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새 진위 의혹 관련당국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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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입장 밝힐 의무도 없고, 앞으로도 계획 없다”

고종이 각국 국왕에 보낸 친서에 찍힌 ‘황제어새’는 최소한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각각 제1유형(사진 왼쪽)과 제2유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몇 언론이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의 바닥면과 2유형 인명을 별다른 설명 없이 붙여 공개하면서 일부 국민 사이에서도 ‘도장과 인문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고종이 각국 국왕에 보낸 친서에 찍힌 ‘황제어새’는 최소한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각각 제1유형(사진 왼쪽)과 제2유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몇 언론이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의 바닥면과 2유형 인명을 별다른 설명 없이 붙여 공개하면서 일부 국민 사이에서도 ‘도장과 인문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황제어새’ 진위 논란에 대한 본지 보도에 독자 반응이 뜨거웠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봤다는 한 독자는 본지로 전화를 걸어 ‘구입 과정과 검증 절차를 당장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 일치가 안된 감정 결과로 섣불리 국새로 단정짓는 당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기사 반응이다.

하지만 논란의 당사자인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본지 요구에 문화재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우리가 입장을 밝혀야 하는 의무는 없지 않나”며 “앞으로도 입장을 밝힐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의구심뿐 아니라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이들의 주장이 나왔는데도 그냥 묵살하겠다는 태도다. 본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측에 지난 보도 기사를 바탕으로 한 7개 문항의 질문을 공문으로 발송했다. 그제야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국회 답변 준비로 바쁘다. 답변서를 보낼지 여부는 다음 주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국 대응 논란 덮으려는 책임회피”
“결국 논란을 유야무야 덮으려는 책임회피성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소신껏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1차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농산 정충락씨의 말이다. 그는 ‘Weekly경향’과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는 ‘안품’(가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황제어새’ 공개 기자회견 후 진위 여부를 추적하다 정씨를 비롯한 ‘황제어새’ 감정에 나선 평가위원들을 차례로 접촉해 평가 과정의 논란을 취재했다. 정씨는 본지 인터뷰 직후 담도수술을 받고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황제어새 진위 의혹은 ‘국새가 발견됐다’는 고궁박물관의 발표 직후 일부 독자도 제기했다.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 바닥면의 인영과 고종이 보낸 각종 편지 속 ‘황제어새’ 속 인영이 다르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주장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몇몇 언론이 보도했지만 황제어새는 최소 두 종류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이것을 각각 제1유형과 제2유형으로 구분했다. 제1유형 어새의 글씨체가 전반적으로 ‘둥글고 부드러운 분위기’라면 제2유형 어새의 글씨체는 ‘각지고 반듯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는 제1유형의 어새와 일치한다는 것이 고궁박물관 측 발표다.

이탈리아에 보내는 대한제국 황제 친서. 이 문서에 사용된 황제어새는 제1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이탈리아에 보내는 대한제국 황제 친서. 이 문서에 사용된 황제어새는 제1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황제어새를 진품으로 평가했던 한 평가위원은 “전각전문가들이 제2유형의 사진을 보고 다르다고 문제제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본지에 밝혔다. 즉 육안으로도 구분되는 제2유형의 인영을 보고 전각전문가들이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황제어새 인영이 존재한다는 것은 1차 평가 당시 이미 검토된 사안이었다. 정충락씨는 평가 당시 “도장이 전부 다 다른데 (황제어새)가 서너 개는 되겠다고 고궁박물관 과장에게 말했다”며 “회의 당시 고궁박물관 측은 가지고 온 사람의 신분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는데, 도장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였다”고 말했다.

본지는 정충락씨와 함께 경향신문이 찍은 황제어새 공개 기자회견 당시의 바닥면 인영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유리원판 사진 속 인영을 비교했다. 모두 제1유형의 인영이다. 정씨는 “인문이 찍히면 압력 때문에 획이 굵어지거나 얇아질 수도 있지만 새긴 각도가 달라지진 않는다”라며 ▲‘황’자의 받침 王 맨 윗변과 중간변의 간격 ▲‘어’자의 의 모양 ▲‘새’자의 오른쪽 X의 길이 등 최소 5군데 이상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이밖에도 바닥 면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주물로 제작한 인뉴(도장 손잡이)의 거북 등 육각형 문양 등이 사진 속 황제어새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북 등 문양 차이는 본지가 취재한 다른 평가위원도 평가 당시 지적했던 것으로 확인된 사항이다.

