 의원 측은 “정부 비판적인 MBC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적대적 정책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기업 등 광고주에게 영향을 미쳤고, 광고시장 하락 속에서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전 의원의 분석은 MBC 내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MBC 한 기자는 “후배가 ‘MBC에 광고하기 부담스럽다’는 기업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백병규 평론가는 MBC 상황에 대해 “권력의 외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단호하면 MBC 경영진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MBC 구성원과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서 “하지만 상황은 KBS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MBC 경영진이 먼저 무너지면서 그 길을 열어주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 정권이 MBC에 집중하는 것은 6월 미디어 관련법 처리에서 MBC가 가장 주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앵커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엄기영 사장. 하지만 사장 취임 후부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의 사과방송을 구성원의 반대에도 강행했고, 여기서 시작된 내부 분란은 ‘방송법 반대’에 대한 강한 반대를 담은 뉴스 꼭지를 내보내면서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신경민 앵커의 교체로 엄 사장과 내부 구성원들은 다시 등을 지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또 방문진 이사가 제출한 사장 해임안 역시 엄 사장에게는 뼈아픈 일이 됐다. 심지어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MBC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엄 사장은 어떤 카드로 이 위기를 헤쳐나갈까.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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