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치권 ‘2월 입법전쟁’불붙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인사청문회·용산 참사 등 현안 부상… 개원 벽두 주도권 싸움

여야가 2월 2일 임시국회를 열고 제2차 입법전쟁에 돌입했다.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지난 연말연초 임시국회에서 제1차 입법전쟁을 겪으면서 미디어관련법 등 쟁점법안 처리 시기를 2월 임시국회로 미뤄놓은 데다 최근 단행한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와 용산 참사가 정국의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여야는 임시국회 개원 벽두부터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특히 이번 입법전쟁의 성패는 각 당 지도부의 진퇴 문제와 직결될 뿐 아니라 4월 재보선 정국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커버스토리]정치권 ‘2월 입법전쟁’불붙었다

지난 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에 실패했던 한나라당은 이번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1월 28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는 국민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게 경제 살리기 등 중요법을 반드시 처리하고, 한마음 한뜻이 돼 역사적 과업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갈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최고위원들도 한결같이 “지난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각종 쟁점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전의를 불살랐다.

4월 재보선 정국에 곧바로 영향
청와대도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입법전쟁을 앞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에 쟁점법안 처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임시국회 개원일인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등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 멤버 22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회동이 있다. 이 자리의 관심은 소위 쟁점법안 처리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박근혜 전 대표의 참석이다. 청와대는 이 자리를 친이·친박계로 흩어져 있는 172명의 한나라당 의원을 결속시켜 쟁점법안 처리에 매진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의도인 것은 물론이다. 이 회동을 통해 친박계가 쟁점법안 처리에 적극 협조할지는 미지수지만 문제는 야당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지난 제1차 입법전쟁의 승리를 계속 몰아간다는 전략이다. 우선 민주당은 이번 국회에서 철저한 인사 검증과 대정부 질문 등을 이용해 용산 참사의 책임 규명을 통해 국회 초반부터 정부 여당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민주당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국정원장 내정자)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서울경찰청장)의 경질과 용산 참사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함으로써 쟁점법안 논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즉 민주당은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맞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쟁점법안을 이슈화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 결국 법안 처리를 무산시키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2월 국회는 용산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인사청문회를 한 뒤 법안으로 넘어갈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이 갈등 있는 법을 먼저 노출하는 것은 용산 참사나 인사청문회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또한 제2의 입법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고 만반의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국회 때처럼 또다시 국회 본회의장과 상임회의장을 기습 점거하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농성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사무처는 이미 국회 모든 회의장 정문의 금속성 잠금장치를 보안성을 강화한 전기자석식 개폐장치로 교체했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국회에서 본회의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해서 법안을 저지하려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해머와 같이 일부 폭력이 부각된 점이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소수인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한나라당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투쟁밖에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극력 저지, 최소한 소수의 처참한 몰골을 국민에게 부각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

한나라 “이번엔 물러나지 않을 것”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쟁점법안은 ▲재벌과 신문사의 방송 소유를 허용하는 방송, 신문법 등 미디어관련법 ▲재벌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을 허용하는 은행법 ▲불법집회 피해자의 집단소송을 허용하는 집단소송제법 ▲비정규직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법 개정안 등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MB 약법’이라고 칭하며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MB 악법’으로 규정하며 대국민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제2차 입법전쟁의 최대 격전지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제1차 입법전쟁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강행상정을 계기로 시작됐다면 2차 입법전쟁은 미디어법을 뇌관으로 문방위에서 촉발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방위에서 상정·논의할 미디어관련법은 신문법·방송법·IPTV법·지상파방송의 디지털전환 특별법 등이며, 사이버모욕죄(정보통신망법 개정안)와 저작권법 등도 다뤄야 하는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나라당에 방송·신문법 등 언론 관련법안을 신속히 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당·청 정례회동에서 “미디어가 최대 산업이고 성장동력이다”면서 “(방송-통신 융합 부문에서)우리가 앞서가다가 조금 늦어졌는데 방송-통신 융합이 잘돼야 고급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도 이번 국회에서 “언론관계법을 반드시 상정하겠다”고 밝혀, 민주당과 충돌이 예상된다.

