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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 국내서 송출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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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서 VOA 한국어 방송 보내…경색된 남북관계에 악영향 우려

극동방송 전경. <김석구 기자>

극동방송 전경. <김석구 기자>

"Welcome to the Voice of America in Korea.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워싱턴에서 보내드리는 미국의 소리방송입니다.”
올 1월 1일부터 국내 기독교 매체인 FEBC 극동방송(AM 1188kHz)이 VOA 한국어방송을 새해부터 자사 채널을 통해 송출하고 있다. VOA 방송은 1월 1일부터 매일 밤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 1시간 30분 동안 미국 워싱턴 본사의 프로그램과 서울지국이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다.

올해부터 매일 밤 1시간 30분씩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국내 중파를 이용해 대북한 방송을 하고 있어 남북 경색의 요인이 되고 있다. 지상파를 통한 미국의 대북방송은 최근 보수단체의 대북한 ‘삐라(전단)’ 살포 충격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남북관계 경색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이런 방송은 현행 방송법 위반 여지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VOA 방송은 미국의 정책과 시각을 전하는 관영 방송매체. 각국 언어로 단파를 통해 송출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 국경 없이 전달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과 민주화를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전파를 이용해 방송을 내보냄으로써 사회주의 국가 주민에게 체제이완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공산권 방송은 1980~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동·서독의 통일, 그리고 체코 등 동구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미국이 지원한 자유유럽방송이나 자유방송은 냉전시대에 동구권 주민에게 외부 정보를 제공해 내부로부터 변화를 유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VOA 방송의 한국어 방송은 대부분 북한을 상대로 미국의 민주주를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파 혹은 중파라도 몽골 등지에서 송신해 단파 라디오가 있거나 청취 지역이 협소했지만 올해부터 북한 전역에서 일반 라디오로 쉽게 청취할 수 있어 북한 당국이 발끈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극동방송 방산 송신소. <극동방송>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극동방송 방산 송신소. <극동방송>

VOA 방송의 한국어 방송은 그동안 러시아 연해주와 몽골에 있는 송신소 등을 통해 단파와 중파로 북한의 국경지역과 서북부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대북방송을 계속했다. 이번에 국내에서 대북방송을 송출함에 따라 VOA 방송은 기존의 청취 가능 지역보다 훨씬 넓은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 함경도 일부까지 아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기 시흥에 있는 극동방송 방산동 송신소는 특정시간대에 북한 쪽을 향하도록 하는 지향성 안테나로 송출하고 있다.

현재 북한 주민은 단파 라디오 100만여 대와 중파 라디오 200만~300만 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은 지금까지 단파 라디오를 통해 VOA방송과 미국의 또 다른 민간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을 비밀리에 청취했으며, 중파 라디오를 통해 KBS 한민족방송(옛사회교육방송)과 극동방송 등을 듣고 있다. 하지만 국영방송인 한민족방송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상호비방을 중지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은 겉으로는 주민들의 대북방송 청취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방해 전파를 쏘는 등 전파 차단을 막고 있지만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이 이어폰을 끼고 집 안에서 대북방송을 듣는 것을 적발하기 어려워 사실상 묵인하고 있고, 경제난과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상대 방송보다 출력이 높은 전파를 발사하기도 쉽지 않다.

탈북자 출신인 자유북한방송의 김대성 기자는 “북한 주민은 암시장에서 라디오를 구입해 남한 방송을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면서 “일반 주민뿐 아니라 사상성이 투철한 노동당 간부들도 남한 방송을 청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VOA 방송의 극동방송을 통한 위탁 송출은 방송법 위반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방송법(시행령 제61조의 3의 2항)에 따르면 외국 방송 사업자는 국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및 위성방송사업자를 통해 재송신할 수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업자에 대한 명문화한 규정은 없다. 하지만 이같은 논란 속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는 극동방송의 VOA 한국어 방송 위탁 송출을 허용했다. 한 대북방송 관계자는 “VOA 방송이 극동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나가는 것은 명백한 방송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방통위도 지금까지 이를 허용했다는 어떤 고지나 고시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극동방송이 VOA 방송 전체를 재송신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만 송출하는 것으로 편성권은 극동방송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 허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가 방송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위탁 송출 놓고 방송법 위반 논란도
정확한 위탁 송출 비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VOA 방송 송출 수수료도 상당한 액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국내의 단파 대북방송이 해외 전파송출업체로부터 주파수 하나를 한 달 임대하는 데 1000만 원 정도 든다. 하지만 중파 방송 송출은 이보다 비용이 훨씬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 자유아시아방송 등 미국 방송 이외에 국내 대북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대북방송에 나서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열린북한방송, 북한개혁방송, 자유조선방송, 자유의 소리, 광야의 소리 등이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북방송들이다. 하지만 단파 라디오 방송인 이들은 국내에서는 프로그램을 송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 전파법 등 관련법이 엄격해 지상파 방송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 방송은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국제전파송출업체와 계약하고 해외에서 북한으로 대북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국내 대북방송들은 미국의 민간단체인 민주주의진흥재단(NED)에서 지원받고 있으며, 후원금은 방송사별로 2만5000~21만6000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들은 VOA 방송이 국내 지상파 방송의 송신시설을 이용해 대북방송을 시작함에 따라 이명박 정부 들어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보수단체들의 대북 삐라 살포와 관련해 북한 당국은 지난해 10월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 삐라 살포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사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측 인원의 통행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고 경고했으며, 이후 금강산·개성 관광을 중단시키고 개성공단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의 ‘12·1조치’를 단행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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