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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을 잃어버린 대한민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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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단 대책 없는 한 외환, 실업, 파업대란 불보듯
“1월 국회 되풀이되면 이명박정권 레임덕 빠질 것”

# 장면 ①

1월 25일 밤 서울역 앞은 설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으로 붐볐다. 이곳에서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다. 2000명이 넘는 참석자는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의 강압 진압에 대한 분노와 규탄의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그 울부짖음은 곧 한마디의 구호로 압축됐다. “독재 타도”였다. 촛불 시위 때도 간혹 등장했던 구호지만 당시에는 시위자에게서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시위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은 이 구호에 공감한 듯 보였다.
비단 시위대뿐 아니었다. 귀성길을 재촉하던 많은 귀성객 중에도 적지않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연호를 따라하거나 박수로 호응했다. 거리낌도 없었다. 그중에는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도 있었고, 여학생과 평범한 부녀자, 심지어 가톨릭 수녀도 보였다.

# 장면 ②

한 장병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모자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그는 국민을 병장으로, 정치인을 이병으로 비유하면서 “국민을 병장으로 안다면 지금 정치 이러면 안 되죠”라면서 “이등병 모자를 쓰고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고생스러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일개 일등병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군통수권자에게 국민을 소중히 여기라는 ‘정중한 충고’를 했을까.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1월 23일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대회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강제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1월 23일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대회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강제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이미 심각한 경제위기는 사회위기로 전이되어 가고 있다. 외환위기→수출격감→내수부진→기업경영 악화→소득·소비 감소→담보대출 압력과 부도 증대→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경제 악순환은 이미 사회위기의 경보음이 되고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중산층까지 생존 위협을 받으면서 사회체제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 불안이 조직화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소요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시대착오적이거나 무기력해 이를 완충하고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과 고용의 뼈대인 제조업 부문의 올해 고용 인원이 400만 명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난해 12월의 전체 취업자는 2007년 12월에 비해 1만2000명 감소했다. 이는 200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7.6%로 전년 동월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제조업에서 거의 10만 명, 도소매·음식숙박업에서 6만5000명이 감소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이 중산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0.7%로 전망했다. IMF는 1월 28일 수정한 전망치에서 무려 -3.7%로 예상, 한국경제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이성태 한은총재도 “지난해 4분기를 경제침체의 시작으로 본다”면서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적어도 KDI의 예상대로라면 실업률이 더욱 높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개발협력연구실장은 “올봄부터 실업 문제에 대한 불만이 본격화할 것”이라면서 “만일 정부가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요구한 생존권 시위가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일자리 시위는 정권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면서 “음식 주권을 내건 촛불시위는 그 파괴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관적 예측의 근거는 바로 가계부실이다. 국민 1인당 저축률은 2.3% (2007년 말 현재)다. 반면 한 가구당 4000만 원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다. 가장의 일자리는 곧 가계소득의 원천이고 가장의 실질은 가계파산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국 경제구조에서 실업의 위험지수는 높다.

경제불안이 사회불안, 사회적 소요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을 지낸 김정남 전 수석은 “경제위기가 파괴적인 정치위기, 사회위기로 전이될 개연성이 너무도 크다”라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중산층 파산과 계층의 양극화, 가정파탄, 범죄 급증 등과 같은 D-트라우마 현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특히 문제는 이런 경제·사회 위기에 조정하고 완화, 극복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용산 참사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토건국가’ 건설의 부작용”이라면서 “‘토건국가’식 국가 운영이 중산층마저 양극화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극화 현상은 곧 중산층의 양극화”라고 전제하고 “지난 10년 동안 10%의 중산층이 계층 이동을 했는데 그중 1%는 상류 상승을 한 반면 나머지 9%가 계층 하락을 했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구조적 취약성을 확대한다. 중산층은 몸 그 자체가 재산이다. 지식을 파는 샐러리맨이나 노동을 파는 자영업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의 재산은 직장이거나 아니면 조그마한 가게다. 정치권의 조정 능력 부재도 위기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1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나라인데 위기 관리를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면서 “이는 이명박 정부의 인기관리정책과 위기대책이 충돌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1월 국회는 그 파국의 전초를 예고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불사했던 90여 개 쟁점법안 일부분은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럼에도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와 자본 통합 그리고 언론관계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문제는 야당은 물론, 학계·시민단체 등의 지적에도 정부의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 연휴 직전에 단행한 개각은 “친정내각”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 인사는 이번 개각에 대해 “마치 집권 말기 레임덕을 방지하려고 친정체제를 구축한 듯하다”라고 혹평하면서 “결국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내정은 과거식 관치금융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을 반영하는 창구인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산 참사 사건을 대응하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 사이의 이견에서 보듯이 당내 의견도 수렴하지 못하면서 민심을 어떻게 수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현재 한나라당의 위기를 단순하게 친이와 친박의 문제로 파악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박근혜 의원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월 2일 청와대 오찬 모임에서 박근혜 의원의 참석 여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2001년 아르헨티나 교훈 되새겨야
하지만 많은 학자나 시민단체 관련자는 “도대체 국민이 친이·친박에 무슨 관심이 있느냐”면서 “청와대는 여전히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의 서부고용안정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실직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서울 마포의 서부고용안정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실직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김기남 기자>

2월 소위 쟁점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정부 여당과 이를 저지하는 야당의 충돌, 여기에 경제위기, 설상가상 3월 대학생의 졸업으로 인한 실업률 대폭 상승, 야당 및 시민단체의 재야 투쟁으로 이어지는 정국은 파국 그 자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우리도 지금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개발독재시대의 토건국가의 재건기조가 계속된다면 지금의 위기 다음은 파국”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냈다.

이미 시중에는 ‘3월 위기설’이 유포되고 있다. 그 발원지는 청와대였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해 12월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내년 3, 4월에는 더 어려울 것”이라며 “현 정부나 체제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라고 ‘3월 위기설’을 언급했다.

불행하게도 정 실장이 예고한 대로 ‘체제 위협적’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1월 20일 발생한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은 전이된 사회위기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홍성태 교수는 “용산 참화 그 자체보다 문제 처리 과정과 해결 방식에 문제가 더 있다”면서 “가진 사람 위주의 강경일변도 정책에 대한 국민의 항의이며 분노의 폭발”이라고 말했다.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은 더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했다. 최 소장은 “‘최근 정부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정권(아르헨티나)을 잊지 마라’고 충고했다”면서 “지금의 한국이 2001년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은 2001년 12월 경제난의 파고를 이기지 못해 사임했다. 메넘 정권의 경제 실정과 부패·무능에 분노했던 국민은 데 라 루아 정권의 5% 성장 공약을 기대해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집권 2년여 동안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국민들은 두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일명 ‘냄비 시위’다. 결국 데 라 투아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남긴 채 헬기를 타고 외국으로 망명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12년 동안 대통령이 다섯 명이나 바뀌는 대혼란을 겪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지금 대한민국은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예고했듯이 대란(大亂)으로 치닫고 있다. ‘외환대란’ ‘실업대란’ ‘파업대란’ ‘언론대란’ ‘민심대란’ 등.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한국은 정치적 나침반을 잃어버린 사회”라고 규정한 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은 가라앉는 배에서 싸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만일 1월 국회 같은 현상이 되풀이된다면 이명박 정부는 곧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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