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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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에서 발행한 오바마 우표와 미국인들이 가상으로 만든 부시 우표들.

라이베리아에서 발행한 오바마 우표와 미국인들이 가상으로 만든 부시 우표들.

미 우정청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부시 얼굴이 새겨진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가 나왔다는 소식에 부시는 우체국을 찾아 새 우표 인기가 어떤지 물어봤다. 뜻밖에도 창구 직원은 “우표가 잘 붙지 않는다고 고객들의 불만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부시는 중앙정보국(CIA)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CIA는 현장조사를 한 후 이렇게 보고했다. “각하, 우표 품질은 국제 수준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우표 뒷면에 칠해야 할 침을 앞면에 바른다는 점입니다”

미국인들이 즐겨찾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유머 가운데 하나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유머와 달리 미 우정청은 대통령 우표를 내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우표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식 때 한 번 대통령 우표를 발행하는 우리 우정사업본부와 비교된다.

미 우정청은 오는 20일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에 맞춰 기념품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사진을 새긴 편지봉투와 오바마의 개인 이력, 대통령 선서문 등을 우표첩에 넣어 14.95달러에 판매하는 것이다. 우표는 아니지만 이 또한 소장 가치가 있어 꽤 인기가 높다.

미국 대통령 우표는 종종 외국에서 발행한다. 현직 대통령 얼굴이 들어 있는 우표를 갖고 싶어하는 미국인 등 우표수집가의 수요를 염두에 둔 틈새 공략이다. 오바마 우표는 라이베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냈다. 지난해 11월 오바마가 당선하자 몇 시간 뒤 기념우표를 발행해 세계 우표수집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오바마와 매케인, 두 우표를 동시에 준비해놓았다가 선거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출시하는 작전을 쓴 것이다.

라이베리아는 과거에도 그런 작전을 쓴 적이 있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2000년 개표 상황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승부가 40일 이상 지연된 적이 있다. 이때 라이베리아는 고어가 당선했다는 최초의 잘못된 보도를 믿고 성급하게 고어 우표를 발행했다가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라이베리아가 국제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미국 대통령 우표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래도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 식민협회가 해방된 노예를 귀환 이주시켜 만든 국가로 1847년 미국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국가명을 자유의 나라라는 뜻에서 라이베리아로 짓고, 수도명을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의 이름을 따 먼로비아로 지을 만큼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라이베리아 외에 오바마 우표를 발행한 나라는 차드, 케냐, 기니 등이 꼽힌다. 기니는 오바마를 가운데 두고 에이브러햄 링컨, 넬슨 만델라, 제시 잭슨, 존 F 케네디, 마릴린 먼로, 빌 클린턴 등의 인물을 두루 담은 우표 6종을 전지 형식으로 발행했다. 차드와 케냐 또한 편지 송달과 무관하게 오로지 수집가들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우표를 냈다. 북한이 가끔 사용하는 외화벌이 사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 우표에 관한 미 우정청의 원칙은 만고불변일까. 우정청은 지금까지 대통령은 사후 1년, 그외 인물은 사후 10년이 되기 전에는 어떤 경우에도 우표에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이 원칙에서 어긋나는 우표가 나오게 됐다. 전설의 코미디언 밥 호프의 우표를 그의 106번째 생일인 올 5월 29일에 내기로 한 것이다. 호프가 사망한 게 2003년이니까 올해는 사후 6년밖에 안 된다. 우정청은 이에 대해 “사후 10년 규정을 사후 5년으로 수정했다”고 설명한다. 수정한 원칙의 첫 적용 사례가 밥 호프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을 통틀어 우표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그가 숨진 뒤 10년째 되는 1974년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어서 이때를 전후해 줄잡아 126개국에서 474종의 처칠 우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칠이 세계적으로 존경받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처칠 전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700종에 달하는 우표에 등장해 단연 선두였으나 얼굴 모습보다는 배나 등대같이 항해에 얽힌 상징물이 우표에 올랐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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