이번 국회에서 주목할 것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하는 것이다. 쟁점법안에 대해 여야가 치열한 논의했음에도 접점을 찾지 못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카드가 거론될 수밖에 없다. 김 의장은 지난번처럼 여야에 끝까지 대화를 종용할 것으로 보이며, 여론의 추이를 면밀히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김 의장은 “법안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지만 법안의 상정 자체를 막거나 토론·심의를 다른 수단을 동원해 막아서도 안 된다”고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출신의 김 의장이 정치 은퇴를 생각하지 않는 한 자신의 정치적 기반까지 포기하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민주 “소수 야당 투쟁밖에 대안 없다”
일각에서는 지난 국회처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이유는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경제살리기와 민생법안 이외에 다른 법안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여야 모두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제2의 입법전쟁 전망을 벌이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치컨설턴트 황인상 피앤씨(P&C) 정책개발원 대표는 “쟁점법안 중 사회법안들은 각당의 당리당략에 따른 것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용산 참사라는 돌발 악재로 동력이 떨어졌다는 점도 입법전쟁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용산 참사로 인해 국민 여론이 정부 여당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밀어붙이고 싶어도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입법전쟁을 주도하면, 김영삼 대통령 때 노동법을 밀어붙여 실패한 전례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한나라당이 쟁점법안을 포기해야 하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계기가 마련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2월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인 한나라당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전쟁터가 될 수도, 대화와 타협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의 입장

원내 제3당인 자유선진당(선진당)과 5석의 미니 정당인 민주노동당(민노당)도 2월 임시국회에서 당의 정체성에 맞게 ‘스몰 파워’를 과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창당 1주년을 맞은 선진당은 이번 국회에서 제3교섭 단체로 캐스팅보트를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지난 국회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민노당의 양보 없는 싸움이 계속된다면 적극 중재하여 당의 위상을 재고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선진당은 지난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합의문의 70% 정도가 선진당이 제안한 내용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쟁점법안과 관련해서 선진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선진당은 우선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은 반대한다. 금산분리완화로 금융기관의 부실이 기업(산업자본)의 부실로 이어지고, 기업부실이 은행부실이라는 동반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연금법과 국민연금법의 개정안도 부정적이다. 국민연금법이 급여 수준을 33% 인하한 것에 비해 공무원연금법은 개혁 노력이 후퇴했다는 점 때문이다.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복면 도구 착용 금지 조항의 삭제를 전제로 찬성한다.

선진당은 이번 국회에서 지역 기반인 충정권 민심을 얻고자 세종시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국회폭력 방지를 위한 국회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3개 법률안 처리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지난 국회에서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2월 국회로 고스란히 쟁점법안들을 넘겼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한 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노동당도 제2차 입법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국회 때 민주당과 연대해 한나라당을 물리친 경험을 근거로 민노당은 이번 국회 때도 한나라당이 물리력으로 쟁점법안 처리를 강행하려 한다면 민주당과 연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비록 국회의원이 5명밖에 되지 않지만 ‘일당백’의 정신으로 MB 악법을 막아내겠다는 것이 민노당의 각오다. 또한 민노당은 이번 용산 참사 사건이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남용 때문인 것으로 규정하고 철거민을 위한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진상을 밝힐 예정이다.

민노당은 이번 국회에서 민주당과 공조하되, 한편으로는 서민생활 살리기에 매진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민노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점 법안은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농민을 위한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 개정안 ▲영세상인을 위해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이다. 특히 민노당은 2~3월 실업대란이 우려됨에 따라 서민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정치권에 제안할 예정이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지난번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하려던 법안이 국민 여론의 반대가 많았기 때문에 무산됐다”면서 “한나라당이 지난 국회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나오면 다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