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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생명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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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개정안 국회 통과… 누리꾼들 “아고라 폐쇄법이다” 반발

저작권법 개정안과 미네르바 재판을 통해 정부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저작권법 개정안과 미네르바 재판을 통해 정부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정지윤 기자>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1항이 갈수록 생명력을 잃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골자는 인터넷에서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불법 복제물을 올리면 문화체육부 장관이 해당 사이트 사업자에게 복제물을 올린 사람의 계정을 최대 6개월 동안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또 문화체육부 장관이 복제물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3회 이상 받은 인터넷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결국 이 법안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없더라도 문화체육부 장관이 누리꾼의 특정 사이트 이용을 봉쇄하고 해당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다. 누리꾼들이 사실상 ‘아고라 폐쇄법’이라고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고라 폐쇄법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불법 복제물이 없더라도 ‘알바’를 고용해 올리고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경희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민경배 교수의 말이다. 민 교수는 “사이버모욕죄나 미네르바 구속 등 아고라를 타깃으로 밀려들어오는 일련의 압박 조치에 또 하나가 얹혔다”고 비판했다.

미네르바 구속 법조항 위헌적 요소
지난해 5월 이후 표현의 자유는 지속적으로 위축됐다. 정부의 여론 옥죄기는 사이버모욕죄 입법 추진이나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가 보여주듯, 특히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축소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정부가 추진한 각종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집약되고 증폭된 지점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올해 초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대성씨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이런 맥락에서 현 정부가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풍향계다.

검찰은 박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 예측 의견이 잘못됐다고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허위 사실을 유포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때 검찰이 적용한 법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이다. 이 법 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승환 전북대 법학과 교수(한국헌법학회 회장)는 미네르바 재판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허위 사실 유포죄에 해당하느냐의 문제가 있고, 다음으로 허위 사실 유포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김 교수는 먼저 법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부터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의 모태가 된 것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1년 12월 제정한 ‘전기통신법’이다. 1983년에는 ‘전기통신법’을 ‘전기통신기본법’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분리하여 전기통신설비에 대한 규제와 운영 및 이용에 대한 규제를 구분했다. 이 과정에서 허위통신에 대한 처벌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에 살아남았다. 김 교수는 “법이 만들어질 당시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없었다”면서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생각이 곧 법질서” 비판
해당 법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고려대 법학과 박경신 교수는 “공익이라는 말이 너무나 모호해서 ‘공익’이 항변의 요건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의 요건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들이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 100%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의사 표현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이념이 현실화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 기본권 행사에 형법적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허위로 판명되어 처벌될 것이 두려워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담론 문화 자체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아고라 누리꾼들은 촛불집회 정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여론을 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 아고라 누리꾼들은 ‘아고라 폐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아고라 누리꾼들은 촛불집회 정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여론을 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 아고라 누리꾼들은 ‘아고라 폐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검찰이 미네르바를 기소하면서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한 것은 궁여지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강대 임지봉 교수는 “다른 조항으로는 미네르바를 처벌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그만큼 검찰의 수사가 무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1월 28일 재판부에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 사이에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네 차례 재판이 진행됐지만 재판부는 위헌심판제청 신청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승환 교수는 “지금 정부는 대통령의 생각이 곧 법질서라는 등식을 갖고 있다”면서 “요즘 상황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인터넷 검열 국가

한국은 인터넷 검열 국가다. 나라 안에서라면 대부분 동의할 내용이지만, 이제는 외국에서조차 한국을 인터넷 검열 국가로 보고 있다. 3월 25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요즘 인터넷을 검열하는 국가’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를 실었다.

포린폴리시는 “이란과 중국 같은 국가는 인터넷을 검열하는 국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도 거대한 방화벽을 쌓고 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호주, 프랑스, 인도, 아르헨티나, 5개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검열 실태를 보도했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호주는 2008년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들에 온라인 포커, 사탄주의, 안락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는 불법 복제물을 다운로드하는 이용자를 처벌하는 규제를 마련했다. 인도의 경우 힌두교 민족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의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유명 인사 70명이 구글과 야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해당 검색 엔진에서 이들과 관련된 검색어를 칠 경우 콘텐츠를 제한적으로만 노출하도록 하고 있다.

기사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통신망이 발달한 국가지만 인터넷을 가장 강도 높게 규제하는 국가”라고 규정하면서 그 근거로 북한과 관련된 사이트가 대부분 차단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사이버모욕죄나 미네르바 재판에 대한 최신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면 포린폴리시의 평가는 훨씬 더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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