박물관 측 “가지고 온 사람 신분 확실” 주장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제공한 보도자료는 공교롭게도 바닥면의 인영 사진이 빠져 있다. 아래아 한글로 작성한 보도자료에는 원래 비트맵(bmp) 파일로 만든 인영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문화재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되어 있는 자료에는 현재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다.(뒷 장 첨부사진 참고)

본지는 한 관계자로 부터 문화재청이 제공한 이미지 원본과 지난 기사에서 정 과장이 존재 여부를 부인했던 20쪽짜리 ‘국새 설명자료’를 입수했다. 이와 함께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측에서 공개한 편지에 찍힌 인영 사진을 비교 검토했다. 일반인이 봤을 때 두 인영은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

‘Weekly경향’은 전각학회의 임원과 함께 인영을 다시 검토했다. 전각학회는 이 분야의 공신력 있는 공식 단체다. 전각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전각학회 임원은 “전각을 처음 공부할 때, 대개의 입문자가 중국 한나라시대 때 만들어진 도장 인영을 참고삼아 모각(模刻) 즉, 흉내내서 조각하는 것부터 배운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일반인의 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99% 이상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새긴 사람의 의도나 어떤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는지, 또 그날의 컨디션이 어땠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즉 아무리 모각한다고 하더라도 원래 작업한 사람의 마음이나 흥취까지 따라하기는 어렵다는 것. 그는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똑같이 보이더라도 전문가라면 획 하나를 보더라도 그 차이를 찾아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임원은 논란의 황제어새를 어떻게 평가할까. 1시간 이상 꼼꼼이 두 인영을 검토한 끝에 그가 지적한 ‘차이’는 정충락씨가 지적한 부분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는 이번 기사와 관련해 정충락씨와 연락을 취하거나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다.

“일반인 육안으론 식별 거의 불가능”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이 내놓은 황제어새 보도자료원문은 공교롭게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의 바닥면 인영 사진 첨부가 잘못 처리되어 있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이 내놓은 황제어새 보도자료원문은 공교롭게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의 바닥면 인영 사진 첨부가 잘못 처리되어 있다.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이 임원은 이밖에도 글자를 둘러싼 격변의 차이, 찍힌 인영을 고려할 때 원래 도장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흠결 등이 이번에 공개된 황제어새의 인면에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이나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의 문서에 찍힌 인영의 경우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는 반면, 이번에 공개된 인영은 상당히 예민하며 선 자체가 경직되어 있고 부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이 임원은 “실제 실물을 본 적이 없으므로 뭐라고 단정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진위가 어떻든 간에 좀 더 신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제어새 1차 평가위원이었던 고암 정병례씨는 본지 보도 후 “나는 그렇게 봤다는 생각을 밝혔을 뿐이지 내 생각이 무조건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다”라며 “평가하기 위해 여럿이 모였다면 설혹 잘못봤더라도 상호 조정하고 다수 사람이 토론을 통해 결정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병례씨는 “적어도 (국립고궁박물관 측이) 전화라도 한 통화 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결정했는데 다시 한 번 볼 수 있겠냐, 또는 이런 증거가 나와 이렇게 결정했다라고 메일이라도 보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구입 과정이나 입수 경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앞에서 언급한 전각학회 임원은 “황제어새를 제공한 사람이 진위 여부도 알 수 없었고, 본인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되었든 외국에 팔지 않고 국내로 다시 가지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며 “‘진위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싸게 구입했다’라고 만 말할 것이 아니라, 진짜로 밝혀졌다면 앞으로 다른 유물 반환의 경우에서도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추가 포상하고 떳떳하게 그 과정을 밝히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의혹은 해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커지고 있다. 만약 본지 보도가 틀렸다면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은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국보지정’까지 거론한 담당관청이 응당 해야 할 의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공개 기자회견 당시 가짜 여부를 묻는 언론들의 질문에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도저히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에 도달했다”라고 밝혔다.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 관장은 한술 더 떠 “이것이 가짜라면 이를 만든 사람은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이 답변해야 할 차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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