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부 비판 사라진 KBS 프로그램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뉴스, 정권 눈치보기 심화… 신뢰도 1위 위상 끝없이 추락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 프로그램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경향신문>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 프로그램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경향신문>

한때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로 평가받았던 공영방송 KBS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KBS의 ‘위기’는 이명박 정권이 법을 무시하고 정연주 사장을 ‘축출’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정권의 ‘청부사장’ 이병순씨 취임 이후 보도를 비롯한 프로그램 전반의 ‘수준 저하’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방송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KBS 뉴스는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 ‘정권 눈치 보기’가 심화하면서 ‘정권 비판’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보도의 심층성도 크게 떨어졌다. 정권을 옹호하려고 특정 사안을 축소하거나 부풀리고, 본질을 흐리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 연말 정치권 최대 이슈는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국회 파행 사태였다. KBS 역시 국회 파행 사태를 보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정작 KBS는 국회 파행의 원인이 무엇이고, 쟁점이 되었던 이른바 ‘MB 악법’의 내용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 간 물리적 충돌과 갈등을 연일 강조하는 데 그쳤다. 심층보도 내용마저 국회 충돌 상황을 부각하거나 지난 정부시절 여야가 뒤바뀌어 충돌을 빚었던 상황만 거론하며 ‘여야가 똑같다’는 양비론을 폈다. KBS도 예외일 수 없는 신문·방송법 개정안마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장을 나열하고 ‘경제법안으로 볼 것이냐 쟁점법안으로 볼 것이냐 논란’이라며 왜곡된 의제를 설정하기도 했다.

경제 보도에서는 ‘밝은 면’ ‘긍정적인 면’을 부각했다. KBS는 연말 연초 경제 보도에서 ‘10년 만에 최고의 물가상승률’ ‘1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라는 우울한 소식을 ‘물가상승세가 진정됐다’ ‘올해는 흑자가 전망된다’는 긍정적인 소식으로 뒤바꿔 보도했다. KBS의 이런 보도는 MBC와 SBS의 보도방향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내용이었다. KBS가 ‘긍정적’으로 부각한 내용조차 SBS는 물가상승세가 둔화된 것은 ‘소비위축에 따른 것’이어서 ‘무조건 반길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고, ‘흑자전망’ 역시 ‘경기축소형 흑자’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KBS의 경제 보도가 정부에 불리한 경제 상황이나 정부의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정사항 축소·부풀리기 뚜렷
용산 참사 보도는 참사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경찰의 살인 진압 문제를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KBS는 “전국철거민연합회의 개입으로 시위가 과격해졌다”며 경찰 살인 진압의 책임을 ‘물타기’하고, 전철연의 과격성을 부각했다. 심층보도에서는 살인 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를 ‘국론분열’로 몰아가며 ‘이해로 극복하자’는 해괴한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KBS의 ‘정권 눈치 보기’는 보도 외에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났다. 새해 보신각 타종 행사 프로그램은 ‘조작방송’ 비판을 받았다. 2009년 타종 행사장은 이례적으로 수많은 시민이 이명박 정부의 정치 실정을 비판하고 ‘MB악법’에 반대하는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그런데 KBS는 시민들의 손팻말과 촛불, 청중의 야유와 구호를 가리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교묘하게 잡고 박수소리 기계음을 삽입했다. KBS 타종 행사 프로그램에 대해 ‘왜곡’ ‘조작’이라는 지적이 일자, KBS 측은 ‘방송 기획 의도에 맞지 않은 장면과 음향을 잘라낸 것이고 의례적인 방송 테크닉’이라고 주장하며 ‘조작방송’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마저 보였다.

공영방송 KBS의 위상 ‘추락’은 보도와 여타 프로그램에서 ‘정권 눈치 보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십수 년간 방송민주화 투쟁으로 쌓아온 KBS의 위상과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이라는 의미마저 되묻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을 가리고, 본질을 왜곡하고, 때로는 정권의 실정마저 장밋빛으로 치장하는 지금의 행태는 지난 20여 년 전 군사독재정권 시절 ‘정권의 나팔수’였던 KBS의 부끄러운 과거와 중첩된다.

KBS가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 비상하느냐 여부는 순전히 KBS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정권의 눈치나 살핀다면 국민은 영원히 등을 돌릴 것이고, ‘정권의 나팔수’ ‘3류 방송’으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지혜<민언련 모니터 부장>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