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외이사에 포진한 MB 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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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보다 ‘정권 통로’ 역할 기대

1 KT 본사 사옥. 2 KT&G 본사 사옥. 3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4 LG전자 남용 사장이 지난 13일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5 포스코 센터 전경.

1 KT 본사 사옥. 2 KT&G 본사 사옥. 3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4 LG전자 남용 사장이 지난 13일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5 포스코 센터 전경.

공기업에 이어 현대제철, LG전자, 포스코, KT, KT&G 등 민간기업에도 ‘MB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민간기업의 낙하산 ‘모시기’ 행태는 눈물겨울 정도다. LG전자는 3월 13일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된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과 중도 사퇴한 이석채 KT 사장 후임으로 대표적인 MB 측근인 김상희 변호사와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변호사는 1993년 대검찰청 기획과장, 1999년 서울 고등검찰청 검사장, 2004년 법무부 차관을 지냈다. 김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제기해 소송 대리인으로 활동한 ‘MB 인맥’이다. 그는 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LG전자 측은 “검찰과 법조에서 오랜 경험을 지닌 인물을 추천한 것으로,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교롭게 LG전자는 이날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함께 홍성원 전 전남전략산업기획단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이규민 씨는 동아일보에서 편집국장·논설실장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1월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한 인물로 현재 한나라당 원외당협위원장(인천 서구 강화 을)을 맡고 있는 일선 정치인이다. 특히 신임 이 위원은 동아일보 재직 시부터 노골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현대제철, 이상득 의원 사위 영입
현대제철도 3월 13일 주총에서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오 교수는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사위로, 오명 건국대 총장의 아들이다. 미 스탠퍼드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오 교수는 1970년생으로, 다른 사외이사들과 20년 정도 차이가 나 파격적인 선임으로 평가된다. 오 교수와 함께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전형수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과 김상대 고려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각각 1953년, 1949년생이기 때문이다. 또 현 정권의 ‘상왕’으로 불리는 이상득 의원의 사위라는 점에서 든든한 ‘보험’을 하나 들었다는 평가다.

포스코, KT, KT&G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도 MB의 측근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대거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는 9명의 사외이사 중 5명을 대폭 물갈이했다. 자진사퇴한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대표의 사퇴, 임기 만료된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 등을 대신해 MB 간판 인사인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밖에 이창희 서울대 교수, 한준호 삼천리 부회장, 이영선 한림대 총장도 새롭게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유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으로 현 정부 출범 후 ‘대한민국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은 경력이 있으며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MB맨’이다. 김 전 대표는 2004년 당시 재정기획부 기획관리실장에서 퇴직하면서 공직자윤리법상 유관 민간기업 취업 금지 기간을 어기고 막바로 삼성에 취업해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유 명예교수와 김 전 연구위원이 MB의 측근으로 활동한 경험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선임의 부적절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들 기업 사외이사 후보들의 면면을 볼 때 후보자 선정 과정에 낙하산 인사가 개입했는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라며 “현 정부 들어 공공기관과 언론사, 공기업 등에 낙하산 인사가 횡행했던 것을 감안하면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포스코 역시 “경제전문가여서 모셨을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라고 답변했다.

투기 의혹 낙마한 이춘호 교수 KT로

유장희, 김상희, 김원용, 허증수, 이규민, 이태규, 김규성, 서종렬, 이춘호(사진 위 왼쪽부터)

유장희, 김상희, 김원용, 허증수, 이규민, 이태규, 김규성, 서종렬, 이춘호(사진 위 왼쪽부터)

KT도 3월 6일 주총에서 김응한 미시간대 석좌교수와 함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후에너지변화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았던 허증수 경북대 교수, 이명박 정부 첫 여성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한 이춘호 인하대 교수(KBS 이사)의 사외이사 선임안을 처리했다. KT는 대표적인 ‘MB 측근’인 허증수 교수와 이춘호 교수 선임에 대해 “이춘호 이사는 여성계를 대표해 소비자 관점에서 사업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함께, 방송 분야에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뉴미디어 및 콘텐츠 사업에 전문적인 안목을 갖추고 있어 추천됐으며, 허증수 이사는 KT가 새롭게 추진하는 ‘그린 IT’ 사업과 관련한 자문 역할과 사업 리스크 해소에 꼭 필요한 전문가적 시각을 제공할 분이어서 추천됐다”고 선임 이유를 설명했다.

이춘호 교수의 경우 지난해 부동산 투기 의혹 당시 45억8197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자신과 자녀 등의 이름으로 주택과 건물 14건과 토지 22건을 소유해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은 바 있다. 공직 기용에 거부당한 인물이 국내 최대 통신업체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치명타를 받은 인물을 불과 1년도 안 된 시점에 이번엔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은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며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을 확인시킨 결과”라고 질타했다.

이춘호 교수는 또 현재 KBS 이사를 맡고 있어 경쟁업체와 같은 기업집단의 현직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수 없다는 KT 정관을 위배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여 있으며, KBS노조로부터 사퇴 요구도 받고 있어 이 교수의 선임 배경에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은 “동종 업체의 사외이사 겸임은 상법상 제약 요인은 없지만 이해 충돌과 비밀 누설 등의 우려가 있어 명백한 결격 사유”라며 “KBS나 KT 측이 사퇴를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은 “KT는 엄연히 KBS뿐 아니라 자회사인 KBSi의 경쟁사”라며 “즉각 KBS 이사직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KT 측은 “우리는 아직 방송이 주력 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해 선임했다”고 해명했다.

허증수 경북대 교수 역시 도덕적으로 이미 치명타를 입은 인물이다. 허 교수는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기후변화·에너지 태스크포스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향응을 받은 것이 논란이 돼 중도 사퇴한 인물이다. 당시 허 교수는 인천시에서 교통편을 제공받아 인수위 소속 인사 8명과 함께 강화도에 가서 갯벌장어 전문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제공받아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밖에 이태규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퇴임 후 곧바로 KT 경제경영연구소 전무로 자리를 옮겼고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 출신 서종열씨는 미디어본부장(상무급)으로 자리 잡았다. KT 관계자는 “서 본부장은 KT 과장 출신으로, SK텔레콤 임원 출신도 역임한 바 있어 영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최근 KTF 자회사인 엠하우(모바일 광고공급회사)는 신임 사장으로 김규성 전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의회 부회장을 영입했다. 김 신임 사장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 캠프의 모바일 팀장을 맡은 ‘MB 인맥’이다. 최근 KT는 이석채 사장이 낙하산 논란을 빚으며 취임한 후 임원, 자회사, 사외이사 등 ‘MB 인맥’의 대거 집합소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KT&G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 선임
KT&G도 사외이사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를 선임했다. KT&G는 9명의 사외이사 중 김진현 전 문화일보 사장이 물러나자 지난 대선 당시 전략홍보기획조정회의 일원으로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원용 교수를 사외이사에 앉혔다. 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1996년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개인적으로 선거자문을 해주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 캠프의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KT&G의 홍보 관계자는 “김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에는 사외후보추천위원회에서 복수의 후보를 추천받아 가장 적합한 인사를 추천한 것”이라며 “김 교수의 정치적 영향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른바 ‘MB 측근’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기업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자사의 관련 분야 전문가이기에 영입한 것이지, 정치적 연관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현 정권과 교감하고 사적 통로를 가진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청와대의 의지를 빨리 읽을 수 있는 등 ‘유사시’ 이들이 큰 우군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도의 근본 취지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인사를 외부에서 수혈함으로써 경영진과 대주주의 독단과 전횡을 막고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적 물타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외이사제도의 장점과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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