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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를 보라고요? 학생이 단 두 명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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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최일선에 서 있는 벽지학교 선생님의 편지

강원 영월 동쪽 끝자락 상동읍에 있는 구래초교는 작은 학교다. 중석광산이 폐광되면서 3만 명이던 주민이 1200명으로 줄었고, 2000명이 넘던 학생 수도 전교생 29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기훈 제공>

강원 영월 동쪽 끝자락 상동읍에 있는 구래초교는 작은 학교다. 중석광산이 폐광되면서 3만 명이던 주민이 1200명으로 줄었고, 2000명이 넘던 학생 수도 전교생 29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기훈 제공>

지난해 겨울 상냥하고 장난기 많은 현수가 떠났다. 군부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수원으로 전학을 간 것이다. 큰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아침에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하게 지내던 아이들이었는데. 배웅하고 들어오는 운동장으로 상동의 골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여자 어린이만 달랑 3명인 교실이 마냥 썰렁하고 넓기만 하다. 애써 씩씩하게 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하지만 아이들 얼굴이 왠지 허전해 보인다. 하긴 이중 또 한 어린이가 봄방학에 다른 학교로 전학갈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3학년으로 2명만 진급하게 된 것이다. 오늘따라 주변의 산그늘이 짙게 깔리는 것만 같다.

“순박한 아이들 황폐화시키지 말아야”
여긴 강원 영월의 동쪽 끝자락, 상동읍에 있는 전교생 28명의 작은 초등학교다. 태백이 더 가깝고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이 유난히 긴 곳이다. 계곡의 골짜기를 따라 바람이 항상 거세게 불어 깃대의 태극기가 1년이면 너덜거려 바꿔줘야만 할 정도다.

사람들은 명색이 읍인 곳의 학교가 왜 이렇게 소규모일까라고 궁금해할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때 중석광산이 운영되면서 영월군 내에서 가장 큰 산업지역이었다. 학생 수가 2000명이 넘고 주민도 3만 명이나 되던 큰 지역이었다. 하지만 폐광이 되고 사람들이 떠난 지금 주민은 1200명 정도의 작은 읍으로 전락했다. 주변 군부대와 적은 수의 상가, 노인분이 보살피는 조손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의 구성원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흥망성쇠가 극명하게 엇갈린 지역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이곳 강원도로 자원하여 내려올 때만 해도 동강 주변이나 영화 <선생 김봉두>에 나오는 그런 학교를 그리며 내려왔다. 그러나 영월에서도 1시간이나 차를 타고 도착한 텅 빈 상동읍 터미널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은 매우 낯설고 이색적이었다. 오래된 회색주조의 낡은 건물과 군데군데의 폐가, 고개를 쳐들어야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는 사방의 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 하지만 물고기가 살지 않는 계곡.

그곳 어스름에 학교가 있다. 그러나 낯선 풍경은 이내 정제되어 하나씩 마음속으로 아름답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5명의 어린이와 함께 지낸 2학년 생활은 꿈결만 같았다. 산으로, 밭으로, 계곡으로 딱새, 산제비 나비, 산딸기와 금강모치를 따라 다니던 시간은 너무도 아름답게 가슴속에 저장됐다. 사택에서 엉터리 토스트와 요리를 해줘도 맛나게 먹던 아이들이 고맙기만 했다.

정기훈 교사는 학교와 교실, 야외의 구분과 경계 없이 넘나드는 교육으로 진짜 교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정기훈 제공>

정기훈 교사는 학교와 교실, 야외의 구분과 경계 없이 넘나드는 교육으로 진짜 교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정기훈 제공>

학교와 교실, 야외의 구분과 경계가 없이 넘나드는 교육은 오랜 교직생활 중 처음으로 “내가 진짜 교사 같구나”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산골에도 교단선진화와 미디어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웬만해선 학습부진아가 생길 수 없는 구조로 완전학습이 가능한 교육환경은 내가 바라던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설학원도 없고 오로지 공교육에 의지해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의 가르침은 물에 젖는 스펀지처럼 스스럼없이 스며들어 보람을 느끼게 한다. 물론 주로 사교육에 의존한 큰 도시의 우수한(?) 인재들과 대적할 만한 어린이는 없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의 참 좋은 인성과 미래의 무한한 잠재적 성장 동력을 믿는다. 지식과 점수 위주의 무한경쟁으로 아이들의 정신과 몸을 황폐화시키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교육행정기관은 이 작은 학교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공문이나 업무의 총량, 교육정책의 ‘내리꽂이’가 도시의 큰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아 적은 수의 교사들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다반사다. 일제고사를 보라면 봐야 하고 2명뿐인 학년도 국가시험으로 줄을 세우라면 세워야 하는 등 국가가 만들어준 옷에 몸을 꿰어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제고사 반대 논란이나 성과급 차등 지급, 교원평가 같은 교육적 논쟁 거리들은 높은 산을 거쳐 그저 남의 일처럼 무심히 넘어가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애들 마음의 밭 일구는 농부 되고파”
그래서 아주 적은 교사들끼리도 등급을 매기고 줄도 세우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 하라고만 하면 학교는 모두 할 것이고 어떤 정책도 겉으로는 아주 평온하게 흘러 갈 것이다.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탄력성 없이 칼날을 휘두르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작은 학교의 억눌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애시당초 없는 것이다.

이번 겨울에 참 좋아하는 착한 후배가 파면당했다. 일제고사의 선택권을 가정통신문으로 안내했다는 이유에서다. 교문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부당함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이제 우리 초등교사는 더 이상 아이들의 마음 밭을 갈아 일구는 농부가 아니구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시키는 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등급이 매겨지는 공복이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이곳에도 봄이 오고 있다. 이번 봄엔 아이들과 함께 장산으로 다래순을 따러 가야겠다. 두릅과 함께 살짝 데쳐서 먹어야겠다. 창가엔 제비꽃과 할미꽃도 심고 자귀나무에 날아드는 산제비나비도 눈이 시게 바라봐야겠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눈 녹은 물소리처럼 흐른다. 이 아이들이 있는 한 어떻든 학교는 있을 것이고 그 안에 교사도 있을 것이다. 답답한 가운데서도 세월은 간다.

정기훈<강원 영월 구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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